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는 히틀러 같은 사람”
  • 프랑크푸르트·허 광 편집위원 (rena@sisapress.com)
  • 승인 2002.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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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법무장관 비공식 발언 기사화돼 소동…설전 이어지며 독·미 관계 틀어져
지난 8월 초, 슈뢰더 독일 총리가 부시 정부의 이라크 전쟁 구상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부터 험악해지던 독·미 관계가 빙하기로 들어서고 있는 듯하다. 부시 정부는 9월22일에 치러진 독일 총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한 슈뢰더 정부에 의례적인 축전도 보내지 않았고 ‘독·미 관계가 독극물에 중독되었다’는 섬뜩한 논평을 냈다. 선거전 내내 슈뢰더 정부에서 흘러나온 반미 발언이 독·미 관계를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넣었다는 항변이다.




그 중 첫째 사례는, 9월 초 사민당 원내총무가 한 발언이다. 그는 베를린 주재 미국대사가 로마 총독처럼 행세하고 있으며, 마치 동독에서 힘깨나 쓰던 소련대사를 다시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대사는 외교관이 주재국 정부를 비난해서는 안된다는 금기를 거침없이 깨고 “슈뢰더 정부가 유럽에서도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라는 따위의 발언을 선거를 앞둔 미묘한 시기에 독일 언론에 흘렸다. 사민당이 그를 로마 총독에 빗댄 것은 바로 이런 행태를 비꼰 것이다.


부시 정부의 심기를 결정적으로 긁어 놓은 것은 법무장관 도이블러 그멜린의 발언이다, 그멜린은 지역구 노조원들 앞에서 연설하면서 “부시는 미국 경제 위기 때문에 인기가 폭락하니까 선거를 앞두고 국민 관심을 돌려보려고 전쟁을 원하는데 이런 수법은 히틀러도 이미 써먹었다. 부시는 1980년대에 석유 기업 매니저였는데 요즘 같은 내부거래규제법이 있었다면 지금쯤 감옥에 앉아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을 노조원들 속에 앉아 있던 기자가 곧바로 기사화했고 이틀 만에 미국에 알려져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슈뢰더 “친구 사이에 생각 다른 것도 우정”


미국 언론은 ‘감옥’ 부분은 잘라내고 독일 장관이 부시를 히틀러에 비교했다고 법석을 떨었다. 법무장관은 이런 발언으로 물의가 일자 자진 사임한다고 발표했고 슈뢰더 총리가 해명 편지를 부시 정부에 보냈다. “독일을 히틀러 독재에서 구해준 게 미국인데 미국 대통령을 히틀러와 비교할 수 있는가. 슈뢰더 편지는 사과하는 편지가 아니다. 독·미 관계가 어떻게 될지 두고 보자.” 백악관에서 흘러 나온 반응은 이랬다.


독일 총선에 이어 열린 나토 국방장관 회의에서는 미국의 심기가 노골적으로 드러나 화제가 되었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신임 독일 국방장관이 연설하는 순간에 회의장을 떴으며 그와 만나기도 거부했다. 독일 국방장관은, 이라크가 알카에다를 지원하는 증거를 공개한다는 럼스펠드의 브리핑에 처음부터 참석하기를 거부했다. 파월 국무장관은 “독일 정부가 선거에서 이겼으니 이제 (이라크 문제에 대해서) 태도를 바꾸게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는데 슈뢰더는 “친구 사이에 생각이 다른 것도 우정의 일부분이다. 지금까지 말한 데서 변할 것은 없다”라고 응수했다.




슈뢰더는 8월 초부터 유엔이 이라크 공격을 승인해도 독일은 참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했는데 선거가 끝났다고 다른 생각을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부시 정부가 ‘미국에 위협을 준다고 의심이 가는 나라에는 선제 공격을 한다’는 새로운 안보 전략을 꺼냈기 때문이다, 이것은 미국이, 위협을 받고 있다는 어떤 증거도 필요 없이 자기네가 원하면 언제 어디서나 전쟁을 벌이겠다는 선언이다. 따지고 보면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린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바로 선제 예방 공격에 해당한다.


지난 9월15일 <선데이 헤럴드>는 부시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이라크 공격과 후세인 정권 교체 계획을 세웠다는 것을 입증하는 비밀 전략 문서를 공개했다. 부시 정부의 강경파와 보수정책연구소(PNAC)가 2000년 9월 작성한 이 문서에는 북한·리비아·시리아·이란의 위험한 정권 때문에 미군이 세계 지휘 통제 시스템을 유지해야 하며, 유럽이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동시다발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전략도 담겨 있다. 그렇다면 최근에 공개한 선제공격론도 이미 준비되어 있던 카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슈뢰더는 미국의 모험에는 동참할 수 없다고 말하고 이라크 전쟁 반대 노선으로 돌아섰다. 독일이 미국의 카드를 일찌감치 간파하고 부시 정부의 세계 전략에 ‘명령 불복종’을 선택한 것이라면 독·미 간의 불화는 슈뢰더가 말한 대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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