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작 소동 왜 일어났나
  • 황정수 (미술사가) ()
  • 승인 2003.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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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작 소동/경매 활성화 통해 공개적으로 가짜 가려내야
“싸고 좋은 것은 없다! 출처를 중시해라! 믿을 만한 사람에게 사라! 가짜가 아닌 것은 진짜다! 아는 것만 해라! 감정서를 믿지 마라!…”

장사하는 집안의 가훈과도 같은 이 말들은 필자가 20년 전 미술품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때, 인도했던 선배가 항상 강조하던 말이었다. 비교적 어린 나이의 월급쟁이였던 필자가 잘못 골동품에 빠져 패가망신하지 않을까 걱정하던 선배의 애정 어린 충고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모두 가짜(위작)에 속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만큼 미술품 수집에서 중요한 것은 감상 능력 못지 않게 진짜와 가짜를 구분해 내는 눈을 갖는 것이다.

지난 9월28일 오전에 방송된 (KBS1)에서 ‘청자상감동채운학문매병(靑磁象嵌銅彩雲鶴紋梅甁)’ 한 점이 감정가 7억원짜리 보물급 명품으로 판정났다가, 뒤늦게 가짜로 번복되는 소동이 벌어져 화제다. 이번 일은 과거 명품을 흉내내 새로 만들어낸 위작과는 양상을 달리한다. 이번의 도자기는 전체가 위작이 아니라, 고려 청자의 깨진 부분을 복원하면서 문양의 한 부분에 진사(辰砂:진홍색 안료)를 새로 정교하게 넣어 훨씬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려 했다는 데 차이점이 있다.

프로그램은 많은 애호가들이 궁금해 하는 작품의 진위와 함께 가격까지 매기는 상업적인 시가(時價) 감정이라는 데 그 특징이 있다. 공중파를 통해 많은 시청자가 증인이 되는 감정 방식으로, 진품으로 인정될 경우 가장 높은 신뢰성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위력으로 그동안 미술품에 관심이 부족했던 우리 문화계에 역사를 담고 있는 예술품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는 구실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예술적 가치가 중시되어야 할 작품을 가격으로 환산하는 상업적 의도와 결탁하는 바람에 예술품 상품화를 조장하는 역기능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의미’보다는 ‘값’에 초점이 맞추어져 작품간 우열을 가리는 ‘뽐내기 대회’ 같은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또한 비전문가로 구성된 쇼 감정단의 장난스러움은 예술품의 격을 떨어뜨리고, 치밀하지 못한 진행 방식은 예술품 감정의 예민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이번 일의 사후 처리 과정도 문제다. 학술적 접근을 하기 어려운 감정가가, 공인된 연구소도 아닌 병원의 방사선 촬영을 통해 작품 감정 내용을 번복하는 모습은 실망스럽기 이를 데 없다. 현장 전문가의 지적을 학술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전문적인 감정 과정을 당연히 거쳤어야 했다.

이번 일은 예술품 감정과 그에 따르는 도덕성이 심판대에 오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미술품을 중심으로 한 골동품 세계의 가장 큰 어려움은 갈수록 정교하게 만들어지는 수많은 ‘가짜’들과의 전쟁이었다. 이같은 상황에서는, 진위가 의심스럽거나 작품의 가치가 궁금한 작품들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검증되어 제대로 된 모습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야 할 것이다. 특히 학술 가치가 높은 작품은 국가 공인기관에 의해 학자나 애호가들에게 공개되어 진위나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한다.
비싼 작품일수록 유통 또한 공개적으로 이루어져야 위작 유통을 가능한 한 막을 수 있다. 소더비나 크리스티와 같이 믿을 만한 경매 회사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경매는 인기 있는 작품에 애호가들의 관심이 쏠려 자칫 상업적으로 치달을 위험성이 있지만, 대부분 암거래에 의존하는 미술계에서 위작 유통을 가능한 한 줄일 수 있는 유통 방식이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위작이라 하더라도 수많은 애호가의 눈은 피해가기 어렵다. 경매 회사가 자체 감정위원회에서 작품을 감정하고 공개하고, 현장 경매의 가격 경쟁에 의해 다시 한번 검증되고, 판매된 작품을 기록으로 남겨 후대에까지 감정 기회를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짜라도 끝까지 속이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이제 우리도 서양의 유명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을 바라보듯, 국내 박물관의 작품도 의심하지 않고 볼 수 있어야 한다. 베이징의 리우리창 거리(청나라 때부터 조성된, 고서와 골동품을 파는 관광 명소)나 뉴욕의 소호 거리를 부러워하듯이, ‘잡된 것’이 사라진 인사동 거리를 흐뭇하게 걷는 내일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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