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브라더스 작품이 <매트릭스>의 뿌리”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3.07.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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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영화제 르포/‘종의 다양성+작품성’ 보여줘
“이번에는 꼭 가봐야지.” “올해도 좋은 영화 많다던데.” “쇼브라더스 회고전은 정말 볼 만할 거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다가오면 영화인들은 너나없이 영화제 참가를 다짐한다. 그러나 이런 다짐은 공염불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작 부천에 가보면 영화인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 원인은 역설적이게도 영화들이 너무 좋아서이다. 영화로는 좋지만 상업적으로는 가치가 없는 영화들이 상영되기 때문에 부천영화제는 늘 ‘가깝고도 먼 영화제’로 그친다.

부천영화제는 철저하게 영화 마니아들의 축제이다. 보고 싶은 영화 티켓을 구하기 위해 티켓 판매소 앞에서 신문지를 깔고 밤새워 장사진을 치고 기다리는 시네마키드들, 영화제 내내 분식집과 찜질방에서 동가식서가숙하며 궁상을 피우는 영화 노숙자들, 순환 버스를 타고 부천시민회관과 복사골문화센터를 지나 부천시청을 순회하며 영화 정찬을 들고 마지막으로 심야 상영관에 가서 영화 디저트로 하루를 마감하는 영화 유민들, 그들이 바로 부천영화제의 주인공들이다.

올해 부천의 영화 마니아들은 ‘종의 다양화’를 이루어냈다. 혼자 영화제를 찾는 ‘나 홀로 부천족’, 공포 영화에 살고 공포 영화에 죽는 ‘공포 영화족’, 낮이면 숨죽이고 있다가 밤이 되면 기지개를 펴고 영화 사냥에 나서는 ‘심야상영족’, 돗자리 펴고 공짜 야외 상영만 쫓아다니는 ‘야외 상영족’이 바로 그들이다. 올해는 특별히 인도 영화에 목숨 거는 ‘볼리우드족’까지 합류했다. 마니아들은 병이 깊어지면 자원봉사 중독증을 보이기 시작한다. 특히 사전 자원활동가는 중증 환자들인데, 어떤 마니아는 50일을 영화제에 헌납했다.

목이 잘리고도 15년 동안 산 수탉 이야기 <머리 잘린 닭, 마이크>나 왕년의 전설적 포르노 여배우의 현재를 찾아가는 <여왕 세카를 찾아서> 등은 부천영화제가 아니면 보기 힘든 영화들이다. 이런 영화들은 마니아들의 검증을 거친 다음 개봉관에 명함을 내밀기도 한다. <슈팅 라이크 베컴> <디 아이>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 등이 이처럼 부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뒤에 개봉되는 행운을 얻은 영화들이다. 올해는 <문차일드>가 매진 사례를 기록하며 흥행을 예감하고 있다. 미래의 팀 버튼을 키우는 부천영화제에 배우 김인권씨는 자신의 대학 졸업 작품 <쉬브스키>로 데뷔전을 치렀다.

영화적 ‘종의 다양성’을 중시하는 부천영화제가 올해 준비한 특선 요리는 ‘쇼브라더스 회고전’이었다. 쇼브라더스는 1960~1970년대 후진첸(胡金銓)·장치(張徹)·리한시앙(李翰祥) 감독의 스타 군단이 이끌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영화 평론가 데이비드 보드웰은 이들의 영화를 ‘아방가르드와 팝아트가 결합한 아방팝 영화’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골든 하베스트’가 저우룬파(周潤發)와 장궈룽(張國榮)을 앞세우며 아시아 영화 시장을 주름잡기 전까지 아시아 영화 시장을 쥐락펴락했던 ‘쇼브라더스’의 영화들이 이번 영화제의 주요리였다.

‘쇼브라더스’의 주연 배우로 활약했던 장페이페이는 마니아들로부터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특히 그녀가 주연한 <대취협>은 아들뻘 되는 경기예술고등학교 학생들이 단체 관람을 하기도 하는 등 인기 절정임을 실감케 했다. 중년 남성 팬들로부터 사인 세례까지 받은 덕에 신이 난 장페이페이에 대해 장치 감독은 “촬영장에서 주로 잤다”라고 ‘폭로’하기도 했다.

그는 관객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젊은 관객들이 나를 알아보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 그들이 보았을 <와호장룡>에서 나는 천하의 악역으로 등장했을 뿐이다. 내가 주연한 <대취협>이 나왔을 때 그들은 엄마 뱃속에 있었을 것이다.”

쇼브라더스 영화를 주제로 한 간담회인 ‘메가토크’가 7월12일과 13일 이틀간 진행되었는데 빈자리 없이 채워졌다. 12일의 메가토크 자리에서는 원조 시네마키드 격인 김홍준 부천영화제 집행위원장과 영화 평론가 정성일씨가 자신들의 10대 시절을 수놓았던 쇼브라더스에 바치는 헌사를 쏟아냈다.

메가토크 자리에서 김홍준 위원장은 쇼브라더스 영화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하며 말문을 열었다. 마치 중년에 이른 첫사랑 여인을 다시 만나 느낄 법한 씁쓸함을 맛보았다는 듯 그는 “다시 보니 쇼브라더스의 영화는 정말이지 ‘못 만든’ 영화였다. 영화적 문법을 무시한 ‘반칙 영화’였고 최소한의 장인 정신도 기울이지 않은 ‘후안무치한 영화’였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너무나도 형편없는 그런 영화에 당시 왜 그토록 자신이 열광했는지를 하나하나 되짚어보았다. 그는 지극히 상업적인 쇼브라더스의 영화들이 지극히 예술 지향적인 고다르의 영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토양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너무나 전위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발제자로 나선 정성일씨는 쇼브라더스의 영화를 호화찬란하고, 신기막측하며, 기기묘묘하고, 황당무계한 영화라고 정의했다. 정씨는 <와호장룡>과 <매트릭스> 시리즈의 뿌리가 쇼브라더스에 있다고 주장했다. 후진첸의 적자 리안(李安)이 할리우드에 진출해 <와호장룡>의 액션을 만들어 냈고 쇼브라더스의 무술 감독 계보에 있는 위안허핑(袁和平)이 <매트릭스>의 디지털 무협 장면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정씨는 워너브라더스를 표절한 쇼브라더스가 무협 영화에 서부 영화의 영웅주의를 차용해 장르 영화 공식을 완성하고, 무협 영화들이 한편 한편 대물림하면서 내공을 키워 결국 할리우드에 입성한 뒤 <매트릭스>에까지 이르는 과정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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