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인들 못 바꾸랴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2.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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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베네수엘라 군부와 손잡고 차베스 축출 시도 의혹
문:미국에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는 까닭은?
답:(미국에는) 미국대사관이 없으니까.
1970년대와 1980년대 중남미의 식자층에서 유행했다는 이 농담은, 미국의 이해에 의해 숱한 굴절의 역사를 보낸 중남미 각국 정치의 단면을 날카롭게 풍자한 것이다. 최근 이 농담이 남미에 다시 번질 조짐이다. 지난 4월14일 쿠데타 실패와 차베스 대통령의 권좌 복귀로 막을 내린 베네수엘라 사태에 미국이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와 일간지 〈뉴욕 타임스〉 등 미국의 주요 언론은 쿠데타 불발 직후, 베네수엘라의 쿠데타 세력과 미국 국무부·국방부의 고위 관리가 쿠데타가 발생하기 전에 접촉했다고 폭로했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 4월15일, 미국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해 ‘부시 행정부의 고위 관리들이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를 몰아내려는 세력의 지도자와 최근 몇 개월 동안 수 차례 만났다’고 보도했다.

〈뉴욕 타임스〉는, 이들이 쿠데타가 발생하기 한 주 전, 이틀 동안 만나 차베스 대통령이 축출되어야 한다고 합의한 사실도 아울러 폭로했다. 비슷한 무렵 미국 시사 주간지 〈뉴스 위크〉도 같은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차베스 대통령을 축출하려 했던 군부 세력들이 사건 발생 약 2개월 전인 지난 2월 말 수도 카라카스의 미국대사관을 찾아가 대사관 관계자들에게 자신들의 쿠데타 계획을 알렸다’는 것이다.


보도 내용에 대해 기자들이 진위 여부를 캐묻는 등 사태가 심상치 않게 번지자 미국 정부는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백악관측은 “담당 관리들이 쿠데타 관련 인사들을 만난 적은 있지만 쿠데타를 승인하거나 사주한 적은 결코 없었다”라고 주장했다. 미국 백악관 대변인 애리 플라이셔는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 정부는 오히려 이들에게 쿠데타를 만류했었다’고 주장했다. 특정 정치 지도자에 대한 거부는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개입했다는 의혹은 시간이 갈수록 구체화하고 있다. 먼저 쿠데타 세력과 접촉했다는 ‘고위 관리’가 거명되기 시작했다. 오토 후안 라이치 미국 국무부 서반부 담당 차관보가 대표적이다. 쿠바 태생 미국인이며 베네수엘라 대사를 지낸 그는 반 차베스 강경파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987년 국무부에 근무할 때, 남미의 반미 세력에 대한 심리전을 위해 의회의 승인을 받지 않고 예산을 사용했던 일로 현직에 임명될 때 의회 청문회에서 물의를 빚었다.





또 다른 미국측 인사들의 이름도 나오고 있다. 라이치 차관보의 옛 동료였던 엘리엇 에이브럼스와 존 네그로폰테가 바로 그들이다. 두 사람은 1980년대 레이건 정권 때 있었던 제3 세계에 대한 미국의 비밀 공작에 직·간접으로 연루되어 불신을 받았던 인물이다. 에이브럼스는 이란·콘트라 사건에 대해 미국 의회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네그로폰테는 온두라스 대사 시절 온두라스 살인 특공대와 연루되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들은 라이치와 함께 미국의 중남미 정책에서 ‘강경파 3인’으로 통하고 있다.


이들의 대화 상대이자 지난 4월12일 발생한 반 차베스 쿠데타의 주역으로는, 베네수엘라 군 참모총장인 루카스 로메오 린콘 장군과 일부 퇴역 장성들, 베네수엘라의 기득권 세력을 대표하는 기업가 페드로 카르모나(쿠데타 직후 임시 대통령에 취임했다가 사임)가 꼽힌다. 이들 중 카르모나는 쿠데타 직전 오토 라이치 차관보와 직접 통화했다는 인물이다(라이치 차관보는 이에 대해 찰스 샤피로 대사를 통해 간접 대화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베네수엘라 시민의 반 차베스 시위가 절정에 오른 4월12일 ‘차베스 사임’ 소식을 언론에 흘리며 전격적으로 거사해 새로 임시 정부를 수립했다가 차베스 대통령이 복귀하자 이틀 만에 다시 쫓겨났다.






미국개입설이 유포되는 배경에는, 차베스 대통령과 미국 정부의 악연이 자리 잡고 있다. 1998년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어 권좌에 오른 차베스 대통령은 사사건건 미국의 이해에 반하는 행동으로 일관해 미국 정부로부터 미움을 받아 왔다. 차베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이라크·리비아 등 미국이 불량 국가로 지목한 나라들과 관계를 개선해 왔다. 차베스 대통령은 또 쿠바에 석유를 수출함으로써 경제 봉쇄로 피델 카스트로를 압박하려는 미국의 비위를 건드렸다.


차베스 대통령은 미국이 최근 몇 년 동안 공을 들여온 콜롬비아 ‘마약 반군’ 소탕 작전에도 협조하지 않았다. 그는 마약 반군을 소탕하기 위해 미군이 영공을 통과하게 해 달라는 미국측 요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게다가 그는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천명한 반 테러 전쟁에도 동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반 테러 전쟁을 ‘테러리즘에 대한 또 하나의 테러리즘’이라고 비난했다. 이래저래 차베스 대통령은 미국 정부에 눈엣가시가 되었던 것이다.


차베스 대통령과 미국의 관계가 처음부터 나빴던 것은 아니었다. 1998년 12월 차베스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미국은 새 대통령이 쿠데타 전력이 있는 군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군사 통치와 쿠데타 악몽에서 베네수엘라 국민을 벗어나게 해준 공헌을 인정하고 장도를 축복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1992년 반란군 천명을 이끌고 쿠데타를 일으켜 당시 대통령이었던 카를로스 안드레아스 페레스에게 도전했다가 실패한 전력이 있다.


하지만 대통령 취임 이후 차베스가 본격적으로 반미의 길을 걷자 미국의 태도는 달라졌다. 특히 지난해 차베스 대통령이 석유 수출 로열티를 외국 기업에 높게 물리는 새 ‘석유법’을 마련하자 미국의 불만이 거세진 것으로 보인다(68쪽 상자 기사 참조).





미국 정부가 차베스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한 시점은 대략 지난해 11월께로 보인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는 지난해 12월 말, 한국 식으로 말하자면 ‘관계 기관 대책 회의’가 미국 정부 내에서 열렸던 사실을 전하면서, 베네수엘라에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이 신문은 지난해 12월29일자 기사에서 ‘지난달 초 국가안보국(NSA)·펜타곤(국방부)·국무부가 미국의 베네수엘라 정책을 마련하려고 회동했다. 비슷한 모임이 쿠데타가 발생하기 전에 과테말라·브라질·아르헨티나에서도 있었다’고 보도했다.


공교롭게 때맞추어 미국의 여론도 차베스 대통령을 맹렬하게 공격했다. 차베스 대통령의 경제 실정(失政)과 그에 따른 민심 이반 현상을 크게 부각했다.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 커트 웨일랜드 교수(행정학)는 미국의 영향력 있는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2001년 11월·12월호)에 기고한 논문을 통해 ‘집권 초기 70% 이상의 지지를 받았던 차베스의 인기가 거듭된 경제 실정으로 최근 40%대로 주저앉았다’며 차베스 정권의 능력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 무렵부터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이루어 한때 ‘민주주의의 전도사’로 칭송되던 차베스 대통령에게는 ‘실패한 혁명가’라는 딱지가 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4월12일 베네수엘라에서는 반 차베스 연합 세력이 ‘독재 항거’의 깃발을 들고 쿠데타를 감행하는 정치 격변이 벌어진 것이다. 쿠데타와 역 쿠데타의 숨막히는 드라마는 4월14일 베네수엘라 국민의 절대 지지를 받는 차베스 대통령이 복귀함으로써 막을 내렸지만 뒷맛은 여전히 개운치 않다. 반 차베스파는 차베스 대통령의 ‘대화’ 제의를 받아들이는 대신, 쿠데타 직전의 유혈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현직 대통령 기소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이 쿠데타 세력에게 주문한 ‘합법적인 독재자 축출 운동’이 실행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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