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최후의 빨치산’ 낙살
  • 이성규(리포트 25 프로듀서) ()
  • 승인 2002.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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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식 혁명 꿈꾸며 카스트에 맞서…최근엔 코카콜라 공장 폭파, 반미 투쟁 깃발
아프가니스탄을 향한 미국의 공격이 한창이던 지난 10월21일 밤, 인도 서남부 안드라프레데시 주에 있던 코카콜라 공장이 무장 조직에 의해 폭파되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반대하는 테러였다. 마오쩌둥주의를 따르는 인민전쟁파(PWG;People’s War Group) 조직원으로 알려진 이들은 지난 2년 동안 안드라프레데시 주의 장관들을 살해하고 경찰서 습격과 지뢰 매설 등 무차별 공격을 감행한 빨치산이다.



그 뒤 11월1일 인도 중북부에 있는 비하르 주에서는 한바탕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마오쩌둥주의 중앙조직(MCC;Maoist Community Center)’은 경찰 13명을 사살했다. 비하르 주를 거점으로 활약하며 카스트 완전 철폐와 토지 재분배를 주장하는 MCC 또한 마오쩌둥주의 빨치산이다.


카슈미르 분리주의 세력과 더불어 인도에서 가장 과격한 게릴라 단체로 꼽히는 PWG와 MCC는 좌익 정치 집단인 낙살 세력의 분파 조직이다. 이들은 안드라프레데시와 비하르뿐만 아니라 마드야프레데시·오리사·마하라슈트라 주 등 인도 중부와 동부 여러 곳에서 경찰을 살해하고 공공 건물을 불태우는 등 빨치산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 조직 중 MCC는 상층 카스트의 목을 베는 공개 처형으로 악명이 높은데, 1999년 3월18일 비하르 주의 세나리에서는 MCC의 인민재판이 벌어져 상층 카스트 35명이 공개 처형되었다. 빨치산의 공격과 경찰의 소탕전으로 인해 지난 10년 동안 인도에서는 민간인·경찰·게릴라를 포함해 2만여 명이 죽거나 다쳤다.


인도에서는 빨치산 투쟁을 하는 조직들을 통틀어 ‘낙살’이라고 부른다. ‘낙살’은 투표에 의한 민주 정치를 거부하고 ‘권력은 총구로부터 나온다’는 마오쩌둥의 사상을 신봉하는 공산주의 조직이다. 인도와 네팔을 무대로 활동하는 낙살은 PWG·MCC·CPI-ML 등 모두 16개 분파로 나뉘어 일부 지역에서는 독자적인 행정 체계를 갖춘 해방구를 가지고 있다. 이들 혁명 전사들은 인도에 5만명, 네팔에 3만명 정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이들 지역에서 마오쩌둥의 가르침을 따르는 혁명 세력이 힘을 발휘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에서 말미암는다. 인도와 네팔 헌법은 카스트 제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21세기로 들어선 지금까지 카스트는 강력한 관습법으로 살아 숨쉬고 있다. 카스트 제도의 비인간적이고 반인권적인 모순 속에서 마오쩌둥의 혁명 이론이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낙살 세력 등장은 인도의 사회·경제 문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인도 정부는 1948년 토지개혁법을 제정해 하층 카스트인 농촌 빈민에게 땅을 나누어 주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토지를 지닌 상층 카스트가 집권당인 국민회의당에 대거 입당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최대한 유지하는 방향으로 토지개혁법을 왜곡하는 바람에 다수 농업 노동자의 반발과 적대감을 키웠다. 이러한 불만을 등에 업고 결성된 마르크스파 인도 공산당(CPI-M)은 지주 계급(상층 카스트)에 대한 무장 투쟁을 전개했다. 그러나 CPI-M은 1952년 총선에서 일부 의석을 얻게 되자 제도권의 정치 집단으로 안주했다.


해방구에 거점 두고 도시 투쟁으로 방향 전환


이러한 힘의 공백 상태를 비집고 낙살 세력이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낙살이라는 명칭은 1967년 웨스트벵갈의 다르질링 근처 낙살바리 마을에서 일어난 대규모 폭동에서 비롯했다. 그뒤 낙살 조직들은 1970년대 초 비하르와 안드라프레데시로 거점을 옮겨 빨치산 활동을 전개했다. 이들 지역의 미흡한 토지 개혁과 뚜렷한 빈부 격차 그리고 강한 카스트 제도가 낙살의 새로운 토양이 된 것이다. 이 지역 상층 카스트 남성은 ‘돌리브타나’라고 불리는, 하층 카스트 처녀의 정조를 유린할 수 있는 초야권(初夜權)을 갖고 있었다. 이같은 폭력에 대신 저항하며 낙살 조직은 하층민들의 방패막이로 자리 잡았다. 낙살 세력에게 위협을 느낀 상층 카스트는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민병대를 결성했다. 자신들에게 값싼 노동력과 사회적 지위를 제공하는 카스트 질서를 뒤엎는 낙살을 척결하기 위해 직접 나선 것이다.

전인도인민저항포럼(AIPRF)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21세기 들어서 인도의 마오쩌둥주의 빨치산은 새로운 투쟁 방식을 채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분대 규모 공작조로 밀림에서 활동하던 종전 방식을 바꾸어서 3~4명으로 된 소조를 마을과 부락에 배치해 암암리에 활동하는 방식을 구사하고 있다. 경찰에 노출되기 쉽고 밀림에서 활동해 효과가 별로 없는 종전 방식을 개선해 공작조의 규모를 줄이고 기동성을 높여 해방구에 대한 선전과 정치 활동을 강화한 것이다. 뉴델리와 몸바이 등 대도시에서도 비밀 아지트를 구축해 도시 투쟁을 강화할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네팔의 낙살은 비상 사태를 선포한 정부의 대대적인 소탕작전에 밀려 전멸 위기에 처해 있다.


인도와 네팔의 낙살은 마지막 남은 마오쩌둥주의 빨치산일 것이다. 이들은 가까운 시일 내에 소멸한 것인가, 아니면 더 오랫동안 혁명 세력으로 남게 될 것인가? 21세기인 오늘날 전근대적 유물이라 할 카스트가 위력을 발휘하는 봉건적 토양이 인도와 네팔에 남아 있는 한, 마오쩌둥주의를 추종하는 빨치산들은 살아 있는 권력이 될지도 모른다. 카스트와 빨치산은 서로 공생공사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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