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 유용으로 흔들리는 일본 속 '주체의 탑'
  • 도쿄·채명석 편집위원 (cms@e-sisa.co.kr)
  • 승인 2001.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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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총련, 도산한 신용조합 '돈 유용→북한 송금' 밝혀지면 위기
일본 속 '주체의 탑'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중앙본부에 대해 처음으로 일본 경찰이 강제 수사에 들어갔다. 조총련계 금융기관인 조은 도쿄신용조합의 자금 유용 사건을 수사하는 도쿄 경시청은 수사 요원 30여 명을 동원해 지난 11월29일 오전 도쿄 지요다 구 후지미에 위치한 조총련 중앙본부에서 압수 수색을 실시했다.




1986년 지상 10층 지하 2층 신축 건물에 입주한 조총련 중앙본부는 북한의 주일 외교대표부 구실을 하며 사실상 치외법권적인 특혜를 누려 왔다. 그렇기 때문에 조총련 결성 이후 처음으로 도쿄 경시청이 압수 수색을 하자 중앙본부 주변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조총련은 아침 일찍부터 조직원 4백여 명을 동원해 출입구를 봉쇄하고 도쿄 경시청의 강제 수사를 정치적 탄압이라고 격렬히 비난했다. 조총련의 한 간부는 취재진을 불러모아 놓고 "조은 도쿄신용조합과의 거래에서 조총련이 일본 법을 어긴 것은 하나도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도쿄 경시청의 강제 수사를 정치 탄압이라고 주장하는 조총련측 주장을 일본 언론은 물론이고 조총련계 재일 동포들마저 '적반하장'이라고 비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북한 송이버섯 수입 판매해 3백61억 엔 갚겠다"


조총련은 최근 일본의 예금보호기구에 약 2천억 엔이 채무 초과되어 1999년 5월에 도산한 조은 도쿄신용조합으로부터 약 1백70억 엔, 올해 8월 약 1백50억 엔이 채무 초과되어 도산한 조은 간토신용조합으로부터 약 1백91억 엔을 융자받은 것을 스스로 인정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조총련은 그러면서 두 신용조합에서 융자받은 약 3백61억 엔을 북한에서 수입한 송이버섯을 판매해 30년에 걸쳐 갚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조총련은 또 조총련이 존속하는 한 융자받은 돈을 언젠가는 전부 상환할 것이기 때문에 조은 신용조합은 부실 채권을 떠안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고 한다.


문제는 조은 신용조합들이 조총련의 사금고가 아니라 일본의 법률에 근거해 설립된 공적인 금융기관이라는 점이다. 조총련계 금융기관인 조은 신용조합들은 한때 일본 전국에서 38개가 영업하고 있었으나 거품 경제 시절의 마구잡이식 융자로 조은 도쿄신용조합 등 16개가 도산했으며, 나머지 신용조합들도 경영난에 빠져 있다.


일본 금융 당국은 이미 도산한 조은 오사카신용조합에 3천억 엔, 조은 미야기 아오모리 등 9개 신용조합에 약 3천억 엔 등 공적자금을 모두 6천억 엔 투입했다. 또 경영이 부실한 조은 신용조합들을 구제하기 위해 추가로 공적자금을 투입할 방침이다. 일본 언론들은 조총련계 금융기관들을 구제하기 위해 이처럼 막대한 공적자금, 즉 일본인들이 낸 세금을 쏟아붓기 때문에 그 책임 소재를 밝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조총련계 재일 동포들도 자신들의 재산이나 마찬가지인 조은 신용조합의 예금을 조총련 간부들이 멋대로 유용했다는 사실에 크게 분노하고 있다.


조은 신용조합의 예금을 사금고처럼 이용해 온 조총련과 그 간부들에 대한 수사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유용된 예금의 일부가 북한으로 송금되었다는 단서가 잡히면 수사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 것이며, 북·일 관계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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