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탈북자 안식처 될까
  • 워싱턴·정진호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2.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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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 국무장관 “난민 지위 부여 검토”…정책 확정까지는 시간 걸릴 듯
최근 탈북자들이 중국 베이징 주재 서방 외교공관에 진입해 망명을 신청하는 사례가 늘어나자 미국 정부가 내부적으로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만일 앞으로 탈북자들이 미국에 대량으로 망명을 요청할 경우 무조건 외면할 수만은 없는데, 그것을 해결할 마땅한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최근 연방 하원의 마크 커크 의원을 비롯해 톰 데이비스·에드 로이스 의원과 상원의 샘 브라운백·에드워드 케네디 의원 등 중량급 의원들이 미국이 탈북자를 수용하는 문제를 현실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하면서 국무부 등 실무 부처는 아연 긴장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6월 한달간 하원과 상원을 잇달아 통과한 탈북자 보호 결의안에 행정부로 하여금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도록 요구하는 대목이 포함되자 국무부는 중국내 탈북자 정책에 대한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이와 관련해 공화당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은 “최근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탈북자들에게 난민 심사 대상 2순위에 해당하는 ‘P-2’ 지위를 부여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뜻을 내게 밝혔다”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P-2 지위란 미국이 미국행 난민 신청자 처리를 위한 4등급 가운데 두 번째에 해당하는 것이다. 미국 국무부는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이민귀화국과 협의해 난민 지위를 부여한다. 현재 P-2에 해당하는 대상자는 보스니아·미얀마·쿠바·이란·옛 소련·베트남 출신으로, 대부분 종족 분쟁 혹은 정치적 박해로 인한 피해자들이다.


지금까지 미국 정부는 중국에 거주하는 탈북자들에 대해 ‘난민(refugee)’이 아닌 ‘이주민(migrants)’으로 호칭하며 느긋한 입장을 보여왔다. 이같은 입장은 중국 정부가 탈북자들을 ‘식량을 구하러 국경을 넘어온 경제 이주민’으로 간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미국 정부가 굳이 이주민이라는 표현을 고집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국제법적인 효력이 있는 난민이라는 지위를 탈북자들에게 부여할 경우 이들에 대한 대우가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일단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탈북자들이 미국행을 원할 경우 미국은 꼼짝없이 이들의 미국내 정착을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정부는 1980년에 제정한 ‘난민령’에 근거해 난민 지위 부여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난민으로 인정받으려면 난민 지위를 신청할 때 자신의 조국 영토 바깥에 있어야 하며 과거에 박해를 받은 경험이 있어야 한다. 박해를 받은 경험이 없더라도 조국으로 돌아갈 경우 인종이나 종교, 국적, 특정 사회 또는 정당·단체 회원 가입 등으로 박해받을 만한 ‘충분한 우려’가 있다고 입증해야만 한다. 미국의 인권활동가들은 탈북자들이 북한으로 송환될 경우 박해받을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에 당연히 그 기준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실무 부처인 국무부 입장은 그리 간단치 않아 보인다. 국무부 인구·난민·이주국 아서 듀이 차관보는 지난 6월21일 상원에서 열린 탈북자 청문회에서 난민 인정과 관련해 나름의 지침을 제시했다. 그는 우선 해외 주재 미국 공관은 공관 내에 진입하는 외국인에게 망명을 허용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했다. 둘째로, 미국 망명 신청을 하려면 신청자가 미국 내 또는 미국 국경 지대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점을 꼽았다. 마지막으로 그는 망명 신청은 본인이 아닌 제3자가 대신 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미국 정부가 지난 5월 초 중국 주재 서방 공관에 진입한 일부 탈북자의 망명 신청을 거부한 것은 이같은 기준에 따른 것이다.


“탈북자 재정착은 일단 한국이 담당해야”


물론 난민 신청자가 미국 바깥에 있더라도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로부터 정식으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을 경우 사정은 달라진다. 미국 정부는 그 경우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사람이 미국 정착을 희망할 경우 이민귀화국 심사관의 조사를 거쳐 허락 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나 이 부문에서도 탈북자들의 사정은 다르다. 듀이 차관보는 “보안상의 이유로 인해 탈북자에 대해서는 사전에 국무부와 이민귀화국의 승인은 받지 않은 채 미국 담당관이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의 난민 심사 조회를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이런 정책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실시되어 왔다”라고 상원에서 밝혔다. 따라서 관련 법을 뜯어고치지 않는 한 정상 절차를 거쳐 탈북자가 미국으로 망명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난민령에 따르면, 미국 대통령은 특정 국가가 자국민에 대해 광범위한 탄압을 저지른다고 믿을 경우 해당 외국민에 대해 이른바 난민 지위에 해당하는 ‘임시 난민보호지위’(TPS)를 부여할 수 있다. 과거 내전의 불길에 휩싸인 조국을 등진 엘살바도르와 니카라과 국민 상당수가 바로 이같은 혜택을 누렸다.

커크 의원은 탈북자들이 이런 지위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방안 외에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은 옛 소련 내 유대인들을 미국이 받아들인 ‘로텐버그 수정안’을 원용해 탈북자들을 받아들일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아직은 탈북자들의 재정착은 일단 한국이 담당해야 한다’며 탈북자의 미국 망명에 부정적이다.


몽골 난민수용소 건설 쉽지 않아


이런 상황에서 최근 부쩍 국제적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 바로 중국과 접경한 몽골에 탈북자 난민촌을 건설하자는 방안이다. 이런 안을 적극 추진하는 사람은 지한파인 커크 의원이다. 그는 최근 유력한 보수 정책 집단인 헤리티지 재단이 주최한 조찬 세미나에 참석해 “탈북자 급증 문제로 골치를 썩고 있는 중국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몽골에 난민촌 건설 방안을 고려해볼 만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정착촌 방안이 현실화할 경우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이나 미국 국무부는 이에 필요한 충분한 자금을 이미 확보하고 있다. 문제는 정치적 의지가 있느냐 하는 점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몽골 정부가 난민촌 건설에 부정적이고, 중국도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해 협조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난민촌 건설이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워싱턴의 한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국무부가 중국내 탈북자 문제에 대한 전면 재검토 작업에 들어간 만큼 P-2 지위 부여 등 눈에 드러나는 결과가 머지 않아 나올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행정부나 의회 모두 격화일로를 걷고 있는 중동 사태에 정신이 없는 만큼 중국내 탈북자 정책에 대한 검토 결과가 올해 안에 나오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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