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도 인정한 ‘선진 생산력’
  • 베이징·이강재(자유기고가) ()
  • 승인 2002.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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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산층, 변화 이끄는 ‘새 계급’으로 떠올라…소비 혁명 전위 구실도
중국에 새로운 ‘완리창청(萬里長城)’이 들어서고 있다. 거대한 중산층 띠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중산층이 등장함으로써 소비 성향·여가 활동 등 중국인의 삶도 몰라보게 바뀌어 가고 있다.




공산화 이후 중국에는 수십 년간 ‘2계급(노동자·농민) 1계층(지식인)’밖에 없었다. 전통적인 사회주의 사회의 분류법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올해 국무원 산하 중국사회과학원은 중국 사회에 ‘10대 계층이 존재한다’고 발표했다. 이들 가운데 경영 관리 계층·민간 기업가·전문 인력·개인 사업가는 다른 나라에서는 흔히 중산층으로 분류되는 그룹이다. 이들의 존재를 중국 정부가 공식 인정한 것은, 이미 이들의 힘이 급속도로 커졌음을 반영한다.


중국의 중산층, 그들은 다른 말로 바꾸어 표현하면 ‘중국의 선진 생산력’이기도 하다. 지난 11월에 열린 16기 1차 중앙위원회에서 공산당은 당 헌장에 장쩌민이 주창한 ‘3개 대표 중요 사상’을 삽입하며, ‘당은 사회의 선진 생산력을 대표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바로 이 선진 생산력을 가진 이들이 중산층이다. 이들은 현재 중국 공산당이 당 헌장을 바꾸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중국 사회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의 선진 생산력인 그들의 실체는 무엇인가.
올해 35세인 가오징민(高敬民)씨는 중국의 유명 여행사에 근무한다. 그의 아내는 외국계 기업에 다니고 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여섯 살 난 아들이 있다.


이들은 최근 시가 7천만 위안(약 1억원) 되는 33평 규모 아파트로 이사했다. 이전까지 가오 씨네 세 식구는 회사가 제공한 두 칸 짜리 13평 아파트에서 살았다. 가오 씨는 “직장 생활 7년 만에 내 집을 마련했다. 이전 집이 회사와 가까워서 좋았지만, 시설이 너무 낡아서 아내와 아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라며 새집을 마련한 소감을 털어놓았다.


가오 씨는 물론 앞으로 10년간, 집을 사기 위해 빌린 은행 빚을 갚아가야 한다. 완전히 자본주의식 삶이다. 가오 씨의 아내 모샤오린(幕小琳·32) 씨는 “사원 주택에 살 때에는 이웃이 모두 남편 직장 사람들이여서, 이것저것 신경 쓰이는 것이 많았다. 이제야 우리 가족만의 보금자리를 찾은 것 같다”라고 기뻐했다. 집단보다는 개인을, 일터보다는 가정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가오 씨 가족은 이번에 주택을 구입하면서, 차도 12월에 출시되는 현대 쏘나타로 바꾸기로 했다. 차값은 시가 20만 위안(약 3천6백만원)이다. 베이징(北京)은 10년 이상 진행된 개발 열기 때문에 부동산 값이 오를 대로 올라 보통 사람들은 집을 마련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대신 차를 먼저 구입한다.


가오 씨도 3년 전에는 소형 중고차를 구입했다. 3년을 타다 보니 질리기도 하고 그동안 수입도 올라 차를 바꾸기로 결심한 것이다. 가오 씨는 특히 쏘나타가 내부 공간이 넓고, 직접 타 보니 승차감도 좋아 선택했다고 말했다.




사회주의 복지 혜택 남아 있어 실질 소득 상당


자유 기고가 장린(張林·29) 씨와 출판사에 다니는 바이춘란(白春蘭·27) 씨 부부 역시 사회의 선진 생산력을 대표한다. 두 사람은 중국 최고의 명문 베이징 대학에 다니다 만나, 연애 끝에 재작년에 결혼했다.


이들은 현재 중국의 젊은 부부 사이에 선풍적으로 유행하는 방식으로 내 집 마련에 성공했다. 즉 부부 중 한 사람은 국유 기업이나 국가 기관 등 월급은 적으나 복지 혜택이 많은 직장에 취직해 대출을 받고, 다른 한 사람은 복지 혜택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수입이 월등히 좋은 외국계 기업이나 자유업 계통 직장을 잡아 빌린 돈을 갚아 가는 것이다.


이 부부는 바이 씨가 다니는 출판사가 국가기관이기 때문에 대출 받기가 쉬웠다. 물론 장씨는 매달 5천 위안(약 80만원)씩 되는 은행 이자와 원금을 갚는 데 문제가 없을 정도로 ‘잘 나가는’ 자유 기고가이다. 바이 씨는 최근 임신을 했다. 이들은 요즘 틈만 나면 베이징 시내 백화점들을 순례한다. 새로 태어날 아기 용품을 사기 위해서다. 바이 씨는 틈틈이 출산 이후 아기를 돌봐줄 ‘보모’를 면접하기도 한다.
앞서 말한 가오 씨네와 장 씨네 두 부부는 모두 베이징에서 부자로 꼽히지는 않는다. 똑 떨어지는 기준은 없지만 넓게 중산층으로 분류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중국의 중산층 소득 수준에 대해서는 공식으로 발표된 정의와 통계가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중국 중산층은 주택과 승용차를 소유하고, 동시에 여행 등 여가 활동과 자녀 교육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생활 수준을 누리는 이들을 지칭한다. 또 대략 월 5천 위안에서 1만 위안 정도 소득을 올리는 부류가 중산층으로 분류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이들의 ‘명목 소득’은 이 정도이지만, 실질 소득이나 구매력은 명목 소득을 3∼5배 정도 웃돈다는 것이다. 이는 돈으로 직접 환산되지 않지만 무시할 수 없는 유형·무형의 복지 혜택이 아직도 사회주의 속에 제도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중국 중산층 규모를 전체 인구의 10∼20%로 추정한다. 기준에 따라 다르지만, 적게는 1억2천만명에서 많게는 미국 전체의 인구와 맞먹는 2억5천만명 정도가 중산층이라는 것이다. 중국 사회과학원의 한 연구원은 “중국 중산층이 미국 인구와 맞먹는다는 말은 과장이다. 하지만 현재 전체 노동 인구의 15%, 도시 취업 인구의 절반 정도인 1억2천만명 정도는 중산층으로 봐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중산층은 중국인 전체의 소비 유형마저 바꾸어 놓았다. 대부분이 맞벌이 부부이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중국 중산층은 매우 신중하지만 ‘과감한’ 소비 행위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산층 이상 고객이 많이 찾는 베이징의 유명 백화점 옌사(燕沙)의 남성 및 여성 의류 담당 매니저 셰안민(謝安) 씨는 “고객들이 최근 들어 매우 풍부한 상품 정보를 바탕으로 높은 수준의 품질을 요구하고 있다. 일부 고객은 해외 여행이나 잡지에서 본 특정 브랜드의 특정 제품을 요구하기도 한다”라고 전했다.




현재 추세라면 10년 후 중산층 5억 헤아릴 듯
중국에서 중산층이 세력화하면서 재미를 보고 있는 곳은 헬스클럽 등 건강 관련 산업이다. 경제력이 담보되는 중산층에게 건강은 최고의 관심사이다. 월 회비가 8백 위안(약 12만원) 정도인 최고급 시설을 갖춘 헬스클럽만 베이징에 20여 군데 성업 중이다. 베이징 중관춘(中關村)에 있는 한 헬스클럽에서 운동중하던 IT 관련 벤처 기업 직원 리징(李晶·29·여) 씨는 “거의 매일 남편과 퇴근 후 헬스클럽에서 만나 같이 운동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직장 동료 대부분이 어떤 방식으로든지 자신의 건강을 증진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헬스클럽의 ‘지도 강사’한용밍(韓勇明) 씨는 “고객 대부분이 퇴근 후 저녁 시간에 찾아온다. 저녁 7시부터 9시까지가 사람이 가장 많다”라고 설명했다.


베이징·상하이(上海)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중산층은 급속도로 확대되어가고 있다. 또 현재 추세대로라면 앞으로 10년후 중국의 중산층 인구는 5억을 헤아릴 것으로 예상된다. 폭발적으로 증가할 중국 중산층이 갖는 엄청난 구매력과 이로 인한 소비 혁명은 벌써부터 세계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중산층 급성장이 항상 좋은 결과만 예고하는 것은 아니다. 중산층 확대와 함께 더불어 늘어나는 빈부 격차와 도·농 격차 등을 해소하지 못하면, 중국은 지구촌 전체에 하나의 거대한 골칫거리로 전락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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