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이 무너지는 완리창청
  • 베이징·이강재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2.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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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천7백km 성벽 중 3분의 2가 훼손…중국 정부, 뒤늦게 보수 나서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이며, 중국이 자랑하는 세계적 문화 유산인 완리창청(萬里長城)의 보존 여부가 중국 대륙에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완리창청은 현재까지 전체 6천7백여㎞ 중 약 3분의 2가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다. 1949년 중국 공산화 이후 개혁·개방 시기까지는 정부의 무관심이, 그 후부터 최근까지는 경제 개발 논리가 훼손의 주범이었다.


완리창청은 동쪽 허베이(河北) 성의 산하이관(山海關)에서부터 서쪽 간수(甘肅) 성의 자위관(嘉山谷關)에 이르기까지 전체 길이 6천7백여㎞에 달하는 거대한 길이의 성벽을 가리킨다. 완리창청이라는 이름은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후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벽을 쌓을 때 붙인 것이다. 완리창청은 한 번에 축성된 것이 아니다. 기원 전 7세기 전국 시대 초나라에서 ‘팡청(方城)’을 쌓은 이후 명나라 때까지 20여 나라와 왕조가 대를 이어가며 성벽을 축조했다. 명나라 때에 들어서는 다시 전면적인 개축 작업을 벌였다. 따라서 현재 의 완리창청은 명나라 때 최종 완성된 것이다.


2천여 년의 역사를 가진 완리창청이 심하게 훼손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그 중에는 자연 풍화와 사막화 진행 등 자연적이거나 환경적인 것도 있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인위적인 훼손 행위이다. 중국 창청학회 회원 둥야오화이(董耀懷) 씨는 “신중국(중국 공산화) 성립 이후 1978년까지 중국에서 역사 문물 보존을 주장하면 구시대적인 봉건주의자로 몰렸다”라고 그 배경을 설명한다. 문화대혁명 등 여러 차례 정치적 소용돌이를 겪으면서 역사 문물들이 무수하게 훼손되었고, 완리창청 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정부 무관심·마구잡이 개발이 훼손 주범


개혁·개방 직후에는 한동안 달라지는 듯했다. 최고 실권자 덩샤오핑(鄧小平)의 지시로 완리창청을 재축조하는 운동이 벌어졌던 것이다. 완리창청은 1987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예전의 모습을 완전히 되찾는 듯했다. 그러나 경제 개발 논리를 앞세운 지방 정부들이 성벽을 마구 허물고, 그 자리에 각종 시설물을 건설하도록 방치하는 등 경제 개발 논리에 의해 다시 한번 완리창청은 수난을 당하고 있다.


최근 일고 있는 완리창청 보호 논쟁은 현재 중국의 고민을 그대로 보여준다. 논쟁의 발단은 지난해 초 한 야채 공급 회사가 창고를 확장하면서 완리창청 성벽 2백여m를 훼손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이었다. 당시 완리창청 보호론자들은 지방 정부들이 세수와 주민 편의에만 눈이 멀어 문물 훼손에 앞장서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정작 해당 지역 주민들은 지역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일이라며, 이미 허물어져 가는 성벽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론을 펴기도 했다.


다행히 중앙 정부가 보호론자들의 손을 들어주어 해당 지방 정부 관리를 해고하고, 복구 명령을 내렸다. 이에 힘입은 창청학회가 “지금도 중앙 정부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훼손 행위가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좀더 강력한 조처가 필요하다”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완리창청 문제가 현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올림픽 성공 개최와 국제적 이미지 제고를 위해 최근 중국 정부도, 앞으로 5년간 완리창청을 매년 1천m씩 보수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런 조처들이 완리창청 성벽을 뚫고 들어오는 개발 지상주의를 막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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