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국 눈에 비친 부끄러운 자화상
  • 뉴욕·최수진 통신원 ()
  • 승인 2004.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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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사진작가 6인, 해외 주둔 미군기지 사진전 뉴욕서 개최
동맹국에 자국 군대를 보낸 미국인들은 동맹국 사진작가들의 시선으로 찍은 자국군의 모습을 어떻게 바라볼까. 미국 뉴욕에 있는 현대예술박물관(MOMA)에서 지난 10월17일부터 열리고 있는 <한국과 오키나와 주둔 미군 사진>전에 가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이 사진전은 이라크발로 미군 희생자 소식을 수시로 접하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해외 주둔 미군이 왜 필요한가에 대해 성찰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한국과 오키나와 주둔 미군과 관련된 각종 사건·사고 들은 이라크 전쟁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한국과 오키나와 민간인들에게 다각적인 피해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일본인 큐레이터 가즈마 고즈에 씨가 기획하고, 한국과 오키나와 출신 사진작가 6명이 공동 참여한 이번 미군 기지 사진전은 제목에서부터 기존 전쟁 사진 또는 저널리즘 사진과는 분명하게 구분된다. ‘영속하는 순간들-한국과 오키나와, 그 내부에서의 시선들’이 말해주듯이, 이 작품들에는 다른 나라에서 파견된 사진작가나 저널리스트의 눈이 아닌, 현지에 몸을 담고 살고 있는 현지 작가들의 시각이 그대로 녹아 있다.

큐레이터 가즈마 씨는 이번 사진전이 당사자들의 눈으로 찍은, 피사체 내부로부터의 사진이라는 점에 큰 특징이 있다고 설명한다. 국제적인 통신사에서 파견된 전문적인 사진가들의 사진과는 다른, ‘깊고 중층적인 역사의 울림이 그 속에 있으며, 당사자의 목소리가 있다’는 것이다.

현지 작가들의 시선 그대로 드러나

이번 전시회에는 한국에서 노순택·안해룡·이용남·이재갑 씨가, 일본에서는 오키나와 출신인 이시카와 마오와·히가 도요미쓰 씨가 참여했다. 이들 6명의 사진작가가 선보인 작품들은 전장이나 전투가 아닌 일상의 모습을 담고 있다.

전시장에 들어가 가장 먼저 마주치는 사진은 미국인과 닮은, 그러나 엄연히 대한민국 주민등록증을 가진 혼혈 한국인의 증명 사진이다. 10년 넘게 한국의 제1 세대 혼혈인과 만나며 그들의 삶을 기록해온 사진작가 이재갑씨는 순수 혈통주의와 단일 민족성을 강조하는 한국 사회에서 외모와 피부색의 차이뿐 아니라 출생 과정에 개입된 윤리 문제로 인해 소외당하는 미국계 혼혈인의 아픔을 사진에 담아냈다.
혼혈인들의 사진을 지나면, 주한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미선·효순’의 처참한 모습이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을 한동안 충격에 빠지게 한다. 자신을 화가라고 소개한 뉴요커 켄 미도르 씨는 ‘미선·효순 사건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처럼 처참한 사진은 처음’이라며, 미군 주둔에 따른 현지인들의 피해와 반미 감정에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개인적으로 해외 주둔 미군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미국 코네티컷 주에서 딸과 함께 뉴욕을 찾은 리처드 햄버거 씨도 한국에서 벌어지는 반미 시위 사진을 가리키며 ‘환영받지 못하는 나라에 미국이 군대를 파견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곧이어 반미 시위 사진과 함께 나란히 걸린 ‘친미 시위’ 사진을 보고는, 한국 국민의 대미 감정이 양분되어 있다는 사실에 더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미군 주둔을 둘러싸고 상반된 시위를 벌이는 한국인의 갈라진 모습 역시 미군 주둔에 따른 피해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미국 위스컨신 주 리펀 대학에서 예술사를 가르치는 에벌린 케인 교수는 ‘전쟁은 단지 전투만 뜻하지 않는다’며 한국과 오키나와 미군 기지 주변에서 벌어진 현실이 전쟁의 폐해와 다를 바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또 이번 전시회에 대해 ‘모든 문제를 지극히 단순하게 접근하는 미국인들에게 해외 주둔 미군 문제가 단순하지 않다는 중대한 사실을 일깨우고 있다’고 평했다. 케인 교수는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다’라며 이번에 전시된 사진 한 장 한 장이 저널리즘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가치가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주류 언론이 외면한 진실 밝혀

미국인 대부분은 주한미군 주둔의 정당성을 북한의 존재에서 찾고 있다. 이번 전시회 기간,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는 사진전과 관련된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도 미국인들이 던진 질문은 ‘미군이 철수한 뒤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것이었다. 최근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팀 아메리카>에서처럼 할리우드에서는, 첩보 영화에 반드시 필요한 악역으로 사담 후세인이 아닌 북한의 김정일이 떠오르고 있다. 미국인 일반의 인식이 이미 ‘김정일은 사악한 인물’이라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번 전시회는 이같은 미국 사회의 변화를 배경으로 할 때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번 전시회는 미국의 주류 언론이 놓치거나 외면하는 해외 주둔 미군의 이면을 보여주고 있다. 악의 축 북한의 위협에 대한 대응이라는 식으로 주한미군 문제를 간단히 정리하기에는 너무도 복잡한 일들이 현지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과 도쿄를 거쳐 뉴욕에 도착한 ‘미군 기지 사진전’은 이례적으로, 순수 현대 예술만을 고집해온 뉴욕 현대예술박물관 별관에서 열렸다. 전시회는 12월13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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