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한 대타협 시대 열린다”
  •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4.11.3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 라이스 주도로 정책 변화 조짐…“국교 수립 포함한 큰 거래 구상”
미국과 북한의 관계를 긴 안목에서 보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1990년대 이후 미국의 북한 정책은 공화당에서 민주당, 그리고 다시 공화당으로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극적으로 바뀌어왔다. 심지어 한 정권 내에서도 1기와 2기의 정책 흐름이 판이해지곤 했다.

‘봉쇄(containment)’와 ‘개입(engage ment)’은 미국의 북한 정책이 지닌 두 얼굴이다. 압박과 차단, 위협, 일방주의로 상징되는 ‘봉쇄’로 가다가 벽에 부딪히면 타협과 포용을 키워드로 하는 ‘개입’으로, 그러다가 정권이 바뀌면 다시 봉쇄로…. 이분법에 익숙한 국가답게 극에서 극으로 전변을 거듭해온 것이 바로 미국 북한 정책의 특징이다.

최초의 변화는 레이건 정권 말기에 일어났다. 기존 봉쇄 정책을 바꾸어 베이징 참사급 접촉으로 숨통을 트기 시작한 것이다. 아버지 부시 정권 시절인 1992년 1월 북·미 고위급 회담으로까지 발전해, 그 해 부시가 재선되었다면 수교가 가능했을 것이라고까지 하다가 클린턴 정권이 들어서면서 또다시 봉쇄로 변했다. 1994년 6월의 전쟁 위기를 계기로 다시 바뀌어 제네바 합의에 도달한 후 클린턴 정부 말기 포용 정책이 만개해 또다시 수교의 문턱에까지 도달했다. 그러다 아들 부시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후, 전 정권의 정책을 부정해온 관례에 따라 ‘abc 원칙(anything but Clinton, 클린턴의 정책만 빼고)’을 채택해, 봉쇄 정책으로 방향이 틀어져 4년을 보냈다.

그동안 국내외 전문가들은 부시 2기 정권에서는 여태까지와 같은 극적인 방향 전환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해왔다. 9·11 이후의 대테러 전쟁과 대량살상무기 확산 저지 전략(PSI)이 이미 미국의 대외 정책에서 부동의 축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에 북한 정책의 변화 역시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장담이 무색하게, 부시 2기에서 또다시 ‘전변’의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북한 정책 및 대외 정책의 사령탑이 바뀌었다는 것이 우선 가장 큰 변화다. 부시 1기에서, 파월 국무장관은 명목상의 사령탑에 불과했고, 실제로는 체니 부통령이 대외 정책과 북한 정책을 총괄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따라서 실세 라이스 국무장관이 등장하자 권력 이동이 시작된 것이다. 라이스의 등장으로 이미 체니와 럼스펠드를 축으로 한 네오콘의 위상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 워싱턴 정가의 관측이다.

따라서 문제의 초점은 새로운 사령탑으로 떠오른 라이스 국무장관의 정책 방향이다. 최근에 나타나는 징후에 비추어 그것은 1기 정권과의 연속성이 아닌, 극적인 단절을 특징으로 하는 듯하다. 부시 1기 정권이 일방주의와 ‘레짐 체인지’(정권 교체) CVID(안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로 특징지어지는 봉쇄 정책(containment policy)의 시대였다면, 부시 2기 정권은 ‘대담한 접근(bold approach)’ ‘대타협(grand bargain)’ 등을 키워드로 하는 개입 정책(engagement policy)의 시대로 변화할 것이라는 예고탄이 계속 발사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 핵 포기 후 대대적 마셜 플랜 계획”

11월16일 일본 니혼 게이자이 신분 보도는 주목할 만했다. 이 신문은 느닷없이 라이스가 지난 7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의 얘기를 끄집어냈다. 북한 핵 문제가 해결된 이후 6자 회담을 ‘동북아 안보협력체’로 격상해 재래식 전력 문제나 미사일 문제, 그리고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등 한반도 냉전 구조를 해체하는 문제를 논의하자고, 그가 중국 수뇌부에 제안했다는 것이다.

11월24일 제임스 포터 국무부 한국과장은 워싱턴 주재 한국 특파원들을 불러놓고, 익명을 전제로 브리핑을 하면서 니혼 게이자이 신분 보도 내용을 ‘현재형’으로 바꾸어 되풀이했다. 포스터 과장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6자 회담 틀 안에서’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앞으로 북·미간 양자 대화도 가능하다고 함으로써 그동안의 금기를 깬 것이다.

실제로 최근 워싱턴을 방문한 한 재일교포 북한 전문가는 “미국 정부와 관계된 복수 소식통으로부터 미국이 앞으로 북한과 직접 대화를 시작할 것이라는 매우 강한 메시지를 받았다”라고 말했다. 그동안의 과정이 기껏해야 뉴욕 채널을 통한 실무 수준 접촉에 불과했다면 앞으로는 다양한 채널이 동원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미국이 북한에 역사적 제안을 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다’고 한다.

11월26일 일본 아사히 신분은 바로 이 ‘역사적 제안’이 어떤 내용이 될지를 미리 암시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 날 보도는 그동안 미국 국무부가 한국과 일본 양국 언론을 통해 행해온 익명 브리핑 시리즈의 완결판으로서, 2002년 제임스 켈리 특사의 방북 때 제안을 환기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즉 켈리 특사의 방북 당시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재래식 전력 삭감, 미사일, 생물화학무기, 인권 문제에 대한 협의에 응해올 경우 미국은 대북 경제 제재 해제와 아시아개발은행(ADB) 가입 지원, 국교 수립 등을 통해, 국제 사회와 함께 북한의 재건과 국제 사회 복귀를 전면 지원하겠다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아사히 신분에 이 내용을 흘린 미국 정부 관계자는 ‘이 제안이 아직 유효하다’면서 앞으로 ‘이같은 대형 거래(그랜드 바겐)로 양국 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북한에 개혁과 개방을 촉구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신문은 또한 “라이스 국무장관이 바로 이같은 ‘대담한 접근(bold approach)’의 명명자이며 이 정책을 입안한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이를 ‘북한판 마셜 플랜’이라고 부르고 있다”라고 친절하게 덧붙이기도 했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미국 국무부 관계자들의 언론 플레이가 라이스 국무장관의 지침에 따른 것이라고 전했다. 즉 국무장관 지명 직후 라이스가 부시 대통령에게 북한 정책 및 대외 정책의 본질은 유지하되 일방주의 외교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건의했고, 이런 상층부의 방향 설정에 따라 일종의 ‘충격 완화용’ 언론 플레이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책이 급변할 때마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하는 수구 보수 세력이 받는 충격과 당혹감은 미국이라고 예외는 아닌 듯싶다. 1994년 10월 클린턴 정권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제네바 합의를 타결하자 당시 반북 여론을 주도하던 국내 보수 언론들이 공황 상태에 빠진 적이 있다. 이번에는 미국 네오콘들이 그 꼴이다. 네오콘 이론가 니컬러스 에버슈타트와 윌리엄 크리스톨이 갑자기 ‘북한 정권 교체’뿐 아니라 ‘미국 국무부의 정권 교체’까지 들고 나와 화제가 되고 있는데, 이는 갑자기 설 자리가 사라진 골수 강경파 ‘존 볼턴 일병 구하기’를 위한 ‘1인 피켓 시위’ 성격이 강하다는 지적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