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포르노 공작’ 실패?
  • 모스크바·정다원 통신원 (dwj@sisapress.com)
  • 승인 2002.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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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익 동원해 비판적 작가 ‘외설 혐의’로 고소 의혹…검찰, 불기소 결정
'포르노 논쟁’이 정교 신앙이 돈독한 러시아를 뜨겁게 달구었다. 포르노 논쟁의 불씨가 된 작가는 40대 반항아 블라디미르 소로킨(47). 국내외 지식인 독자층에서 인기가 있는 소로킨은 아방가르드와 리얼리즘 문학을 융화·조화한 포스트모던 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논쟁은 지난 7월 초 ‘동반 행동인’이라는 우익 단체가 소로킨의 소설 〈얼음〉과 〈하늘색 살얼음〉을 ‘포르노를 유포해 사회 윤리를 어지럽힌 불온한 작품’이라고 공격한 데서 시작되었다. 이 단체는 그의 작품을 형사 고발하고, 책을 불태우는 등 과격 행동을 보였다.






법정에서 ‘포르노 유포’ 혐의에 대해 유죄가 인정되면, 러시아 형법 242조에 따라 소로킨은 2년 금고형이나 벌금형을 받게 된다. 이에 대해 소로킨은 “그들의 행동은 파시스트 시대와 중국의 문화 혁명을 생각나게 한다”라고 맞서며, 자기 작품 속에는 포르노그라피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소로킨의 작품 중 특히 외설 시비에 휘말린 것은 〈하늘색 살얼음〉이다. 이 작품의 예술성에 대한 평가는 비평계에서도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보수적 비평가들이 ‘저속성의 극치’ ‘쓰레기’ ‘변기통 예술’ 같은 원색적인 용어를 써가며 혹평한 반면, 진보적 비평가들은 ‘가장 소로킨다운 작품’ ‘문학사에 길이 남을 21세기 걸작’이라고 극찬했다.



미국 국무부 끼여들어 국제 문제로 비화



‘세계에는 우상을 초월한 존재가 상존한다’는 니체의 말을 제사(題詞)로 삼은 소설 〈하늘색 살얼음〉은 노골적인 성 묘사, 외설적이고 쌍스런 언어 구사와 동성애 문제에 대한 작가의 태도 등이 화제가 되었다. 작품 속에는 스탈린과 흐루시초프 등 옛 소련 지도자들을 연상케 하는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집단 섹스·동성애 등 변태 행각을 벌이는 장면도 묘사되어 있다.



소로킨의 책을 펴낸 애드 마기넴 출판사 편집장 알렉산드르 이바노프는 이번 사건이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한 노골적인 음해라고 주장했다. 1960∼1970년대 소련 공산당 지도부가 문학을 정치의 노리개로 전락시키려 했던 음모에 비유한 것이다. 소로킨은 사실 푸틴 대통령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온 크렘린이 친푸틴계 청년 단체인 ‘동반 행동인’을 동원해 포르노 논쟁을 일으켰다는 얘기다.



미국 국무부까지 거들고 나서면서 논쟁은 국제적 이슈가 되었다. 미국 국무부는 ‘러시아에 예술 탄압이라는 악몽이 재현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대변인 논평을 통해 소로킨을 옹호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크렘린은 이번 사건과의 연관성을 일축하고, 검찰과 법원의 결정을 중시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푸틴의 측근들이 ‘작가 길들이기’를 시도한 흔적 또한 역력하다고 러시아인들은 보고 있다.



사건은 치열한 법정 다툼 끝에 검찰의 불기소 결정으로 일단락했다. 이 사건을 담당했던 미하일 아브듀코프 검사는 “작가의 취향은 사법 판단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라고 불기소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소설에 외설적인 부분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라고 사족을 달았다.



‘정치적 게임’이든 아니든, ‘포르노 스캔들’ 덕분에 작가 소로킨은 일약 유명 작가로 떠올라 세계에 이름을 알리고 돈방석에도 앉은 행운아가 되었다. 모스크바 유명 서점에서 소로킨의 책 판매 순위는 25위에서 17위로 도약했고, 〈하늘색 살얼음〉은 매진에 매진을 거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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