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아나키즘 ‘대안 사상’ 될까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3.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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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대 젊은층에 확산…유행으로 그칠 수도
한창 월드컵 열기가 무르익던 지난해 봄, 연세대 교정에서 ‘여고생 해방전선’이라는 엉뚱한 이름의 펑크 록 밴드가 공연을 가졌다. 평화인권 문화제 기간이었고 ‘양심적 병역 거부’가 이슈로 떠오르던 때였다. 하지만 기타리스트가 팬티 차림으로 무대에 등장하자 일순 분위기가 심각해졌다. 결국 ‘붕어’라는 이름의 보컬리스트가 엉덩이를 까는 순간, 관객들의 야유와 함께 주최측은 전원을 꺼 공연을 중단시켜 버렸다. 이 촌극은 국가기관에 의해 벌거벗겨지는 개인의 비극을 상징하면서 또 병역 거부를 꼭 양심적으로만 할 필요가 있느냐는 비아냥거림까지 담은 일종의 행위 예술로, 밴드 멤버들이 사전 기획한 것이었다. 그런데 밴드 멤버들과 관객·주최측은 같은 이슈를 외치면서도 서로 ‘코드’가 달랐던 것이다. 밴드 멤버들은 대부분 아나키스트였고, 이 날 사태는 이들이 ‘타의에 의해’ 커밍아웃한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이 날 이후 각종 시위 현장에서 검은색이나 히피풍 옷을 입고, 혹은 ‘써클 에이’(즴)가 그려진 깃발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이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최근 국내의 반전 평화 운동가들 사이에 ‘국적 포기’ 논란이 확산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아나키스트의 존재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물론 국적 포기 의사를 밝힌 반전 평화 시위대가 모두 아나키스트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국제 아나키스트들 사이에서 오래 전부터 거론된 이슈였다.

현재 국내에서 아나키즘 운동을 선도하는 가장 활발한 집단은 온라인 아나키스트 공동체 ‘아나클랜’(www.anar clan.net) 회원들이다. 앞서 소개한 밴드의 베이시스트 조약골(32)과 보컬 붕어도 이곳 회원이다. 이들은 모두 닉네임으로 활동하는데, “주어진 이름 대신 스스로 선택한 이름을 사용하기 위해서”라고 소식지 <아날레> 편집장을 맡고 있는 승희씨(23)는 주장했다.

이들은 그동안 티셔츠 만들어 입기, 물물 교환 장터 차리기, 자유학교 운동 등을 통해 아나키즘을 전파해 왔다. 최근에는 반전 평화 시위에 적극 참가하고 있다. 현재 회원 수를 정확하게 집계한 적은 없고, 오프라인 모임에는 15~20명 정도가 꾸준히 모인다. 주로 20~30대가 많고, 직업도 대학원생이나 학원 강사에서 고등학생까지 다양하다.

이들 중 주목되는 인물이 조약골이다. 그는 광복 이후 명맥이 끊긴 국내에 아나키즘을 다시 소개한 인물로 꼽힌다. 국내 유명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학과 언어학을 전공했는데, 운동권 출신은 아니다. 대학원 시절 신채호를 읽으며 아나키즘을 처음 접했고, 1990년대 말 미국 유학 중에 아나키스트가 되었다고 밝혔다. 현재 번역과 통역 일로 생계를 꾸리면서 전업적인 아나키즘 운동가의 삶을 살고 있다. 아나클랜 사이트도 그의 홈페이지 게시판이 확대 발전한 것이다.

매닉(20대 중반 여성, 영어 강사)도 아나클랜을 대표하는 논객 중 한 명이다. 가난하고 억눌린 여성들을 보면서 아나키즘을 수용했다는 그녀는 페미니즘과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에 특히 관심이 많다. 최근에는 회원들이 벌이는 국적 포기 운동을 이끌고 있다. ‘내가 국적 포기 각서에 서명하는 이유’라는 그녀의 최근 글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나는 나의 소중한 이웃과 친구들이, 우리를 보호하고 그 이익을 보장해 준다는 국익이라는 허상에 넘어가 온갖 가진 자들을 위한 정책에 동조하며 근본적인 도덕적 의지와 비폭력적 감수성을 죽이고 또 전시에는 전쟁 기계의 부속품이 되어 희생되기를 원치 않는다.’

이들 사이에서 흔히 ‘상계동 모임’으로 통하는 <환경과 반차별> 편집동인들도 활발히 활동하는 아나키스트들이다. 언론에 여러 차례 소개되었는데, 아나키스트들 사이에서 ‘할아버지’로 통하는 김원식씨(80)가 여기 속해 있다. 김씨는 과거 좌익 운동을 벌이다가 오랫동안 징역을 살기도 한 장기수 출신으로, 1990년대에 환경운동에 관심을 가지면서 아나키스트로 변신했다.

김씨를 뺀 다른 이들은 환경운동이나 생명운동 출신 20~30대이다. 이들은 <환경과 반차별>이라는 소책자를 부정기적으로 내고, 야기 다타시(八木 正)·무카이 코오(向井 孝) 등 일본 아나키스트들의 저작물을 번역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아나키즘 도서편찬위원회’라는 모임을 이끌고 있는 대학원생 최원하씨(27)도 아나키즘 서적 출판에 집중하고 있다.

라라컬트(www.raracult.com)라는 문화 창작 집단도 아나키즘 성향이 강한 그룹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최근 반전 평화 시위 도중 길가에 드러눕거나 꽃을 뿌리는 등 전위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아나키즘에 대한 젊은층의 관심은 인터넷 다음 카페를 가보아도 느낄 수 있다. ‘다름공유’(cafe.daum.net/anarchism)라는 이름의 에코 아나키즘 카페를 비롯해 10여 개 정도의 아나키즘 카페가 개설되어 있다.

물론 이들 모두 이론으로 무장된 ‘주의자’는 아니다. 아나클랜 회원인 승희씨는 “아나키즘에 대해 호감은 있지만, 사실 잘 모른다”라고 고백했다. 그녀는 우연히 아나키스트들의 물물 교환 행사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아나클랜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누군가의 구체적인 사상이 내게 희망을 줄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현재보다 나을 것이라 판단되는 것에 뜻을 함께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아나클랜 회원 중 상당수는 승희씨와 비슷한 사람들이다.

사실 아나키즘만큼 무엇이라 정의하기 힘든 말도 없다. 이 말은 원래 권력 또는 통치가 부재함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an archos’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테러리즘·자유·방종과 혼동되면서 많은 오해를 낳았다. 가장 큰 오해는 사회주의나 자본주의처럼 ‘전형화한 학설’로 이해되는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아나키스트 노암 촘스키는 “아나키즘은 학설이 아니라 사상과 행동의 역사적 경향이며, 계속해서 개발되고 발전 중인 수많은 길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아나키즘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박홍규 교수(영남대)도 “아나키즘은 자유·자치·자연을 키워드로 하는 하나의 실천적 경향이며, 무정부주의만으로 번역하는 것은 잘못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애매하고 오해투성이 사상인 아나키즘이 일부이지만 젊은층 사이에서 21세기 대안 사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유는 뭘까. 최근 일제시대 여성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의 평전을 번역한 국문학자 정선태씨는 “아무래도 자유 발랄하고 개인주의적이면서도 사회적인 발언에는 대담한 요즘 젊은층의 정서와 아나키즘이 비슷한 면이 있다”라고 분석했다. 따라서 아나키즘이 1990년대 말,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인터넷 문화가 확산된 이후에 국내에 재등장한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물론 아나키즘처럼 급진적인 사상이 다시 뿌리를 내리기에는 현대 세계가 너무 체계화해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박홍규 교수는 아나키즘이 혁명 사상으로 존재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아나키즘 연구자인 구승회 교수(동국대)도 “정치 이데올로기로서의 아나키즘은 현실 분석 도구로 쓰일 때만 유효하다”라고 단정한다. 세계적으로도 현재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아나키스트들은 생태주의·환경운동·자치운동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머레이 북친이 주창한 사회생태주의나 안토니오 네그리가 펼쳤던 자율운동이 최근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는 아나키즘 주제이다.

따라서 최근 국내의 아나키즘 논의 역시 사회운동으로 발전하기보다는 일종의 문화운동이나 유행으로 그칠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많다. 물론 새로운 운동이나 사상은 항상 유행과 함께 나타나기 마련이라는 정선태씨의 지적처럼, 아나키즘이 대중적인 세를 얻으며 대안 사상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환경과 반차별> 편집동인으로 참여하고 있는 이동근씨의 말은 국내 아나키스트들의 꿈을 대변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목표는 아나키즘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꿈이 ‘지속 가능하고 다양한 소규모 공동체들이 전세계에 걸쳐 유기적으로 연결된 지구촌 사회’라고 말한다면 거창한가? 그런 날을 위해 우리는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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