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크 대통령 앞길 막는 ‘꼬마 니콜라’
  • 스트라스부르·류재화 통신원 ()
  • 승인 2004.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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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코지 장관, 대중 인기 업고 거침없는 대권 행보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에게 니콜라 사코지 경제장관은 ‘계륵’과 같은 존재였다. 버리자니 아깝고, 옆에 두자니 거슬렸다. 그런 ‘꼬마 니콜라’(사코지의 별명)가 최근 부쩍 커버려 시라크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었다.

올해 49세인 사코지 장관은 2007년 엘리제 궁 입성을 위해 오래 전부터 칼날을 갈아왔다. 그는 어떤 정치인도 감히 하지 못했던 대담한 발언을 일삼으며 차기 대권 야망을 노골적으로 밝혀왔다. 그는 몇년 전 프랑스 국영 텔레비전 방송인 F2의 한 유명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자리에서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얼마나 자주 하는가’라는 진행자의 질문을 받고,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면도할 때마다’라고 대답한 바 있다.

병적 허기증에 가까운 그의 권력욕에 적지 않은 프랑스인들이 눈살을 찌푸린다. 좌파 성향의 매체들은 사코지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극우주의자로 유명한 장 마리 르펜이 프랑스 대통령이 되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다고 본다.

그런데도 사코지 장관의 대중적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몇년 전만 해도 프랑스 정계와 여론은 그의 엘리제궁 입성 가능성에 대해 ‘설마’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지금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로 여기고 있다. 정력 넘치는 활약상, 영리하고 재빠른 언론 플레이, 다소 경거망동하기는 하지만 기성 정치인보다는 덜 위선적으로 보이는 코믹한 발언 등이 사코지 장관을 연예인 뺨치는 정치 스타로 만들어 놓았다. 사코지 장관은 오만불손한 성향 탓에 같은 우파 안에서도 정적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기죽지 않는다. 의원들과 만나는 대신, 그는 기자와 기업인·종교 단체 대표들을 찾아다니며 내실을 쌓고 있다. 최근 영화 홍보차 파리를 찾았던 톰 크루즈는 사코지의 ‘친구’가 되었다. 한 매체 비평 프로그램의 조사에 따르면, 그가 내무장관이던 시절 뉴스의 주요 소재는 사회 및 사건 뉴스로 가득 찼다. 그러나 그가 경제장관이 되자 경제 기사가 부쩍 늘었다. 한마디로 ‘뉴스’를 몰고 다니는 것이다.

현재 상황은 여러 면에서 그에게 유리하다. 중도 우파 안에서도 르펜을 비롯한 극우파를 고사시켜 버리고, 리오넬 조스팽의 퇴진 이후 리더십 부재에 시달리는 좌파 사회당을 중화하며, 최근 실시된 각종 의회 선거에서 연이어 고배를 마신 UMP(우파 제1 여당)를 소생시킬 유일한 대안은 꼬마 니콜라라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프랑스인의 50%가 차기 우파 대선 후보로 사코지를 꼽았다. 반면 프랑스인의 63%는 시라크 대통령이 3선 고지에 ‘제발 도전하지 말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시라크 대통령 처지에서는 재선으로 확보한 5년 임기의 절반이 겨우 지난 시점에서 자신을 밀어내려는 이 괘씸한 젊은 부하를 가만 놓아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라크는 전통적인 맞수 사회당 후보를 제쳐놓은 채 자신을 몰아내려는 이 ‘작은 사탄’의 기를 먼저 꺾어 놓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고 있다. UMP가 지역 의회 선거에서 참패한 이후 비등하는 당내 여론에도 불구하고 현 라파랭 총리를 경질하지 않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당시 내무장관이었던 사코지는 응당 자신이 새 총리로 지명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모든 여론조사에서도 그가 가장 유력한 총리 후보로 거론되었다. 그러나 이 말썽꾸러기를 총리에 앉히는 것은 시라크로서는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언론이 대놓고 ‘꽁’(머저리)이라고 비꼬는, 둔하고 무능력하나 고분고분 말은 잘 듣는 라파랭 총리를 옆에 두는 것이 대통령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프랑스 언론들은 시라크와 사코지를 ‘전갈과 개구리’의 난감한 공생 관계로 묘사한다. 전갈이 발톱으로 찌르지만 않으면 강을 건너게 해주겠다고 약속한 후 개구리는 전갈을 등에 업고 강을 건넌다. 그런데 강 중간쯤 가서 전갈이 개구리 등을 찌른다. ‘왜 찔러?’ ‘내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것을 어떻게 하겠어?’

지난 7월에는 둘 사이의 얽히고 설킨 갈등 관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7월14일, 즉 프랑스 혁명 기념일에 시라크 대통령은 주요 언론사와 가진 공식 인터뷰에서 그동안 자신의 등을 찔러온 사코지에 대한 반감을 감추지 않았다. “보스는 나다. 내가 결정하고, 그는 (내 명령을) 수행할 뿐이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사연인즉슨, 7월5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사코지 장관이 국방 예산을 감축해야 한다며 대통령의 자존심을 긁어놓은 것이다. 사코지 장관은 평소 외교 문제에 치중하는 대통령의 성향을 못마땅하게 여겨왔다. 대통령도 이에 질세라 ‘프랑스가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지지해 함께 출정했더라면 국방비가 훨씬 더 들었을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사코지의 친미 성향을 은연중에 겨냥한 뼈있는 발언이었다. 이 설전 이후 사코지 장관은 라파랭 총리가 주재하는 간담회에도 참석하지 않았고 주요 장관들과의 조찬 회의에도 빠졌다. 단단히 화풀이를 한 셈이다.

사코지 장관은 당내 자파 세력을 불리기 위해 일찍부터 시라크 대통령의 충복인 알랭 쥐페가 현재 맡고 있는 UMP 총재 자리를 노려왔다. 정해진 법은 없지만, 프랑스는 이른바 제5공화국 관례상 장관 직과 한 정당의 당수 직을 겸직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시라크 대통령은 사코지 장관에게 ‘둘 중 하나만 선택하되, 되도록이면 UMP 총재 경선에 출마하지 말 것’을 은근히 종용했다. 총재직 선출은 오는 11월 말 있을 예정이지만, 사코지 장관은 최근 UMP 총재 자리에 도전하겠다고 발표했다. 언론은 이미 사코지 장관을 ‘미래의 총재’라고 부르고 있다.

우파 내에는 현재 평화와 단결의 분위기가 역력하다. 사코지 장관도 권력욕에만 눈 먼 ‘미친 사냥개’라는 이미지를 바꾸고 싶어한다. 표면적으로는 서로를 겨누던 칼을 내려놓았지만, 위장술과 심리술의 대결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2005년 유럽의회 헌법 국민투표안을 비롯해 2007년 대선까지 프랑스 정치판의 거두들이 일합을 겨루어야 할 사안은 산적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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