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180개국 군대 훈련시킨다
  • 워싱턴·변창섭 편집위원 (cspyon@sisapress.com)
  • 승인 2002.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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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FBI 동원, 군사 교육·지원 통해 ‘친미화’…9·11 테러 이후 더욱 극성
역대 미국 행정부가 냉전 시절 전세계에서 ‘친미 정권’ 구축을 위한 중요한 정책 도구로 활용해온 해외 군사 훈련이 테러와의 전쟁 이후 전성기를 맞고 있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국내 1백50개 군 위탁 기관과 전세계 1백80개국에서 매년 10만여 명의 외국 군인 또는 준군인들을 훈련하고 있다. 1990년대 들어 부쩍 증가 추세를 보여온 군사 훈련 계획은 특히 지난해 9월 테러 발생 이후 그 범위와 대상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지난 3월 의회에 요청한 긴급 추가 예산 가운데는 10억 달러 규모의 신규 군사 훈련비가 포함되어 있다.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면서 외국이 미국의 군사 훈련이나 지원을 필요로 할 경우 아낌없이 지원할 것이다”라고 선언한 바 있다.






현재 미국 정부가 실시하는 각종 대외 군사 훈련 프로그램은 열여덟 가지이며, 수혜 대상국은 1백80개국에 달한다. 또 이 훈련에는 미국 국방부는 물론이고 국무부·교통부·법무부, 심지어 정부와 계약을 맺은 민간 군사 전문 업체까지 참여하고 있다. 각종 보병 기초 훈련에서부터 무기 체계 운용·심리전까지 훈련 대상에 포함된다. 2001년 1월에 발간된 대외 군사 훈련 보고서에 따르면, 군사 훈련 교과목에 포함된 항목이 무려 4천1백개나 된다.



훈련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국무부 예산으로 치르는 ‘국제 군사 교육 훈련 계획’이다. 이 계획은 베트남전이 끝난 1976년 미국 의회가 수립했다. 이는 베트남전과 유사한 전쟁이 터질 경우, 미군을 개입시키지 않고 분쟁 당사국 군대를 투입하기 위해 세운 계획이다. 이 계획은 특히 사회주의권이 몰락한 1990년대 이후 대폭 확대되기 시작했다. 내년 예산은 지난해보다 3천만 달러가 늘어난 8천만 달러로 책정되어 있다. 이 계획의 수혜 대상국은 50개 남짓인데, 대부분은 최근 들어 국경 분쟁과 민족 분규가 끊이지 않는 서부 사하라 일대 나라들이다.



이 계획의 대다수 훈련은 미국 내에 분산된 1백50개 군사 위탁 시설에서 이루어진다. 그 중 미국 육군이 운영하는 조지아 주 포트 베닝에 있는 ‘아메리카스 학교’는 해외 연수생을 매년 평균 6백∼8백 명 받아들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이 학교는 1998~2000년에 해마다 남미 병사를 1만5천명 정도 훈련한 바 있다. 외국인 병력을 훈련한 기관은 그밖에도 캘리포니아 소재 해군 특수전 훈련소, 미국 육군 정보 센터, 미국 육군 지휘참모대학 등을 포함해 미국 전역에 흩어져 있다.



대외 군사훈련 프로그램 예산 90억 달러 넘어



군사 훈련 프로그램을 통한 ‘군사 외교’로 미국이 얻는 것은 뜻밖에도 많다. 그 대상이 저개발 국가일 때는 더욱 그렇다. 태평양 중서부의 투발루라는 조그만 섬나라는 얼마 전 군사 훈련 계획의 일환으로 미국으로부터 1만2천 달러를 지원받았다. 그 이유는 2000년 10월 유엔 총회가 이스라엘의 잔혹 행위를 비난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고자 했을 때, 이 나라가 미국·이스라엘과 함께 반대 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미국이 지불한 1만2천 달러는 투발루의 미국 입장 동조에 대한 ‘보상금’이었던 셈이다.






국무부는 국제군사교육훈련계획 외에도 다른 군사 훈련 프로그램 10여 개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기에 책정된 내년도 예산은 무려 90억 달러를 넘는다. 이를테면 대외군사금융계획(FMF) 용도로 책정된 예산만 41억 달러에 이른다. 이 계획은 미국제 무기는 물론 무기 체계 훈련을 원하는 외국 군대에 자금까지 지원해준다. 핵폭탄 실험으로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올라 있는 파키스탄과 인도마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목으로 각각 5천만 달러씩 이 계획에서 지원받았다.



미국 국방부는 공식적으로는 모두 7개인 해외 군사 훈련 프로그램에 고작 4억 달러 정도를 쓰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물론 이 액수는 어마어마한 국방부 관련 예산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국방부가 운용하는 진짜 군사 훈련 계획은 공식 예산 항목에는 잡히지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특수전 병력 해외 파견이다. 9·11 테러 이후 특수전 파견 수요는 더욱 커졌다. 지난해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관련해 현지 병사들을 훈련하기 위해 특수전 요원들을 투입한 바 있다. 아프가니스탄말고도 필리핀·예멘·그루지야 병력도 훈련 중이다. 최근 공개된 한 자료에 따르면, 1991년 미군 특수전 병력은 전세계 92개국에서 활동했지만 1999년에는 1백30여 개국으로 크게 늘어났다.



국무부나 국방부 외에 법무부 산하 연방수사국(FBI)과 마약단속국도 해외 준군사 요원 훈련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지난해 9월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최일선에서 수행 중인 연방수사국은 매년 32개 국제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해외 연수생 1천2백명을 훈련한다. 이들 중 약 9백명은 해외에서 연방수사국 요원에게 연수를 받지만 나머지는 버지니아 주에 있는 연방수사국 연수원에서 교육받는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이처럼 대외 군사훈련 계획이 거듭 확대되자 미국 정부가 여러 민간 군사 업체들과 계약을 맺어 일부 훈련 계획에 대해 훈련 대행 등 용역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종의 아웃소싱이다. 아웃소싱의 주목적은 위험 지역으로 파견되는 미군 현역 훈련 요원을 줄이려는 데 있다. 이를테면 국무부는 아프리카 위기대응계획(ACRI)과 관련한 훈련을 아예 민간 군사훈련 전문 업체인 MPRI와 Logicon 두 회사에 맡겨버렸다.



민간에 교육 위탁·독재 정권 지원해 말썽



그러나 아웃소싱에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초 미국 선교사와 유아를 태운 민간 항공기가 마약범을 태운 비행기로 오인되어 격추된 일이 있는데, 당시 공격에 나섰던 조종사가 미국 앨라바마 주에 있는 ADC라는 민간 군사 업체 소속인 것으로 드러나, 미국 의회에서까지 논란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군사훈련계획이 일부 수혜국의 독재 정권을 지원하거나 인권 탄압에 악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국무부가 최근 발표한 인권보고서에 따르면, 국제군사교육훈련계획 수혜국 가운데 적지 않은 나라의 정부군이 인권을 유린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의회는 일찍이 인권 유린국에 대해 군사훈련계획을 실시하지 못하도록 관련법까지 제정했지만, 그나마 지난해 9·11 테러 이후에는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이를테면 아제르바이잔·파키스탄·에티오피아·예멘·우즈베키스탄·터키·인도네시아·필리핀·콜롬비아 등은 인권 탄압국이자 훈련 수혜국이다.



과거 냉전 시절 미국 정부는 반공 투쟁을 명분으로 훈련 수혜국들의 인권 탄압 행위를 묵인했다. 똑같은 악습이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목 아래 되풀이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12월 신설된 지역방위 대테러계획(RDCFP)인데, 그 주된 수혜자는 동 티모르 주민을 무자비하게 탄압해 악명을 떨친 인도네시아 군인들이다(인도네시아 기사 참조).



미국이 비싼 돈을 들여 훈련한 외국 군대가 결과적으로 자국민의 인권을 탄압하는 일에 동원되고 있는 데 대한 비판이 미국 내에서도 쏟아지고 있다.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한 보완책으로 연방 의회 차원의 철저한 감독 기능 부활은 물론 언론의 감시 기능도 강화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지만 부시 행정부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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