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2003년이 위험하다
  •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sisa@sisapress.com)
  • 승인 2001.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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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로 건설 지연 등으로 핵 · 미사일 위기 재연…
북 · 미 '생물무기 갈등'도 불꽃 튈 듯
존볼턴 미국 국무부 차관의 북한 생물 무기 위협 발언과 부시 대통령의 '사찰' 촉구 발언을 계기로 테러와의 전쟁 불똥이 한반도에 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1990년대 전반 '북한핵위협론', 중반 이후 '미사일위협론'에 이어 21세기 새로운 버전으로 '생물 화학무기위협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북한위협론은 차례로 미국의 핵 비확산 정책, 미사일방어(MD) 계획,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과 맞물려 고도의 긴장 관계를 유발하며 한반도 문제를 평화적으로 푸는 데 근본적인 장애 요인이 되어 왔다. 더욱 걱정되는 점은 클린턴 대통령 때 어렵게 해결의 길로 접어든 핵·미사일 문제에 대해 부시 대통령이 협상 타결의 '유망한 요소'를 걷어차고 생물 화학 무기 위협을 강조하고 나섬으로써, 북한위협론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북·미 관계 개선을 더욱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1994년이나 1998·1999년 초보다 더 심각한 한반도 전쟁 위기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 정황을 종합해 볼 때, 위기의 시점은 2003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첫 번째 문제는, 북·미 제네바 합의를 통해 2003년까지 완공하기로 한 경수로 건설이 늦추어짐으로써 제네바 합의가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과거 핵활동을 통해 핵무기 1∼2개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보유했다고 보고, 조기 핵사찰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과거 핵활동에 대한 사찰은 경수로가 거의 완공된 이후 핵심 부품을 인도하기 전에 받기로 되어 있다. 따라서 부시 대통령의 요구는 제네바 합의를 넘어선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부시 행정부의 요구를 '강도적'이라고 비난하면서, 경수로 공사 지연에 따른 전력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2003년이 갖는 또 하나의 의미는 북한이 약속한 미사일 시험 발사 유예가 만료되는 해라는 점이다. 1990년대 후반 이후 한반도 문제의 최대 변수였던 북·미 미사일 협상은 클린턴 행정부 막바지 때 타결 일보 직전까지 갔으나, 미국의 정권 교체로 '없었던 일'처럼 되어 버렸다. 미사일방어 체계 구축을 최우선 정책 목표로 내세워온 부시 정부는 북한 미사일 문제가 풀릴 경우 그 구상에 차질이 생길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클린턴 행정부 때 논의된 수준에서 미사일 협상을 재개하자고 틈만 나면 요구하고 있으나, 부시 행정부는 '언제, 어디서나 조건 없는 대화를 할 용의가 있다'는 하나마나한 얘기만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듯 2003년은 잠복했던 핵과 미사일 문제가 다시 전면으로 부각되는 시점이다.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강하게 압박할 경우,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재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 북한이 핵·미사일과 달리 개발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생물 무기를 둘러싼 북·미 간의 갈등을 포함한다면, 2003년이 1994년이나 1998·1999년 초 위기 때보다 더 위험하다고 예상할 수 있다. 부시 행정부가 새롭게 들고 나오고 있는 북한의 생물무기 문제는 핵이나 미사일과 달리 '검증' 및 '투명성'을 확보하기가 대단히 힘들어서 북·미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남한의 군사력 우위 더욱 뚜렷해져

 




2003년이 1994년 위기 때와 다른 중요한 점이 또 한 가지 있다. 한반도의 군사력 불균형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부시 행정부는 가능한 한 빨리 북한의 미사일 전력을 무력화한다는 계획으로 PAC3과 요격 시스템이 장착된 이지스함 등 미사일방어 무기 체계를 한반도 안팎에 배치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부시 행정부의 미사일방어 설명단 대표를 통해 확인된 사실이며, 국방부는 이에 대해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있다.


북한의 프로그·스커드·노동 등 중·단거리 미사일 요격용으로 배치되는 이들 무기 체계는 한편으로는 윌리엄 페리 전 대북정책조정관도 인정했듯이 북한의 강력한 전쟁 억지력이 무력해지는 것을 의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전쟁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미사일방어 무기 배치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고, 궁극적으로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인식이 얼마나 '위험한 오판'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미국의 신무기 개발 전략에 따라 지상·공중·해상 폭격 능력 역시 1994년보다 훨씬 배가되어 있고, 일본의 군사력 및 관련법 역시 1994년 때와는 판이하며, 남북한의 군사력 균형 역시 남한 쪽으로 계속 기울고 있다는 점도 1994년과 다른 현실이다.


결론적으로 한반도의 힘의 균형 상태가 1994년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 쪽으로 기울고 있고, 그 격차는 갈수록 벌어질 것이다. 클린턴 때보다 훨씬 호전적인 인물들로 구성된 부시 행정부가 1994년 수준보다 더 강력한 화력과 방어 체계를 보유하고 있다면, 부시가 클린턴보다 북한 폭격 결정에 신중하다고 믿을 근거는 없어 보인다. 더구나 부시 행정부는 미사일방어 구축과 함께 대량살상무기 개발 의혹을 미국 스스로 판단하고 필요하면 선제 공격을 해 이를 무산시킨다는 '대확산' 전략을 4대 군사 전략의 하나로 삼고 있다. 우리가 2년 후의 한반도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금부터 예방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에 의한 한반도 전쟁 발발 가능성

 


물론 한반도 상황이 위기로 치닫는다고 해서 그것이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다고 할 수 없다. 미국이 한국인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주한미군을 포함한 미국측의 적지 않은 인적·물적 손실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며, 중국이나 러시아가 결코 좌시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부시 행정부의 이성에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


북한의 호전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북한이 남침할 가능성이 수백분의 1에 불과하더라도 이에 대비하는 것이 안보 담당자 본연의 임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은, 북한에 대한 경계심이 지나친 나머지 미국에 의한 한반도 전쟁 발발 가능성을 경계하거나 이를 예방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인식이 어떻든, 분단 체제에서 누려온 기득권이 어떻든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는 것은 우리 민족의 마지노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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