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지역 대표’ 자격 있나
  • 요시다 야스히코 (오사카 대학 경제법학과 교수·전 ()
  • 승인 2004.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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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임이사국 진출에 ‘올인’…잘못된 역사의식부터 바로잡아야
유엔은 내년에 창설 60돌을 맞는다. 사람으로 말하자면 환갑이며, 개발도상국 나라의 평균 수명과도 필적한다. 그동안 국제 관계는 크게 변하였으며, 유엔 가맹국도 발족할 때 51 개국이었던 것이 1백91개국으로 4배 가까이 늘었다. 그 대다수가 아시아·아프리카의 신흥 독립국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다루는 문제도 복잡·다기해졌다.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전쟁만이 아니다. 빈부 차 확대, 차별·불평등과 같은 인권 침해, 인간면역바이러스(HIV) 만연, 환경 파괴 등. 노르웨이 평화학자 요한 갈퉁이 ‘구조적 폭력’이라고 부르는 잠재적 위협이 심각해져 유엔에서도 새로운 과제로 제기되어 왔다.

이렇게 볼 때 유엔 시스템 전반의 개혁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유엔은 창설 이후 새로운 문제가 닥칠 때마다 새 기구를 만들어 그때 그때를 넘기는 식으로 대응해 왔다. 그러므로 기본적인 구조와 의사 결정 시스템은 그대로 남아 있어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유엔에서 가장 중요한 조직은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이다. 안보리는 유엔 헌장에서 ‘국제 평화와 안전 유지에 중요한 책임을 맡는’ 가장 중요한 기관으로 정해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장 고정화되고 시대 흐름을 타지 못한 조직이다. 안보리는 상임이사국 5개국과 비상임이사국 10개국 등 모두 15개국으로 구성되어 있다. 과거 60년 동안 2년에 한번씩 선출되어온 비상임이사국이 6개국에서 10개국으로 확대되었을 뿐,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특히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다섯 나라는 상임이사국으로서 유엔 발족 이래 부동의 지위에 있다. 이 나라들은 어느 한 나라가 반대 의견을 내면 결의안을 무효로 할 수 있는 ‘거부권’이라는 특권을 갖고 있다. 유엔 개혁에 관해서는 우선 안보리 개혁을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이 냉전 종결 이후의 국제 여론이다. 1994년 총회에서 안보리 개혁을 위한 실무 그룹이 설치되어 10년 넘도록 토의를 계속해왔다. 한국은 비상임이사국을 늘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일본은 1956년 유엔에 가입한 이후 일관해서 상임이사국 진출을 목표로 삼아 왔다. 이유는 단순하다. 대국 의식이다. 제1차 세계대전 결과 발족한 국제연맹에서 일본은 영국과 함께 상임이사국이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국이 되어 유엔 헌장의 ‘적국 조항’ 대상이 되었다. 이후 놀라운 경제 발전을 이룩해 1968년 서독을 앞질러 미국 다음가는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

일본이 상임이사국 진출 희망을 갖고 있다는 것은 1969년 유엔 총회에서 아이치 하쓰이치 당시 외상이 연설에서 상임이사국에 들어갈 것을 의식한 발언을 하면서 알려졌다. 아이치 외상은 ‘일본은 안보리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국제 평화와 안전 유지에 가장 효과적으로 공헌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 각 지역을 진심으로 대표하는 나라를 결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발언해, 간접으로 ‘지역 대표’를 자처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각국의 관심은 적었다.
그 뒤 일본은 유엔 분담금 비율에서도 미국에 이어 제2위가 되었다. 현재 일본의 분담 비율은 전체의 19.5%이며, 이는 미국을 제외한 다른 상임이사국 4개국의 분담금을 합친 것보다 많다. 그런 이유에서 상임이사국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이 일본 외무성의 주장이지만, 일본 정부는 공식으로는 이를 강조하기를 삼가고 있다.

안보리 개혁 논의가 활발해진 것은 냉전 종결 후 1990년대다. 유엔 창설 50주년을 맞았던 1995년 세계거버넌스위원회가 포괄적인 유엔개혁안을 제창한 것이 시작이다. 안보리에 대해서는 △상임이사국을 10개국으로 늘리고, 비상임이사국도 14개국으로 해 도합 24개국으로 구성한다 △새로운 상임이사국으로 선진국에서 2개국, 개발도상국 가운데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에서 각 1개국을 총회에서 선출한다 △ 거부권을 없애며, 기존 이사국의 거부권 행사도 제한한다는 제안을 했다.

이와 더불어 1997년 총회 의장안(라자리 안)이 제출되었다. 당시 라자리 의장은 선진국에서 2개국은 일본과 독일, 개발도상국에서는 인도와 브라질, 그리고 아프리카 1개국은 지역 내 나라들에 의논을 맡기는 것으로 합의해 총회 결의안으로 표결 직전까지 갔다. 이 때 ‘라지리 안’을 무효로 만들기 위해 분투한 쪽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라이벌 국가들이며, 파키스탄·멕시코·아르헨티나와 함께 한국도 포함되어 있었다. 라자리 안은 총회에서 3분의 2 찬성을 얻을 수 있는 전망이 없어 표결에 부치지도 못했다. 이 때부터 7년이 지났지만 이 구조는 기본적으로 변화가 없다. 올해 총회에서 일본은 독일·인도·브라질과 함께 공동 전선을 구축해 찬성표를 얻는 공작에 필사적이다.

독일·인도·브라질과 손잡고 ‘합동 작전’

일본이 상임이사국으로 들어가는 문제에 대해 동아시아의 반응은, 아세안(ASEAN) 10국은 찬성, 북한은 절대 반대, 한국은 소극적 반대이지만 문제는 중국이다. 고이즈미 총리가 총회에서 입후보 표명을 한 뒤, 중국의 궁취안 외교부 보도국장은 “상임이사국 자격은 분담금 지출액 규모에 달린 게 아니다. 역사 인식의 유무로 판단되어야 한다”라고 발언했다. 또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계속하는 한,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계속 반대하겠다고 경고했다.

일본 내에서도 상임이사국 진출에 소극적인 의견도 있다. 고이즈미 총리도 최근까지 소극론자였다. 일본 헌법 제9조는 무력 행사를 목적으로 한 자위대 해외 파견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고이즈미 총리는 현행 일본 헌법 그대로 입후보 표명을 했으므로 상임이사국이 되면 안보리 결의에 따라 무력 행사를 해야 하는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 또 그것을 구실로 헌법 개정을 더 강하게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일본은 상임이사국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중국·인도와 함께 아시아의 대표로서, 특히 동북아 지역 대표로서 한반도의 이익도 대표해야 한다. 그러자면 한국·북한과도 역사 의식을 공유해야 한다. 적어도 고이즈미 총리는 한반도와 중국 정부·국민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말아야 하며, 대국적인 견지에서 북·일 국교 정상화를 하루빨리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안보리는 국제 평화와 안전 유지에 주된 책임을 지는 기구인데, 스스로가 자리 잡은 지역에서 마찰이나 분쟁이 있다면 상임이사국 자격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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