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살리려면 당장 행동하라
  • 박성준 기자 (snypesisapress.com.kr)
  • 승인 2002.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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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한 발전’ 모색하는 요하네스버그 회의 개막
지구촌 시민이 지구는 하나뿐이며 인류의 성장에도 한계가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분명하게 깨달은 것은 1972년 로마클럽이 제출한 〈성장의 한계〉라는 보고서를 통해서였다. 국제 사회가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 지구적 차원의 해법을 마련한 것은 그로부터 20년이 더 흘러서였다.




이른바 ‘의제 21’이라고 이름 붙은 이 역사적인 행동 계획은 1992년 6월 초 브라질에서 열린 초대형 환경정상회의, 이른바 ‘리우 회의’에서 채택되었다. 전문(前文)과 본문을 합쳐 수백 쪽짜리 문서 형태로 작성된 ‘의제 21’의 핵심 정신은 한마디로 ‘지속 가능한 발전’과 이를 위한 ‘국제 협력’이다. 이 낱말은 지난 10년간 적어도 겉으로는 평화·인권 등과 함께, 국력의 크기나 이념의 차이를 떠나 지구촌 구성원 전체의 의식과 행동을 지배한 강령이기도 했다.


로마에서 경종이 울린 지 30년, 그리고 리우에서 약속이 이루어진 지 10년. ‘지속 가능한 발전’ 과제와 이에 따른 행동 계획이 이번에는 다시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로 무대를 옮겨 검증을 받는다. ‘의제 21’ 목록과 시간표에 따른 각종 실행 성과를 점검하고 새로운 과제와 계획을 이끌어내기 위한 대규모 국제 회의가 열리는 것이다.


8월26일부터 9월4일까지 열리는 이 회의에 붙은 공식 명칭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세계정상회의’(줄여서 ‘요하네스버그 회의’ 또는 ‘지구 회의’라고 부름)이다. 이 회의는 또한 리우 회의의 연장이라는 뜻에서 알기 쉽게 ‘리우+10’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회의에 쏠리는 관심은 회의 참가 규모만 살펴보아도 금세 가늠할 수 있다. 회의 개막 사흘 전인 8월23일 조직위원회가 밝힌 바에 따르면, 이 회의에 공식 등록된 참가자는 각국 정부 대표 5천명(국가 원수급 100명 포함), 비정부기구(NGO) 대표 1만5천명, 보도진 2천명, 다국적기업의 최고경영자·변호사 들을 포함해 줄잡아 2만명에 이른다. 게다가 조직위원회에 등록하지 않은 일반 참가자까지 합치면 참가 인원이 6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회의 개최국인 남아공 정부는 내다보았다.




니틴 데사이 요하네스버그 회의 사무총장은 이같은 사실을 발표하며, 수용 규모보다 많은 인원이 참가해 일부 참가자들의 행사장 출입을 제한해야 할 판이라고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그는 덧붙여 “바로 이같은 관심이야말로 이번 회의가 세계의 가장 내밀한 문제인 빈곤과 환경 위기를 해결할 절호의 기회임을 증명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요하네스버그 회의는 이처럼 유례 없는 관심과 기대 속에서 열리지만 회의 결과가 인류 역사에 ‘또 하나의 거대한 진보’로 기록될지는 의문이다. 리우 회의 이후 지난 10년간 추진된 작업의 결과는 들인 공에 비해 성과가 미미했다. 또 10년 세월이 지나면서 새로운 과제가 출현했다. 밀린 숙제도 미처 끝내지 못한 판에 또 다른 숙제까지 쌓인 것이다.


10년 전 리우 회의에서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행동 원칙으로 ‘국제 협력(global partnership)’을 강조했다. 의제 21은 전문에서 ‘지구상의 어느 나라도 이같은 일을 혼자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다. 그러나 모두가 함께 하면, 즉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국제 협력을 하면 우리는 해낼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요하네스버그 회의를 ‘지속 가능한 발전’을 확실하게 뿌리 내리게 하기 위한 마지막 기회로 보는 것은 환경 단체들뿐만 아니다. 지난해 말 발표된 〈지구 환경 보고서〉(월드워치연구소)에서부터 지난 8월21일 제출된 〈세계 개발 보고서〉(세계은행)에 이르기까지 전세계 민간 연구소와 국제 기구는 회의를 위한 자료로 수많은 보고서를 쏟아냈다.




미국 비협조 등으로 구체적 행동 뒷받침 안돼


이들 보고서의 공통점은 ‘이제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으므로 지금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발전은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다. 기관의 성격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지난 10년간 이룩한 분야별 성과에 대해 대체로 인색한 평가를 내놓은 것도 특징이다.


리우 회의 이래 미해결 과제로 첫손가락에 꼽히는 것은 기후 변화에 대한 대처이다. 이 분야는 10년 전 리우 회의 직후에는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둔 것이 사실이다. 1992년, 대기중 온실 가스를 일정 수준으로 안정시키는 것을 골자로 한 ‘기후 변화 기본 조약’이 체결되었으며, 1997년에는 국가 별로 온실 가스 배출량을 제한하기로 규정한 교토 의정서가 맺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의정서는 미국 등 몇몇 나라의 반대에 부딪혀 아직도 발효되지 못하고 있다. 온난화의 핵심 물질인 탄소 배출량은 지난 10년 동안 오히려 세계 평균 9%가 늘었다. 특히 미국에서 증가세가 세계 평균의 2배에 이를 정도로 두드러졌다.


문제는 이처럼 구체적 행동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사이 상황이 지속적으로 나빠져 왔다는 것이다. 유엔 경제사회분과가 요하네스버그 회의에 때맞추어 펴낸 보고서 〈세계적 과제, 세계적 기회〉에 따르면, 지구 온난화의 핵심 지표가 되는 해수면은 10년마다 1cm씩 상승해 지난 100년간 10cm 이상 높아졌다. 북극해의 빙산 두께는 지난 40년간 40%가 감소했으며, 호수나 강물의 해빙 시기도 점점 앞당겨지고 있다.


기후 변화와 관련해 더욱 큰 문제는 지구 온실 효과와 깊은 상관 관계가 있음이 확실해진 기상 이변과 해수면 불안이 대규모 홍수와 가뭄을 번갈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하네스버그 회의에 때맞추어 대규모 홍수가 한국 남부·중국 중남부·유럽 중부를 휩쓸었다. 특히 최근 10일 이상 계속된 폭우로 둥팅후가 범람할 위기를 맞으면서 천만명 이상이 홍수 위협에 직면한 중국의 경우는 심각하다. 중국은 물과의 싸움에 국가 동원령까지 내린 상황이다.


해묵은, 그러나 지구촌 시민의 생존과 지속 가능한 발전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숙제의 목록은 이것말고도 많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의 보고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산림 지역은 세계에서 2.2%가 줄었다. 의제 21에서는 산림 남벌·산악 개발·사막화 등의 원인과 함께 생물종 다양성 유지를 위한 각종 행동 계획이 입안되었지만 결과는 환경단체를 실망시켰을 뿐이다.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에 따르면, 주로 개발에 따른 서식지 파괴로 멸종 위기에 몰린 생물종 이름이 꾸준히 목록에 추가되었다. 특히 포유류와 조류의 피해가 두드러져 1만1천 종 가운데 18%가 가장 심각한 생존 위협 단계인 ‘멸종 위기’에 내몰렸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벌어진 일은, 앞으로 벌어질 재난에 비하면 시작에 불과하다. 유엔은 코피 아난 사무총장의 지시로 요하네스버그 회의에 올릴 ‘5대 핵심 의제’를 선정하고 따로 ‘작업반’을 꾸려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마련했다. 유엔이 정한 5대 핵심 의제로 꼽힌 분야는 에너지·농업·물과 위생·생물종 다양성 및 생태계 관리·보건과 환경이다. 이 가운데 앞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협할 복병으로 새롭게 부각된 분야는 단연 물 부족과 보건의 질 악화 문제로 압축된다.


물 부족 문제는 이미 국가간 분쟁의 대상이 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을 맞고있다. 지구촌의 물 사용량은 인구 증가와 개발에 따라 지난 100년간 6배가 증가했다.특히 중동 지역이 심각하다. 지난해 이라크와 터키가 유프라테스·티그리스 강에 댐을 건설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한 예가 대표적이다. 비슷한 시기 이스라엘과 레바논도 갈릴리 호수 사용권을 두고 한 차례 무력 충돌 직전까지 가는 공방을 벌였다.


유엔과 민간 기관은, 앞으로 물 부족 사태가 더 심각해져 2025년에는 전세계 인구의 절반이, 그리고 2050년께는 전세계 인구의 3분의 2가 물 부족 사태를 겪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유엔이 △지표수와 지하수 보존 노력 강화 △개발도상국의 제도적·기술적 능력 향상 등 모두 아홉 항목에 걸쳐 구체적인 사례를 예시해 가며 ‘적절한 응전’을 촉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에이즈 확산과 말라리아 창궐 등 보건 문제도 물 부족 문제 못지 않게 지구촌 시민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해치는 악으로 재확인되었다. 특히 1990년대 들어서서 무서운 기세로 확산되며 아프리카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든 에이즈는 재론할 나위가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인류가 도전해야 할 분야이다.




말보다 실천, 기대보다 걱정


유엔이 마련한 ‘5대 핵심 의제’의 행동 계획이 다행히 요하네스버그 회의를 통과해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겨진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이번 회의에는 국제적인 환경운동 단체들이 공식 안건으로 채택하자고 요구했던 상당수 안건이 사전에 거부되었으며, 심지어는 유엔과 협조하는 다른 국제 기구의 공식 안건도 일부 누락될 조짐이 있기 때문이다.


밀려난 안건 가운데에는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인류 공동의 과제를 도외시하고 오로지 사업 전망과 이윤만을 기준으로 활동하는 기업에 재갈을 물리기 위한 행동 계획도 포함되어 있다. 국제적으로 손꼽히는 환경단체인 ‘지구의 친구들’은 지난 몇 달 동안 다국적기업의 생산 활동을 규제하는 강제력 있는 국제 조약을 채택하자는 운동을 벌여왔지만, 이들의 제안은 주최측에 의해 거부되었다. 이 문제는 특히 드높아진 반세계화 시위와 맞물려 요하네스버그 회의를 파탄으로 몰고갈 수도 있다.


리우 회의 이후 10년간, 지구촌 시민은 오존층 파괴 주범인 CFC 배출을 완전히 금지하고, 풍력 등 대체 에너지 개발에도 힘을 쏟았다. 또 지구촌 시민은 물 부족 문제나 홍수를 조절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댐 건설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지구촌 시민에게 지난 10년은 말보다 실천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절감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바로 이 때문에 요하네스버그 회의에 쏠리는 지구촌 시민의 표정에는 기대보다 걱정이 짙게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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