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동 구상’ 날개 다나
  • 프랑크푸르트·허 광 편집위원 ()
  • 승인 2002.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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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이라크 전쟁 앞두고 군부 등 개편…‘반아랍’ 강경파 전면 등장



미국의 중동 구상에서 성패를 가름하는 나라는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홀로 남은 동맹이면서도, 이라크 전쟁에 섣불리 끌어들일 수 없으니 사전 조율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스라엘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부시 정부는 이라크 침공 이틀 전에 이를 통고하기로 샤론 총리에게 약속했다. 이스라엘은 이라크가 생물 화학 무기를 쓰지 않는 한 보복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스라엘에서도 부시 정부의 강경파 못지 않은 강경파가 최근 전면에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부시 정부의 강경파와 오래 전에 손잡고 ‘중동 신질서’ 구상에 참여해 왔다.


먼저 이스라엘 강경파의 면면을 보면 지난 9월 초 대외 비밀정보부인 모사드 국장에 발탁된 메이르 다간, 그에 앞서 참모총장에 임명된 모세 얄론이 있다. 다간 정보부장은 1970년대 샤론의 경호원 출신으로, 정보부의 위탁을 받아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을 암살하는 특수 부대에서 활약했다. 1980년대에는 레바논 내전에서 이스라엘이 꼭두각시로 이용한 기독교 극우 민병대를 양성했다. 1991년 페르시아 만 전쟁 때는 이라크에 침투하는 특수 작전을 벌였는데, 이때 그의 직속 상관이 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 얄론이다.


“미국 강경파와 친밀한 인물들”


얄론은 참모총장으로 승진한 후 <하레츠>와 가진 인터뷰에서 “팔레스타인은 수술로 제거해야 하는 암적 존재이며, 이슬람 국가들과는 수십 년이 지나야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해 강경파의 면모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다간은 그의 경력으로 보아 얄론을 보충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군사 평론가 오렌은 다간이 정보부장이 된 것은 이스라엘 군부가 이라크를 비롯해 주변 아랍국에 전쟁을 도발할 특수 작전을 꾸미고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샤론 총리는 지난 9월 초순, 레바논과 시리아에 전쟁을 경고하는 발언을 했다. 샤론은 남부 레바논이 과거 이스라엘이 점령했던 지역의 수자원을 이용하는 계획을 세워 이스라엘을 위협한다고 말했다. 분석가들은 샤론의 이같은 경고가 팔레스타인 주민을 레바논으로 추방하기 위한 구실을 찾는 것이라고 본다.


전임 모사드 국장 할레비는 이슬라엘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최고 정책 결정 기구인 국가안보위원회 의장으로 자리를 바꾸었다. 그의 전임자 다얀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면 이스라엘은 민주 국가가 될 수 없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최근 인사 개편 결과는 샤론에게 저항하는 마지막 인물이 제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로 리쿠드 당 출신으로 구성된 이스라엘 강경파의 구상을 알려면 그들이 1995년 11월, 라빈 당시 이스라엘 총리가 암살된 이후에 정치 무대에 등장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공존’을 약속한 오슬로 조약을 거부한 그들은 이 조약을 맺은 라빈 총리와 아라파트가 정치 무대 전면에서 활약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훗날 이스라엘 총리가 된 네타냐후는 라빈 총리와 겨룬 선거전에서 ‘라빈을 죽이라’는 구호까지 허용했다.


이들이 오슬로 조약을 파기하는 데 호재로 작용했던 것이 바로 하마스·지하드 따위의 아랍 테러단이었다. 이들이 벌인 테러는 아라파트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스라엘 내부에서 ‘팔레스타인과는 공존할 수 없다’는 여론을 불러일으켜 라빈의 정치 노선을 흔들었다.


라빈 암살 이후에 강경파의 네트워크가 본격적으로 가동했는데, 바로 그 증거가 현재 펜타곤 자문 기구인 국방정책연구소의 소장 리처드 펄이 1996년 네타냐후에게 넘겨준 외교 정책 문서이다. ‘확실한 단절(Clean Break)’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문서의 핵심 골자는 이스라엘측에 오슬로 조약을 거부하라고 권고한 것이다. 네타냐후가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구체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실무팀도 만들었다. 당시 군 정보부장이었던 얄론이 팀장을 맡아 ‘가시밭길’이라고 이름을 붙인 정책 보고서를 만들었는데, 이 문서의 핵심은 팔레스타인 주민의 저항을 꺾고 요르단 서안을 재점령한다는 것이다. 아라파트 자치 정부를 파괴하고 팔레스타인 주민을 추방한다는 두 가지 전술이 바로 이때부터 등장했다.


바로 이같은 구상이 1996년부터 미국 강경파와 밀접한 조율을 통해서 만들어졌고 새로운 중동 전쟁 구상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은 지난해 12월, 워싱턴 전략 및 국제연구소 (CSIS)의 중동 전문가 앤서니 코즈만이 펴낸 연구 보고서에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미국의 중동 구상을 제대로 알려면 샤론과 다간·얄론으로 구성된 이스라엘 강경파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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