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받아 분홍색 팬티 산다?
  • 부에노스아이레스·손정수 통신원 ()
  • 승인 2004.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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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에서 울려퍼지는 징글벨은 맨살을 훤히 드러내는 비키니 차림으로 듣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서양을 끼고 있는 브라질·아르헨티나·우루과이에서는 징글벨이 해변에서 울린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복잡한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영화 <그 날 이후>처럼 무인 도시로 변한다. 바캉스 시기에는 쿠데타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한국과는 정반대로 아르헨티나는 지금이 여름이다. 보통 30℃를 웃돈다. 그래서 남미의 나비다드(크리스마스) 축제는 바캉스의 예비 축제이다. 상가 대로에는 나비다드 장식이 등장하고, 무더운 날씨와는 상관없이 진열장의 크리스마스 트리는 으레 인조 눈으로 장식된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발길이 뜸했던 성당을 찾기도 하고, 연인이나 가족이 모여 회식한다.

선물은 주로 연인이나 가족을 위한 것이다. 이 날 친구는 제외가 된다. 친구 사이의 선물은 부담스럽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국립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에서 인류학을 전공하고 있는 로페스 훌리아는 “친구 사이에 선물 주고 받는 것이 금기 사항은 아니다. 하지만 니비다드는 가족 축제여서 친구끼리 선물을 교환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고 말한다.

날씨는 달라도 선물 품목이 주머니 사정에 의해 선택되는 것은 북반구와 똑같다. 10년 전에는 연인들 간에 이름을 새겨넣은 반지·귀걸이·팔찌·목걸이 따위가 유행했다. 그러나 요즘 최고 인기는 휴대전화이다. 특히 화상을 볼 수 있는 최첨단 신제품이 쏟아지면서, 자기 얼굴을 입력한 휴대전화를 선물하는 것이 유행이다. 주머니 사정이 신통치 않은 청소년들은 주로 신곡 CD를 선물한다.

부부 사이에는 분홍빛 팬티가 인기다. 40대 중반인 이네스 부인은, 핑크색 팬티가 원래 연말연시 부부가 교환하는 선물이었으나, 지금은 나비다드 선물로도 각광을 받는다고 말한다. 부부끼리 주고받는 선물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남편이 사 주기보다 아내가 스스로 사 입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런데 왜 하필 분홍빛 팬티일까. 그것은 남자의 ‘한눈 팔기’를 막기 위한 일종의 부적과 같기 때문이다. 꼭 자정에 갈아입어야 효험이 있다는 것이 속설이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지난해 ‘플랜 피에스타’(축제 플랜·연말 연시 축제를 위한 저리 1개월짜리 개인 대출 상품)을 내놓은 데 이어, 올해에는 ‘플랜 에스페시알’(특별 플랜·여름 휴가를 위한 저리 대출 상품)까지 내놓았다. 위축된 소비를 자극하려는 키츠네르 정부의 ‘국민 달래기’이다. 이에 힘입어 올해 세밑 분위기는 흥청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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