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2기 한반도 정책 “주도권을 찾아오라”
  • 남문희 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5.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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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카드 포기…일본 활용해 북한 끌어낼 가능성도
미국 정치사에서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은 이단아였다. ‘고립주의 외교’로 특징지어졌던 공화당의 역사를 보면 더욱 그렇다. 그는 전임자들이 반 세기에 걸쳐 인정했던 소련 체제와의 공존과 그것을 가능케 했던 전후의 ‘얄타 체제’를 극도로 혐오했다고 한다.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규정한 그의 발언은 곧바로 소련 체제에 대한 공격 명령이 되어, 심리전·경제전·군비 확대 경쟁·SDI(전략방위구상)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결국 무너뜨리고야 말았다.

그로부터 10여 년 후에 등장한 부시 정권이 레이건의 적자를 자처했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악의 제국과 어감이 비슷한 ‘악의 축’이라는 공격 목표를 세워 그 중 하나인 이라크를 본보기로 손본 것 역시 비슷하다.

그리고 이제 2기 부시 행정부 출정식이 지난 1월20일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전세계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확산’하겠다는 슬로건이 제시되었고, 그 이틀 전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라이스 국무장관이 거론한 ‘폭정의 전초기지들(outposts of tyranny)’이 새로운 공격 목표로 등장했다. 북한을 비롯해 이란 쿠바 미얀마 벨로루시 짐바브웨 등 6개국이 구체적으로 거명되었다.

그러나 워싱턴의 정치 평론가들은 과거에 비해 이번에는 공격성이 많이 떨어진다고 한결같이 지적한다. 1월20일 부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폭정’과 ‘자유’라는 말을 수십 차례씩 언급했고, 압제자에 대한 분노와 피압박민에 대한 동정을 표현했으나, 한편으로는 ‘우리의 정부 형태를 내켜 하지 않는 나라들에게 강요하지 않을 것’이라며 전에 없이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생각은 여전히 과격, 정책은 온건으로 선회

부시 대통령의 분신이라고 평가되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내정자 역시 비슷했다. 1월18일의 인준 청문회에서 그녀는 부시의 가정교사라는 평답게 부시 대통령 취임사에 담길 외교 정책의 기본 개념들을 비교적 상세히 설명했다. 그러나 그녀의 이 날 발언 중에도 놓쳐서는 안 될 대목들이 들어 있었다. 앞으로 미국의 대외 정책 방향에 대해 ‘이제는 외교를 해야 할 시점’이라면서 “우리와 세계 사이의 상호작용은 대화가 되어야 하며 독백이 되어서는 안된다”라고 밝힌 부분이다. 즉 현실 인식에서는 1기 때와 마찬가지로 과격하고 급진적이지만 정책에서는 외교와 대화를 강조하는 온건론으로 돌아서 있는 것이다.

그 이유를 짚어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파탄지경의 재정 적자, ‘악의 축의 복수’라는 신조어에서 알 수 있듯, 북한·이란·이라크의 끈질긴 저항 등 녹록치 않은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볼 필요가 있다. 왜 말과 행동 사이에 현격한 간극이 느껴지는 것일까.
최근 일본에서 발매된 월간 <포어사이트>에 아사히 신분 칼럼니스트인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가 쓴 글이 도움이 된다. 그는 ‘아메리카의 보수 위기와 외교 위기’라는 글에서 부시의 공화당 정권을 구성하는 리얼리스트(현실주의자) 그룹과 네오콘(신보수주의자) 그리고 기독교 우파 세력 간의 이합집산과 상호대립 과정을 파헤쳤다. 이 중에서도 특히 주목되는 것이 기독교 우파 세력이다.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 실패에도 불구하고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지원 덕분이었다. 이들은 지난 1기 정권 때 네오콘처럼 직접 대외 정책 수립 과정에 참여하기보다는 인권·민주주의·이스라엘·중동·테러·인구·유엔 등의 주제에서 발언권을 행사해왔다. 따라서 이들이 재선에 성공한 부시 대통령에게 더욱 강력한 반대 급부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와 인권·민주주의 등 자신들이 내건 핵심 가치에서 리버럴(자유주의자)과 어정쩡하게 손잡지 말라는 압력을 계속 행사해왔다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 이후 52%의 보수와 48%의 리버럴로 양분된 미국 사회에서 자칫 있을지도 모를 부시의 중도 회귀에 대해 쐐기를 박아온 것이다. 이라크 전쟁 실패로 대외정책에서 수세에 몰린 네오콘들은 최근 이들의 활동 영역으로 합류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해준 기독교 우파에게 당연히 보은해야 하고, 한편으로는 여전히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네오콘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자유와 민주주의 확대를 기치로 내걸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1기 때와 같은 강력한 실행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그것은 립 서비스 수준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의 ‘강요하지 않겠다’는 말이나 라이스의 ‘외교가 필요한 시점’ ‘독백이 아닌 대화’라는 발언은 1기의 대외 정책에 대한 명백한 선 긋기 성격이 강하다. 구체적으로는 대외 정책을 실행하는 영역에서는 네오콘의 일방주의와 거리를 두겠다는 뜻이 읽히는 것이다.

부시·라이스 체제라고 일컬어지는 2기의 대외 정책 라인과 네오콘 간의 균열은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도 매우 깊다는 것이 워싱턴 소식통들의 진단이다. 2기 정권의 외교 안보 사령탑 인선 과정에서 현실주의의 대표 주자인 라이스와 네오콘의 대부인 체니 부통령 사이에 치열한 권력 투쟁이 전개되었다. 마지막 쟁점은 바로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 후임을 인선하는 문제였다.

라이스와 체니는 부장관 인선을 둘러싸고 이미 서로에게 일격을 주고받았다. 체니와 네오콘이 필사적으로 후원하는 존 볼턴의 부장관 승진을 단호하게 거부한 것이 바로 라이스가 가한 일격이다. 그 다음은 체니 차례. 라이스는 내심 아버지 부시 정권 시절 베이커 국무장관 밑에서 차관을 지낸 아널드 캔터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널드 캔터보다도 그의 후견인 격인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체니의 격렬한 반대로 결국 뜻을 접어야 했다. 스코크로프트는 라이스의 정신적 스승이자 현실주의 세력의 대부 격인 인물이다. 양 진영의 대립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큰 틀에서 승리는 라이스를 중심으로 한 현실주의 세력에게 돌아간 것으로 관측된다. 체니는 1기 때와 달리 대외 정책에서는 손을 떼고 국내 정책에만 전념하기로 역할 분담이 되었다고 한다. 네오콘의 금전 거래 스캔들 터지나

부시와 라이스가 ‘네오콘류의 대외 정책’과 거리를 두어야 할 이유 중에는 말 못할 속사정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 1기 동안 네오콘들이 국제적인 금전 거래와 관련해 광범위한 스캔들에 연루되어, 부시 정부 초기의 엔론 사태처럼 터질 날만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네오콘의 금전 거래 스캔들은 유태자본 또는 이스라엘과의 유착뿐 아니라 타이완 천수이볜 정권이나 군수업체와의 관계 등 다양하고 뿌리가 깊다는 것이다.

이미 부시 대통령 스스로 지난 대선 기간에 의식적으로 몸조심하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했다. 대선 직후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대선 기간 부시 대통령은 유태 자금이나 군수업체, 이익 단체로부터 가급적 선거자금을 받지 않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1기 때와 달리 이들에게 신세졌다는 생각이 별로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시에 벌써 부시의 선거 캠프 내에서 네오콘의 금전 스캔들에 대한 경고등이 켜져 있었던 것이다.

라이스 국무장관 내정자의 움직임에서도 비슷한 기류가 포착된 적이 있다. 지난 연말 베이징 외교가에는 그녀가 ‘타이완 독립 문제가 미국에 최대의 지뢰’라고 했다고 해서 화제가 된 바 있다. 보기에 따라 중국을 고무하고 타이완을 낙담케 하는 그녀의 발언 배경 중에는 ‘네오콘과 타이완 당국 간의 금품 거래를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도 들어 있었던 것이다.

대외 정책, 그 중에서도 특히 북핵 문제와 한반도 정책에서 ‘탈 네오콘’이 의미하는 바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네오콘이 주도한 제1기의 대외 정책은 ‘유태쇼비니즘’이라는 그들의 태생적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모국인 이스라엘의 안위를 위한 중동 민주화가 거의 유일한 관심사이다 보니, 한반도와 동북아는 잠재적 적국인 중국에 위탁 관리하는 일종의 ‘아웃소싱 정책’을 추진했다. 중국을 끌어들여 북한을 붕괴시킨다는 그들의 6자 회담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그들 스스로 타이완과 금전적으로 결탁하다 보니, 타이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고, 결국 뒤통수를 맞기에 이르렀다. 미국의 이중적 태도에 실망한 후진타오 주석이 북한과 관계를 강화하는 길로 나섬으로써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 된 것이다.

라이스 사단으로 진용을 새롭게 갖춘 2기 부시의 대북 및 한반도 정책 구상은 중국에 빼앗긴 주도권을 되찾아 오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 사이에 라이스 팀의 정책을 읽을 수 있는 ‘풍향계’로 지목된 인물이 바로 잭 프리처드 전 국무부 한반도 특사와 북한 전문가 마크스 놀란드이다.눈길 끈 ‘중국의 북한 흡수 가능성’ 경고

잭 프리처드 대사는 지난 1월14일 열린우리당의 두뇌집단인 열린정책연구원이 주관한 국내 세미나에 참석해 ‘북한이 붕괴하면 중국에 흡수될 가능성이 높다’는 요지의 발언을 해 파문을 일으켰다. 온건파로 알려진 그가 서울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갑작스레 북한 붕괴와 중국의 흡수 가능성을 강조한 이유가 무엇일까.

거의 비슷한 시기 마크스 놀란드가 워싱턴의 한 세미나에서 했다는 발언 내용과 겹쳐 보면 그 진의가 분명해진다. 놀란드는 ‘북한을 중국 지배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북한과 일본의 수교가 필요하며, 이 경우 수교 자금 약 100억 달러가 북한에 들어갈 수 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발언은 중국이라는 고양이에게 북핵 문제라는 생선을 맡겨둔 부시 1기의 아웃소싱 정책이 초래한 참담한 현실(중국의 북한 흡수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그 처방(일본의 대북 수교)을 동시에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발언 배경에 대해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라이스 동북아팀의 문제 의식이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워싱턴의 한 한반도 전문가는 “중국은 미국의 주장과 달리 북한 체제가 쉽게 무너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의 공작에 의해 북한이 무너질 가능성에 대비해 그동안 입체적으로 대북 접근을 강화해 온 것으로 라이스 팀은 인식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북핵 문제와 한반도 정책의 이니셔티브를 다시 미국이 잡기 위한 대응 전략 마련이 라이스 팀이 당면한 과제라는 것이다.

지난해 11월13일 노무현 대통령의 로스앤젤레스 발언에서 시작된 ‘한국 이니셔티브’ 역시 부시 2기 팀의 탈중국 정책과 관련된 것으로, 그 핵심 역시 일본의 대북 수교를 활용함으로써 북한을 끌어내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100억 달러에 이르는 북·일 수교 자금이야말로 북한을 미국의 영향권 안으로 다시 끌어당길 가장 강력한 미끼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짜 유골 사건으로 대북 여론이 극도로 나빠진 일본의 국내 사정으로 인해 일본 카드를 작동하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경우 이들 동북아 팀의 면면으로 볼 때 북한에 대한 파상적 직접 교섭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국내의 한 정보 관계자는 “국제 금융기관이 북한을 향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기 시작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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