일본 경제 뒤흔든 '테러 원자폭탄'
  • 도쿄·채명석 편집위원 (cms@e-sisa.co.kr)
  • 승인 2001.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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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 IT · 자동차 산업 '불황'…
3년 만에 마이너스 성장 '확실'
일본 경제가 '테러 불황'에 휘청거리고 있다. 미국 동시 다발 테러 사건의 직격탄을 맞고 큰 울상을 짓고 있는 것은 우선 일본의 항공·여행·호텔 업계이다.


니혼고쿠(JAL)에 따르면, 10월의 국제선 예약률은 지난해의 70% 수준이며 11월도 80% 선에 머물렀다. 탈레반 정권에 대한 미·영의 군사 보복이 계속되고 탄저균 소동이 일단락되지 않는 한 국제선 승객 감소 추세는 당분간 계속되리라는 것이 니혼고쿠의 판단이다. 그래서 니혼고쿠는 최근 2001 회계 연도 결산 예측을 대폭 수정해 2백50억 엔 흑자 전망을 4백억 엔 적자 전망으로 재조정했다.




국제선 승객이 격감하고 있는 것은 젠니쿠(ANA)도 마찬가지이다. 젠니쿠에 따르면, 미국에서 테러 사건이 일어난 후 미국 노선에서 탑승객이 40% 감소했으며, 유럽 등 다른 노선에서도 20% 정도가 감소했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100억 엔 단위이지만, 국내 노선 승객이 지난해보다 약간 늘어나고 있어 적자는 면하리라는 것이 젠니쿠의 전망이다.


일본 여행업계의 선두 주자인 JTB는 미국에서 테러 사건이 일어난 이후 해외 여행 예약이 약 11만 건 취소되어 울상이다. 예약 취소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북미·하와이·괌인데, 전체의 약 60%를 점하고 있다. 그래서 항상 일본인 관광객으로 북적거리던 하와이는 지금 한산하기 그지없다고 한다. JTB 관계자에 따르면, 테러 사건으로 일본인 관광객의 발길이 뜸해지자 하와이 호텔들은 객실 점유율이 20%로 줄었으며, 식당가에서는 손님을 끌기 위해 반액 서비스를 하고 있다.


미군기지가 밀집한 오키나와도 한숨 짓고 있다. 오키나와는 전체 수입의 약 12%를 관광에 의존한다. 그러나 미군 시설이 밀집해 있다는 이유로 테러 사건 이후 관광객 10만명 이상이 오키나와 여행을 취소했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긴급 대책 회의를 열고 정부 관계 국제회의를 오키나와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하는 등 오키나와 지역 관광객 감소 대책을 마련하는 데 부심하고 있다.


반도체 가격 폭락과 정보기술(IT) 관련 설비투자 축소에 따라 지난 여름 일제히 대량 감원 계획을 발표한 소니·마쓰시타·도시바·히타치 등 IT 관련 기업들도 테러 사건이 터지자 또 한번 구조 조정을 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전체 매출액의 약 30%를 미국 시장에서 올리고 있는 소니의 안도 사장은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테러 사건 여파로 IT 관련 제품 10%, 음향·영상 제품 7∼8% 매출액 감소를 각오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미국 시장에서 판매액이 10% 감소하면 소니의 매출액은 약 2천2백억 엔 줄어든다.


4∼9월 무역 흑자, 지난해보다 43% 포인트 감소




일본 컴퓨터업계의 선두 주자인 NEC는 지난 여름 30억 엔 흑자를 낼 것으로 예상했으나, 테러 사건 이후 이를 3백억 엔 적자로 수정했다. 마쓰시타와 히타치도 여름에 발표한 결산 전망을 대폭 하향 조정하고 추가로 대대적인 구조 조정을 실시할 방침이다.


미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일본 자동차업계도 테러 사건의 직접 피해자이다. 지난 9월의 미국 신차 판매대수 발표에 따르면, 도요타가 8월에 비해 4.2%, 혼다가 3.8% 감소했으며 닛산은 무려 19.2%나 감소했다. 일본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미 자동차 시장 불황은 내년이 가장 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내년에 도요타는 1천6백억 엔, 닛산은 8백억 엔, 혼다는 1천8백75억 엔 정도 매출액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최근 일본에서 유일하게 잘 굴러가던 것이 자동차산업이었다. 그것은 미국 시장이 개인 소비 증가로 활황을 보인 덕택이었다. 그러나 경제 파급 효과가 큰 자동차산업마저 불황에 직면한다면 일본 경제에 미치는 마이너스 효과는 엄청나다. 전문가들은 하이테크 기업에서 수출 기업으로 옮겨 붙은 테러 불황이 심각해지는 것은 지금부터라고 경고한다.


수출 기업 불황으로 무역 흑자도 대폭 감소하고 있다, 재무성이 최근 발표한 상반기(4∼9월) 무역 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무역 흑자는 지난해 같은 시기에 비해 무려 43.1% 포인트가 감소한 3조3천억 엔을 기록했다. 이는 IT 관련 산업이 침체해 수출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9월의 대미 수출은 지난해 같은 시기에 비해 약 12% 포인트가 줄었는데, 이에 따라 대미 흑자도 지난해 같은 시기에 비해 9.6% 포인트나 감소했다. '테러 불황' 여파로 올해 일본의 경제성장률도 3년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 확실하다. 일본 정부는 연초 올해 경제성장률이 1.7% 정도 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지난 2분기 성장률은 마이너스 0.9%를 기록했고, 3분기(7∼9월) 성적은 더 나빠졌다. 4분기(10∼12월) 경제 지표도 테러 불황 여파로 더욱 악화할 전망이다. 다케나카 헤이조 경제재정장관도 이러한 사정을 감안해 올해 일본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이라는 사실을 공식으로 인정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최근 전망에 따르면, 일본 경제는 올해 마이너스 0.8% 성장을 기록할 전망이다.


그렇다면 테러 불황의 탈출구는 있는 것일까. 일본의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보복 전쟁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와, 그에 따라 미국 경제가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입을 모은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페르시아 만 전쟁형'이다. 즉 1991년 전쟁 때처럼 비교적 단기간에 보복 전쟁이 종결된다면 전쟁 종결 후 미국 경제는 개인 소비가 되살아나 또다시 활황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예컨대 미국 경제는 페르시아 만 전쟁이 일어난 1991년에는 마이너스 0.5% 성장을 기록했지만, 1992년에는 플러스 3% 성장으로 반전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베트남전쟁형'이다. 즉 보복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미국의 개인 소비나 설비투자 감소 현상이 오래 지속되며, 이에 따라 세계 경제 불황도 장기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이 베트남전쟁에 본격 참전한 1964년 이후 미국 경제가 군사비 지출 증가로 잠시 높은 성장률을 보였으나, 1970년에는 마이너스 0.2% 성장으로 반전한 것이 좋은 예이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세계대전형'이다. 즉 보복 전쟁이 기독교 문명권과 이슬람 문명권의 충돌로 발전하는 경우이다. 실제로 중동전쟁 여파로 1973년 석유 위기가 일어났을 때 미국 경제는 1974년과 1975년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세계 경제도 큰 혼란을 경험했다. 한국이나 일본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를 위해서도 보복 전쟁은 단기간에 끝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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