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와 장쩌민 배짱이 척척 맞네
  • 워싱턴·변창섭 편집위원 (cspyon@sisapress.com)
  • 승인 2002.11.0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한 핵 평화적 해결·건설적 동반자 관계 구축 합의



지난해 11월 자신의 텍사스 크로포드 별장에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돈독한 우의를 다졌던 부시 미국 대통령이 똑같은 장소에서 이번에는 중국의 장쩌민 주석(76)과 손을 잡았다. 부시가 굳이 백악관이 아닌 자신의 개인 별장으로 장주석을 ‘모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현재 미국이 직면한 최대 현안인 이라크 사태와 북한 핵 문제를 원활히 풀려면 중국 최고 지도자의 도움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시가 중국 최고 지도자로는 1979년 덩샤오핑에 이어 두 번째로 미국을 방문하는 장 주석을 자기 별장으로 초청한 데는 이런 ‘깊은 뜻’이 담겨 있었던 셈이다.


그런 점에서 10월25일 열린 ‘크로포드 정상회담’은 일단 성공한 것 같다. 부시 대통령은 무엇보다 당장 미국의 골칫거리로 떠오른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한반도 비핵화와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계속 노력한다’는 명시적 선언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장 주석도 중국이 지금까지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해 왔다는 점을 거듭 확인했다. 조지워싱턴 대학 중국 전문가인 데이비드 샘보 교수는 “미국과 중국은 적어도 북한 핵 개발 계획의 위험성에 대해 똑같은 주파수 대에 있음을 보여줬다”라고 지적했다.


타이완·중국 인권 문제에는 이견


북한 핵 문제만큼이나 초미의 관심사인 이라크 공격 계획과 관련해 양국 정상은 100% 의견 일치를 보지는 못했다. 부시는 현재 유엔에서 논의 중인 이라크 사찰 결의안과 관련해 무력 사용도 불사한다는 미국측 입장에 중국이 동조해 주기를 바랐지만, 장 주석은 확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미국은 이번 회담을 계기로 앞으로 미국측 의중이 담긴 대 이라크 결의안이 유엔 안보리 표결에 부쳐질 때, 중국이 최소한 거부권을 행사하지는 않으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양국 정상은 이밖에도 중국의 인권 및 종교 자유 문제, 타이완 문제 등 전통적인 현안도 논의했지만 서로 각자의 입장을 경청하는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보면 이번 크로포드 정상회담의 가장 큰 수확이라면 아무래도 북한 핵 해법에 대한 양국 정상의 인식 일치를 꼽아야 할 듯싶다.


11월이면 후계자에게 대권을 물려주고 일단 뒤로 물러나는 장주석에게 이번 미국 방문은 다분히 상징적 의미가 컸다. 하지만 실질적인 성과도 거두었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장 주석의 방미가 한때 소원했던 양국 관계가 급속히 회복해오던 차에 이루어졌다는 점이 주목된다. 3년 전 클린턴 행정부 때 유고 내전 당시 미국 공군의 베오그라드 중국대사관 오폭 사건이 터진 뒤 삐걱거리던 양국 관계는 부시 행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4월에는 중국 영공 내에서 미국 정찰기 충돌 사건까지 발생해 크게 벌어졌다.


특히 부시 대통령은 취임 후 ‘무슨 수단을 강구하더라도 타이완은 지키겠다’고 발언하며 타이완에 대한 막대한 규모의 무기 판매를 승인해 양국 관계가 파국을 맞는 듯했다. 이처럼 험악하던 양국 관계는 9·11 테러 사태를 계기로 봉합되기 시작했다. 중국이 미국의 반테러 전선에 가담하자 미국도 이에 화답해 지난 8월 중국 신장성 내의 반체제 회교운동단체를 ‘테러 조직’으로 지목했다. 이같은 조처는 중국이 미국의 요구에 부응해 대외 미사일 수출금지 품목 명단을 발표한 지 이틀 만에 나왔다.


올해로 재임 13년째인 장 주석은 이번 정상 회담에서 두 가지 성과를 거두기를 바랐다는 후문이다. 하나는 중국 최대 현안인 타이완 문제다. 그는 이번에 유사시 타이완에 대한 ‘절대 수호’ 결의를 표명한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적어도 타이완의 독립에 반대한다는 명시적인 답변을 얻어내고자 했다. 그는 또 내친 김에 타이완에 대한 미국의 무기 판매 문제에 대해서도 확고한 다짐을 받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는 부시로부터 시원스런 답변을 얻는 데 실패했다. 회담에 배석한 미국 행정부 고위 관리에 따르면, 부시는 타이완을 겨냥한 중국의 미사일 증강에 우려를 표시했고, 장 주석은 타이완에 대한 미국의 무기 판매 증가에 불만을 표출했다.


다음으로는 미국과의 ‘건설적 동반자’ 관계를 확고히 구축하는 일인데, 장 주석은 이 분야에서는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다는 지적이다. 범세계적 반테러 전선이나 북한 핵문제 등과 관련해 장 주석은 이번에 부시 대통령과 공감대를 확인했다. 최근 테러 문제 협의차 존 애시크로프트 미국 법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한 것이나 북한이 핵 개발 계획을 시인한 직후 미국 국무부 고위 관리 2명이 중국에 급파된 것도, 양국 관계가 새로운 협력 관계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볼 수 있다.


한편 장 주석의 방미 성과와 관련해, 미국내 보수적 정책 집단인 헤리티지 재단의 중국 전문가 헬리 데일은 “국제 사회에 영원한 친구도 동맹도 없다”라고 지적한 19세기 영국 재상 파머스톤 경의 말을 인용하며, 이번 크로포드 정상회담도 순전히 미국과 중국의 국익이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평가해 관심을 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