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실험적 건축집단 '아키그램' 특별전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3.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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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그램, 실험적 건축 1961-74>전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 네 바퀴로 가는 자전거 물 속을 나는 비행기 하늘로 나는 돛단배….’ 가수 한대수는 지리멸렬한 현실 속에서 역설을 꿈꾸었다. 그럼 이런 역설은 어떨까? 한 도시가 자신이 서 있는 환경이 진저리가 날 때면 벌떡 일어나 다른 곳으로 걸어가서 거기 플러그를 다시 꽂고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다면? 아키그램이라는 영국의 팝아트 건축가 그룹이 그런 상상을 했었다.

아키그램은 1960년대 영국에서 활동했던 건축 운동 집단의 이름이다. 현재 방한 중인 피터 쿡·데니스 크롬턴·데이비드 그린·마이크 웹과 이미 작고한 론 헤론·워렌 초크 등 건축가 6명은 1961년 <아키그램>이라는 부정기 건축 잡지를 발간했다. 이때부터 1974년 제9집을 낼 때까지 이들은 당시의 하이테크 수준을 극단까지 끌어올린, 그러면서도 다분히 키치적이고 편집(偏執)적인 오브제와 드로잉을 보여주면서 건축계에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대개 시스템 밖에서 이루어진 그들의 작품은 일종의 촌극으로 취급되었다.

주류 건축계가 그들을 인정한 것은 40여년이 흐른 뒤였다.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영국 왕립건축학회가 지난해 아키그램의 생존자 4명에게 여왕이 주는 금메달을 수여했다. 이 일을 기념해 백발이 성성해진 60대 아키그램 멤버 4명은 세계 순회전을 펼치고 있다. 한국은 열여섯 번째 기항지다.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60년대라는 시대 상황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그 시기는 세계대전의 전후 복구가 끝난 참이었고, 인류의 근대 기술 문명이 정점으로 치닫던 시기였다. 아폴로 우주선이 달을 향해 발사되면서 인간의 상상력도 한계를 넘나들었다. 한마디로 인류는 기술 발전을 통해 진보할 수 있다는 낙관론이 팽배하던 때였다.

건축계 내부도 전환기였다. 1950년대 중반에 근대 건축은 이미 절정기를 맞이했다. 동시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959년), 르 코르뷔지에(1965년), 미스 반 데 로우(1969년) 등 근대 건축의 선구자들이 세상을 떠나기 시작했다. 세계 건축계는 영웅 없는 할거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아키그램은 이런 시대 상황에서 새로운 도약을 꿈꾸었다. 그들은 이미 꼭대기까지 도달한 근대주의를 극복하려 했는데, 그 방법은 요즘 발상과는 전혀 달랐다. 비인간적인 기술 문명의 정점에서 그 기술 문명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유토피아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플러그 인 시티> <워킹 시티> <인스턴트 시티> 등의 드로잉과 오브제 작업은 이런 신념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플러그 인 시티(Plug-In City)>는 말 그대로 플러그를 꽂아 작동하는 도시를 뜻한다. 도시는 거대한 레일 위에 건축되며, 건물은 대개 이동하고 조립하기 편한 금속재로 만들어진다. 인간들은 건물을 이리저리 옮기기도 하고, 수명이 다하면 빼서 버릴 수 있다. 가령 욕조나 부엌은 3년 후 폐기되고, 도로와 격납고는 20년마다 새로 끼워진다. 여기서 ‘도시’는 뉴욕이나 런던 같은 메트로폴리스가 아니라, 3만명 정도가 사는 ‘마을’을 일컫는다.

이들의 발칙한 상상은 론 하론이 디자인한 <워킹 시티(Walking City)>에서 최고조에 이르렀다. 거대한 파충류 형상을 한 하이테크 도시가 망원경 비슷하게 생긴 다리를 움직이며 국제 도시 뉴욕의 스카이라인 곁을 성큼성큼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지금 이런 인공물이 있다면 흉물스럽고 야만스럽게 여겨지겠지만 당시는 선구적인 조형 실험이었다. 거주자들의 욕구에 맞추어 거주 환경 자체가 옮겨다닐 수 있다니! 이런 유목민적 상상력을 실제 도면으로 옮긴 것이 ‘걸어다니는 도시’였다.

이에 비해 후기 작품인 <인스턴트 시티(Instant City)>는 좀더 실용적이다. 문화 혜택을 받지 못하는 도시 주변의 젊은이들을 위해 ‘즉석 도시’를 만들자는 것이 기획 의도였다. 빈민촌에 어느 날 갑자기 행사장·시장·극장 따위 기능을 가진 텐트들이 옮겨져 조립된다. 그리고 거주자들에게 여러 문화 혜택을 맛보인 다음 다른 데로 이동한다. 확대된 ‘동춘 서커스’를 상상해도 될 듯하다. 물론 즉석 도시는 오락 기능만이 아니라 교육이나 사회 복지를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이지만.

아키그램의 드로잉 작업은 대부분 도면 안에서 끝나고 말았다. 당시의 기술 수준이나 상식적 잣대가 그들을 수용하지 못했다. 유목자적인 삶의 태도나 구조를 끊임없이 해체하고자 시도한 것에서 그들은 현대의 사조와도 닮았지만, 탈 근대를 추구하는 현대의 잣대로 볼 때도 기계 문명 신봉자들인 그들의 작업은 이해되기 힘들 듯하다.

하지만 열정으로 가득찼던 이 근대주의 건축의 전위들이 후배들에게 어떤 영감을 주었는지 확인하기는 어렵지 않다. 예를 들어 <워킹 시티>의 드로잉은 리처드 로저스와 랜조 피아노가 공동 작업한 파리 퐁피두센터의 설계에 영향을 미쳤다. 영국의 하이테크 건축가 윌리엄 알솝의 최근 작업에서도 이런 자취는 엿보인다.

오히려 현실 건축의 틀에서 조금 벗어나 보면 그들의 ‘자식’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제임스 본드가 나오는 첩보 영화나 많은 공상과학 영화들은 그들의 콘셉트를 상당히 차용했다. 마크 피셔가 연출한 핑크 플로이드의 거대한 공연 무대나, 후대에 등장한 많은 컴퓨터 그래픽과 일러스트레이션에서도 그들의 입김을 느낄 수 있다.

전시회장 한쪽 구석에는 라는 제목의 콜라주 작품이 걸려 있다. 여기저기 카탈로그에서 채집한 사람들의 사진이 건물 사진 앞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작품이다. 거기에는 이런 문장이 쓰여 있다. ‘이것이… 대학 건물이라고? 오락장이라고? 집이라고?’
멤버 가운데 건축의 변이성에 남달리 관심을 가져온 데니스 크롬턴은, 아키그램이 추구하는 건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도시와 건물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길이 생기고, 전기와 난방 배선이 들어오고, 자동차가 들어오고, 사람들이 꼬여들고, 여러 이벤트가 생겨난다. 그럼 과연 그것들이 들어서고 난 뒤 정작 건물과 도시는 자신이 끌어들인 것들에 대해 얼마만큼 반응하는가. 반응하지 않는 건축은 유령일 뿐이다. 우리는 유령을 뛰어넘는 다른 건축을 하고 싶었다.”
<아키그램, 실험적 건축 1961-74>전은 8월1일부터 31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02-580-1538~9)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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