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마오쩌둥 혁명의 최후 무덤 되는가
  • 이성규(리포트25 프로듀서) ()
  • 승인 2001.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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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마오이스트 반군, 중국에 버림받아 '위기'
네팔 갸넨드라 국왕이 비상 사태를 선포하고 마오이스트(마오쩌둥주의자) 반군 소탕작전에 한창이던 지난 12월7일, 네팔 외무부는 내외신 기자들에게 보도 자료 한 장을 내놓았다. 그것은 네팔의 데우바 총리와 중국의 외교부장 사이에 오간 전화 통화 내용이었다. '중국 정부를 비롯해 중국 인민과 중국 공산당은 네팔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선포한 네팔의 비상 사태를 지지한다. 또한 중국 정부와 중국 공산당은 네팔 마오이스트 반군과 그 어떤 접촉 및 관계가 없음을 밝힌다. 네팔과 중국은 평화 공존 5개 원칙을 기본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네팔 정부는 보도 자료에서 중국 외교부장이 위와 같이 밝혔고, 이에 대해 데우바 총리가 감사를 표했다고 강조했다. 지난 11월30일 중국 정부가 발표한 '네팔 마오이스트 진압 지지' 방침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자리였다. 마오쩌둥(毛澤東)의 나라 중국을 자신들의 막후 지원자로 믿었던 반군에게는 청천 벽력이었다.


1996년 2월 조직원 2백명으로 '네팔 마오이스트 공산당'을 결성한 반군은 중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무장 투쟁을 시작했다. 이들의 활동은 경찰을 대상으로 한 소규모 공격에 국한해 외신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네팔 왕가의 비극 이후, 3만 명의 군사력을 지닌 혁명 세력으로 떠오름으로써 네팔 정부는 반군을 정치 집단으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휴전 상황'이 시작된 지난 7월부터 정부와 반군은 모두 세 차례 평화협상을 벌였으나 반군이 입헌군주제를 폐지하고 인민공화제로 바꾸자는 주장을 굽히지 않아 이렇다 할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4차 협상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반군은 카트만두 서부 롤파 지역의 당덩에서 위원 37명으로 구성된 중앙인민정부 수립을 선언하고 바부람 바트라이 박사를 대통령으로 추대한 데 이어 협상 연기를 일방적으로 발표해 향후 일정이 불투명해졌다.


중국, 마오이즘 '명분' 버리고 '실리' 택해


그러던 중 반군이 11월23일 밤, 카트만두에서 서쪽으로 175㎞ 떨어진 시앙자 지역과 남서부 당 지역의 경찰서와 군부대를 습격해 경찰관 24명과 군인 12명을 사살하는 등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인 공격을 가하자 사태는 급진전하기 시작했다. 반군이 네팔 정규군을 공격한 것은 1996년 무장 투쟁을 시작한 이래 처음이었다.




솔루쿰부 지역 등에서 군과 경찰 초소, 정부 건물 등이 잇달아 공격받고, 반군 2백여 명과 경찰·정부군 20여 명을 포함해 2백80여 명이 사망하자 갸넨드라 국왕은 내각의 요청을 받아들여 11월26일 전국에 비상 사태를 선포하고 군대 동원령을 내렸다.


데우바 총리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마오이스트들이 협상 테이블을 떠나 정부군을 공격한 것은 일방적인 배신 행위이다. 테러리즘을 패배시키고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정부의 합법적인 의무이다." 네팔은 내전 상황을 타개하는 데 테러리즘에 반대하는 세계적인 조류를 이용하려고 했다.


강대국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미국·영국은 네팔의 지원 요청에 바로 화답했고, 인도는 반군 진압을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여기까지는 예상된 일이었다. 그런데 비상 사태 선포 이후 수세에 몰린 반군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은 일이 생겼다. 중국이 11월30일, 네팔 정부가 요청할 경우 반군 소탕 작전을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거기다가 12월7일에는 네팔의 비상 사태 지지를 재확인하기까지 했다. 반군은 중국이 네팔 정부를 적극 편들고 나서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네팔은 중국과 인도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 놓인 내륙 국가여서 두 나라를 통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교역도 할 수 없는 지정학적인 불리함을 안고 있다. 그래서 네팔은 등거리 외교라는 줄타기를 하며 양국 사이를 오가고 있다. 중국은 인도와 1960년대 국경 분쟁을 두 번 겪은 뒤 지금도 인도의 서북부 일부 지역을 점령하고 있다. 양국은 군사적으로 적대적일 수밖에 없다. 1980년대 후반 인도가 국경을 봉쇄해 경제난을 겪은 네팔로서는 인도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끌어들인 것이 중국이었다. 따라서 1996년부터 반군 세력으로 등장한 네팔의 마오이스트 게릴라는 중국 정부에 불편한 존재이다.


하지만 네팔 정부는 중국이 반군의 보이지 않는 후원자이거나 심정적 동지가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해 왔다. 그것은 인도의 마오이스트 게릴라의 경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것은 말 그대로 의심이었을 뿐, 반군과 중국이 접촉했다는 증거는 없었다.




아시아개발연구소 찬드라 싱 박사는 "중국이 고민하다가 명분보다는 실리를 취한 것 같다"라고 말한다. 중국은 국경을 마주한 네팔·파키스탄·부탄·인도를 잇는 남아시아의 복잡한 이해 관계에서 파키스탄 문제로 불편한 인도와 미국의 관계가 네팔 사태를 계기로 호전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3개월 안에 반군은 군과 경찰에 무력 공격을 감행할 수 없게 될 것이다." 12월11일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네팔의 쿰 바하두르 카드카 내무장관이 한 말이다. 그는 또한 반군에 대한 군·경 합동작전이 비상 사태 선언 이후 성공적이었다고 주장하면서 "반군은 군과 경찰을 공격할 수 없는 미미한 존재로 남게 될 것이다"라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이어 반군이 약탈한 무기를 반환할 때까지 평화회담은 없을 것이라고도 밝혔다.


무장 투쟁 6년째를 맞는 네팔 마오이스트 공산당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처음 3년 동안 반군은 농촌 빈민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들의 마오쩌둥식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최빈국 네팔에서 성공할지 모른다는 예측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일부 하부 조직이 반인권 행위를 저지르고 혁명 세금을 과다하게 징수해 네팔 민중이 돌아서고 말았다. 또한 보잘것없는 화력으로 11월23일 정부군을 공격한 것은 그들을 히말라야의 절벽으로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게다가 네팔 정부는 테러와의 싸움이라는 명분으로 중국을 비롯한 강대국의 지지를 얻어 반군 소탕의 정당성을 확보한 상태이다. 재래식 무기로 저항하고 있는 마오이스트 반군은 본의 아니게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셈이 되었다. 어쩌면 히말라야는 농촌을 거점으로 도시를 압박해 들어가는 마오쩌둥식 혁명의 마지막 무덤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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