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유권자가 본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
  • 뉴욕·김동석 (한인 유권자 운동가) ()
  • 승인 2004.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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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 뉴욕 맨해튼 전당대회 참관기
부시 미국 대통령의 전략가 칼 로브는 ‘테러’가 대선 정국을 주도할 가장 확실한 카드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공화당은 일찌감치 9·11 테러의 상처가 깊이 남아 있는 뉴욕 맨해튼에서 전당대회를 치르기로 결정했고, 행사마저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듯 연출했다.

필자가 출입증을 갖고 각종 검열과 검색을 통과하는 데만 꼭 1시간 24분이 걸렸다. 이 때문에 매일 저녁 본 대회는 객석 절반이 비어 있는 상태에서 시작하곤 했다. 전당 대회는 대회 도중 테러 희생자를 위한 묵념을 유도하고, 테러 희생자 가족을 찬조 연사로 등장시켰으며, 이슬람 단체의 여성 대표로 하여금 ‘전쟁 덕분에 이라크가 자유를 누리게 됐다’고 증언케 했다.

하지만 공화당 전당대회를 기화로 뉴욕은 분열했다. 손님이 절반으로 줄어든 소상인들은 울상이 되었고, 전세계에서 몰려든 반 부시 세력은 과격한 시위를 벌였으며, 공화당 지지자들은 연일 결속을 다지며 돈잔치를 벌였다.

8월25일 대회장을 최종 점검한 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이 전당대회 참가자들의 주머니에서 2억5천만 달러가 쏟아져 나올 것이라고 했지만, 이를 그대로 믿었던 사람은 없었다. 뉴요커들은 테러 위협과 통행 불편을 이유로 절반 이상이 휴가를 떠나버렸고, 브로드웨이 극장가도 아예 셔터를 내렸다.

시위 군중 몰려 뉴욕 경찰 골머리

대신 이번 전당대회는 기성 권위에 대한 저항의 물결이 미국을 휩쓸었던 1968년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 가장 많은 시위 군중이 몰렸다. 체포된 시위자 수가 예상보다 많아 경찰은 이들을 수용할 시설을 찾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회장 동북 지역의 경비 책임을 맡았던 진 마틴 브레실러 미드웨스트 경찰서장은 “경찰 생활 32년 동안 시위를 많이 겪었지만 이번처럼 과격한 적은 없었다”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회장 밖에서만 시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당대회 첫날(8월30일) 대회장 입구 검색대에서 경찰과 검색요원, 그리고 일단의 민간인이 몸싸움을 벌이는 광경이 목격되었다. <화씨 9·11>의 마이클 무어 감독이 ‘보도용 신분증’으로 출입증을 발부받아 대회장에 입장하려다가 공화당원과 실랑이를 벌인 것이다. 공화당에 반대하는 것이 출입 금지 사유가 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는 곧 입장할 수 있었다.

공화당 전당대회에는 보통 네 그룹이 초청 대상이다. 대의원과 예비 대의원(공화당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대의원을 1.5배로 뽑아 놓는다), 거액 기부자(Big donor), 후원기업 대표, 공화당 정치인이 그들이다. 학자나 유권자단체 대표, 시민운동가들이 참관을 원할 경우에는 일단 참가신청서를 받아 주최측이 심사 한 후에 초청 여부를 결정한다. 필자는 뉴욕 한인 활동가의 한 사람으로 참가신청서를 냈는데, 4년 전에는 등록된 한인 유권자가 5천명이 안 되어 거절당했으나, 이번에는 두 배 이상 는 것이 주효해 초청장을 받았다.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대접받으려면 ‘돈’ 아니면 ‘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이번에 필자가 받은 출입증 등급에서도 나타난다. 전당대회 출입증은 여러 등급으로 나뉘는데, 필자가 받은 것은 25만 달러 이상 기부한 후원자에게 발급하는 것과 같은 수준이었다. 이 출입증이면 전당대회 첫날 공화당에서 가장 귀족적인 그룹인 상원위원회가 허드슨 강에 떠 있는 군함에서 개최한 개회 기념 연회에도 참석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상징하는 군함 갑판에는 붉은색 카펫을 깔아놓고, 미스 아메리카를 동원해 춤과 노래로 흥을 돋우었다. 불꽃놀이까지 겸한 최고급 연회였다. 상원위원회 의장인 버지니아 주 조지 앨런 의원과 국방위원장인 존 워너 의원이 초청인이었다. 필자가 상원위원회 사무총장에게 ‘정치 행사치고는 너무 화려한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기부자를 잘 대접해 돈을 더 많이 모으고, 돈으로 표를 사서 집권하는 자본의 논리를 너무 어렵게 생각 말라’는 충고가 돌아왔다. 센트럴파크에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최고급 호텔에서 연일 최고의 파티가 열렸다.

전당대회장은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하지만, 일단 입장이 허가되면 VIP와 일반 참가자의 구분이 없었다. 전당대회 마지막 날, 아버지 부시와 그의 부인 바버라 여사는 필자보다 서너 줄 앞에 앉아 있었고, 주위를 둘러보면 현직 각료들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찬조 연사인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을 비롯해 체니 부통령 부부, 각주 상·하원 의원들 역시 일반 참가자들과 함께 앉아 ‘4년 더(4 years more)’를 외쳤다(이 대목은 민주당 전당대회와 상반된다. 보스턴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는 입장하기까지는 딱 한 번의 검색 절차만 거쳤지만, 들어가서는 VIP 구역과 일반 초청인의 구역이 나뉘었다).
부시는 후보 수락 연설에서 더욱 더 안전하고 희망적인 미국을 위해 4년을 더 일할 것이며, 어떤 이슈도 미국의 안보를 우선할 수 없다고 기염을 토했다. 그는 또 미국을 위협하는 적들을 미국 영토 밖에서 섬멸해 국가 안보를 튼튼히 함으로써 경제 발전을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미국의 지도력은 확고하고 일관성이 있어야 하며 신념에 차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경쟁 상대인 케리 후보를 간접으로 깎아내리기도 했다.

이 날 부시는 이라크 전쟁을 함께한 동맹국으로 영국·일본·덴마크·오스트레일리아 등을 일일이 호명했지만, 이라크에 세 번째로 군대를 많이 보낸 한국은 언급하지 않았다. 부시를 반대하는 시위대 몇 명이 연설 도중 구호를 외치다가 행사장 곳곳에 배치되었던 보안요원들에게 끌려 나가는 장면이 있었지만 부시는 눈치 채지 못한 듯했다.

전당대회가 열린 나흘 동안 맨해튼 곳곳에서는 이슈 별로 전문가와 정치인이 모여 세미나와 포럼이 열렸다. 월도프호텔에서 열린 ‘여성 포럼’에는 영부인 로라 여사가 쌍둥이 딸들과 함께 참석했다.

뉴욕 대학과 와그너스쿨에서는 부시 정부의 정책 산실이었으며 네오콘의 거점인 미국기업연구소와 민주당쪽 두뇌집단 노릇을 해온 브루킹스 연구소가 공동으로 주관한 ‘부시 2기 국정 운영 전망’이라는 세미나가 열렸다.

이번 뉴욕의 공화당 전당대회는 강력하고 단호한 부시의 리더십을 강조해 민심을 돌리는 데 얼마간 성공을 거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남은 2개월 동안 변수는 많다. 반 부시 여론이 전세계에 확산되어 있으며, 곧 이루어질 후보 토론회에서 신중함의 대명사인 민주당 케리 후보가 ‘마초맨’의 전형인 부시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서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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