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게을리하다 KO 당한 K마트
  • 워싱턴·변창섭 편집위원 (cspyon@sisapress.com)
  • 승인 2002.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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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표 ‘할인 유통점’ 파산 신청…월마트는 승승장구



미국의 대표적인 할인 유통 전문점 K마트가 최근 법원에 파산 신청을 내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월마트·타겟과 함께 미국 3대 할인 매장으로 꼽혀온 K마트는 경기 불황과 매출 부진, 서비스 부진과 가격 차별화 실패에 따른 고객 외면 등 복합적인 요인이 겹쳐 결국 파산 신청을 내기에 이르렀다. 미국 전역에 모두 2천1백개의 할인 매장과 약 24만명의 종업원을 둔 이 거대 기업은 법정관리를 받는 올 한 해 인원 감축과 조직 개편 등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을 통해 내년 초부터는 회생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이미 경영진은 퍼스트 보스턴 은행 등 채권단과 협상을 벌여 긴급 자금 20억 달러를 수혈받기로 했다.


100여년 전 시골의 한 조그만 잡화점으로 출발해 1980년대 후반까지도 미국의 할인 유통업계를 지배하던 K마트가 파산에 이른 까닭은 무엇일까. 하버드 경영대학원 낸시 코언 교수는 최근 공영 방송인 PBS에 출연해 “K마트는 가격 경쟁력으로 멀찌감치 앞선 월마트와 값싸고 멋진 디자인 상품으로 승부를 건 타겟의 중간에 끼어 도태된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코언 교수는 K마트가 마사 스튜어트·재클린 스미스·마리오 안드레키 등 대표적인 브랜드로 1980년대까지만 해도 짭짤한 재미를 본 것이 사실이지만 1990년대 들어 소비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 상품 개발 실패, 서비스 부진, 나아가 월마트·타겟과의 차별화에도 실패했다고 분석했다.



낡은 시스템, 불결한 매장, 형편없는 서비스…





사실 K마트는 미국 할인 유통업의 ‘선구’라는 칭호를 들을 만하다. 1899년 세바스티안 크레스지라는 사람이 시카고의 디트로이에 자신의 이름을 따 ‘S.S. Kresge’(K마트란 그의 성 첫 글자에서 따온 것)라는 할인 잡화점을 창업했을 때 이미 성공은 보장된 것이었다. 유명 브랜드를 싸게 판다는 전략은 실용적인 미국인의 입맛에 맞았다. 그의 사업체는 1930년대의 극심한 경제공황을 견뎌내며 굳건히 버텼고, 사업 거점을 도시에서 교외로 확대해 마침내 1962년에는 ‘K마트’라는 이름을 내건 대형 할인 매장으로 변신했다. 공교롭게도 그 해에는 월마트와 타겟이 동시에 할인 업계에 진출한 해이기도 했다. 월마트와 타겟의 거센 도전을 받기는 했지만 K마트는 1980년대 중반까지도 업계 선두 주자로서 큰 어려움 없이 시장을 지켜왔다. 실제로 1987년 연간 매출액은 2백40억 달러로 월마트보다 두배나 앞섰다. 그러나 그 해를 고비로 시장 지배력을 점차 잃어가기 시작했다.



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K마트가 쇠락한 원인은 경쟁사들의 발 빠른 움직임에 대응하지 못한 측면도 있지만, 그에 앞서 소비자의 욕구 변화를 수용하지 못한 탓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그 예로 K마트 일선 매장의 컴퓨터 시스템이 낡아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상품과 비인기 상품에 대한 품목별 재고 관리가 엉망이며, 소비자에 대한 서비스가 떨어지고 매장이 불결하고, 가격 경쟁력마저 갖추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서 1990년대 들어 월마트가 추월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1996년 월마트의 매출액은 1천50억 달러로 K마트의 4배나 되었다.


경쟁사들의 뜨거운 도전에 직면해 K마트는 1990년대 중반 매출액이 급감하면서 한때 도산 위기를 겪었으며 당시 많은 매점들을 패쇄하기도 했다. K마트의 쇠락은 곧 경쟁사들의 약진을 의미했다. 미국 전역의 2천여 K마트 매점 가운데 80%가, 경쟁사인 월마트 매점과 자동차로 고작 7분 거리에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K마트가 구조 조정 차원에서 올해 4백여 점포를 폐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까지도 K마트의 주력 상품은 가정 생활용품의 대표적인 브랜드 ‘마사 스튜어트’였다. 지난해 매출액 4백억 달러 가운데 이 브랜드 매출액이 1백50억 달러를 차지했을 정도다. 업계 전문가들은 K마트가 회생하기 위해서는 이 회사를 계속 붙잡아두는 것이 필수라고 본다. 이 회사는 K마트가 파산 신고를 했기 때문에 계약을 파기하고 경쟁사인 월마트와 타겟으로 매장을 옮길 수도 있다. 그러나 뜻밖에도 이 회사는 계약 기간을 지키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마사 스튜어트 브랜드를 유지한다 해도 K마트가 목표대로 내년 초에 회생할지는 의심스럽다. 과거 20년간 30개 할인 판매 회사 중 25개가 파산 신청을 냈는데 대부분 회생 방안을 찾지 못해 망했다. 지난 2년간 파산 신고를 낸 브래들리·캘더·에미스 등 이름난 할인 업체들은 아직 뚜렷한 경영 실적을 내지 못한 상태다. 파산 신청을 낸 회사들의 가장 큰 애로점은 기존 경영진의 퇴진은 물론이고 일선 매니저들도 하나둘씩 다른 직장으로 자리를 옮긴다는 것이다. 최근 K마트는 경영난에 빠진 회사를 회생시키는 데 솜씨를 발휘해온 제임스 애덤슨을 새 경영 총수로 영입했다.



K마트와 달리 월마트와 타겟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먼저 지난해 매출액 3백69억 달러를 기록해 <포춘>이 선정한 미국 500대 기업 중 37위를 기록한 타겟 사. K마트에 비해 타겟의 강점은 인기 높은 자체 브랜드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 회사가 영입한 월트 디즈니 출신 건축가인 마이클 그레이브스가 디자인한 수백 가지 매력 상품은 값이 싸지만 고급스런 느낌을 주어 소비자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타겟의 디자인 전략본부장인 론 존슨은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결국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비결은 상품 디자인이라고 그레이브스 브랜드의 강점을 설명했다.



타겟은 K마트와 달리 인터넷 온라인을 통한 상품 판매에도 손을 뻗쳐 1998년에는 리버타운이라는 우편배달 전문 회사를 설립해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1천3백개 매장에 종업원 25만4천명을 둔 타겟은 수익률이 해마다 20~30%씩 늘어날 정도로 사세가 확장하고 있다.



미국은 물론 세계 제1의 유통업체로 자리를 굳힌 월마트는 독일·한국을 포함해 세계 여러 나라에 진출한 다국적 ‘할인점 왕국’이다. 지난해 말 현재 월마트는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에 4천1백50개의 할인 매장을 갖고 있고, 회원제로 운영하는 창고형 할인 매장인 샘스 클럽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1천9백13억 달러. 종업원 숫자는 무려 1백24만4천명에 달했다.





월마트가 성공한 비결은 무엇일까. 업계 전문가들이 꼽는 원인은 여러 가지다. K마트는 자사 브랜드를 강조하기보다는 저가 광고 등 고전적 판매 수법에 의존했다. 게다가 재무 구조를 무시한 채 월마트와 가격 경쟁을 벌인 것이 화근이었다. 이에 반해 월마트는 물류 첨단화 시스템과 사업 다각화 전략을 동원해 고객에게 직접 파고들었다. 물류 첨단화와 관련해 월마트는 5만여 상품 하나하나에 바코드를 붙여 재고 목록 시스템을 자동화하고 인공위성 시스템까지 동원한 최고의 첨단 배송 체계를 갖추어 시간과 비용 절감에 앞장섰다. 월마트가 가격 경쟁력에서 K마트와 타겟을 누를 수 있었던 비결은 이런 첨단 물류 시스템이었다.



,b>월마트는 가격 경쟁력, 타겟은 고급 디자인 앞세워



사업 다각화와 관련해 월마트는 창고형 할인 매점인 샘스 클럽을 만들어 소규모 자영업자들과 대량으로 물건을 구입하는 고객을 공략했다. 월마트가 1990년부터 K마트는 물론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통업의 강자 시어즈까지 앞지르게 된 원동력은 바로 이런 다각화 전략이다. 여기에 더해 월마트는 1960년대 K마트가 인구 5만명 이하의 도시에 진출하지 않은 약점을 집중 공략해 시장을 확대했다.





월마트의 전신은 창업주 샘 월튼이 1945년 아칸소 주에서 형과 함께 설립한 벤 프랭클린이라는 잡화 체인점이었다. 그는 아칸소 지역 소매상과 계약을 맺고 지역내 저가 상품을 공급하며 사업을 번창시켜 창업 20년 만인 1960년까지 점포 15개에 연간 매출액 1백40만 달러를 기록할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다 K마트가 본격적인 할인 매장을 표방한 1962년 월튼은 할인업계 진출을 결심하고 월마트 1호점을 열었다. 월튼은 처음부터 일반 소비자들에게 월마트에 오면 늘 유명 브랜드를 싸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매일 최저가(EDLP:Every Day Low Price)’ 작전도 그대로 적중했다. 월튼은 1970년 월마트를 주식 시장에 공개하면서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인간 중심의 경영 비전을 제시해 눈길을 모았다. 이를테면 그는 ‘수익 분담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종업원들에게 회사 수익의 일부를 돌려주고, 자신들의 성공이 회사의 성공에 달려 있다는 믿음을 주어야 종업원들이 회사에 애착을 갖게 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지난해 미국 공영 방송인 PBS는 특집 방송을 통해 월마트가 창업주 샘 월튼의 경영철학과는 다소 거리가 먼 기업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고 고발해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보도에 따르면, 월마트 종업원들이 매주 평균 수령액이 2백50 달러에도 못미치는 박봉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방송은 또 월마트가 노조 창설에 적대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면서, 신입 종업원들에게 노조를 결성하는 대신 자신들의 불만 사항을 상사에게 전달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유도하는 비디오 테이프를 보도록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 방송은 월마트에 입사한 종업원 가운데 70%가 입사 1년 안에 회사를 떠나는 이유가 ‘인정받지 못하고 처우도 열악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월마트의 사세는 하늘을 찌를 듯하다. 한 통계에 따르면, 매주 약 1억명의 고객이 월마트 할인 매점을 찾는다고 한다. 매점에 진열된 상품은 5만여 가지에 이른다. 미국 50개 주 방방곡곡에 진출하지 않은 곳이 없는 월마트는 지금도 이틀에 하나꼴로 매장을 신설하고 있다.



저돌적인 경영 기법과 가격 경쟁력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월마트, 염가에 고급스런 디자인으로 소비자의 취향을 사로잡는 타겟. 양대 업체의 틈바구니에서 가격 경쟁력은 물론 차별화 기회마저 놓쳐버린 K마트가 새 경영진을 맞이해 회생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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