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상실의 시대''가 신화를 부른다
  • 박성준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0.11.3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출판 · 학술계 '신화 읽기' 붐…
제우스와 헬라, 프로메테우스와 포세이돈, 아프로디테와 아프테미스…. 고대 그리스의 인간세를 지배했던 신들의 이름이다. 소설가이자 신화 연구가인 이윤기씨가 ‘그리스 신화의 뒷마당’이라고 부르는 이집트 쪽을 돌아보면 또 다른 신들이 버티고 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신은 오리시스와 이시스. 오리시스는 시샘 많은 사악한 동생 세트에게 살해된 뒤 지하 세계를 지배하게 된 신으로 유명하다.

중국 쪽으로 눈길을 옮기면 이번에는 그리스 신화의 아틀라스에 비견되는 반고(盤古)가 등장한다. 그는 아틀라스가 지구를 떠받쳤듯이, 머리로는 하늘을 이고 다리로는 땅을 누르고 있었다. 반고가 죽은 뒤 몸이 분해되어 배가 산을 이루고, 두 눈은 각각 해와 달이 되었으며, 눈물은 강으로, 숨결은 바람으로, 뼈는 쇠붙이와 돌이 되어 고대 중국의 ‘세계’가 탄생했다.
신화(神話)가 몰려오고 있다. 책방에는 신화 관련 책들이 봇물을 이룬다. 그 중에는 베스트 셀러도 많다. J. F. 비얼레인이 쓴 〈세계의 유사 신화〉는 1996년 3월 처음 번역되어 나왔는데, 초판은 10쇄를 찍어냈고 지금은 2판이 나왔다. 지난 여름 웅진닷컴이 펴낸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초판이 나온 지 3개월여 만에 11쇄를 찍어내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신화는 인문학계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영문학자 도정일 교수(경희대)는 일찌 감치 신화 읽기의 중요성을 깨닫고 10여 년째 대학 강단에서 신화를 강의하고 있다.

정재서 교수(이화여대·중국학), 유재원 교수(한국외대·그리스어), 조철수 박사(수메르어) 등은 모두 자기 분야에서 이름을 얻고 있는 신화학자들이다.

최근 들어 신화를 가르치는 대학도 부쩍 늘었다. 이화여대·서울대·서강대·한양대는 저마다 신화 관련 과목을 개설해 학생을 불러모으고 있다. 최근에는 소장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한국의 신화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신화를 좀더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위한 모임을 만들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신화의 주인공들은 단연코 신, 그 자신이다. 하지만 신화는 말이 신의 이야기이지 사실은 인간의 이야기이다. 그리스 신화는 그중에서도 유별나다. 그리스 신들이 펼치는 이야기 안에는 욕망·질투·저주·기만·근친상간·권력 다툼·전쟁·사랑, 행과 불행, 삶과 죽음 등 인간의 모든 속성이 그대로 내재되어 있다. 신화 하면 얼핏 떠올리는 ‘신성성’ ‘불멸성’은 겨우 이들 신화의 그림자 속에서나 더듬을 수 있다.

신화는 지역에 따라, 내용에 따라 다양한 가지를 뻗는다. 그리스·로마 신화, 이집트 신화, 히브리 신화, 중국 신화는 지역에 따른 구분이다. 창조 신화·홍수 신화·영웅 신화·전쟁 신화 따위는 내용에 따른 분류이다. 한국의 ‘단군 신화’는 ‘건국 신화’ 또는 ‘공민 신화’에 속한다.

눈길을 끄는 점은, 신화가 내용과 지역에 따라 제각각이면서도 일정한 유사성과 반복성·보편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리스에 창조주인 ‘가이아’와 ‘우라노스’가 있다면, 서아프리카에는 ‘요루바’가 있고, 중국에는 ‘반고’가 있다. 그리스에 ‘테세우스’라는 영웅이 살았다면, 노르웨이와 독일에는 ‘지그프리트’라는 영웅이 활약했다. 신화의 유사성과 반복성은 곧장 문화의 유사성·반복성으로 이어진다. 신화는 상징과 언어의 형태로 끊임없이 문화에 삼투되기 때문이다.
문화의 원형질이기도 한 신화의 유사성·반복성은 특히 중·근동 신화와 그리스·로마 신화 사이에서 두드러진다. 예컨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홍수 신화와 창세 신화는 기독교 신화에서 반복된다. 바빌로니아의 여신 ‘이시타르’는 그리스·로마 문화권에 전해져 ‘별’을 뜻하는 ‘애스트로(astro)’로 둔갑한다. 수메르어를 전공한 언어학자이자 메소포타미아 신화 연구가인 조철수 박사는 이같은 측면에서 ‘유럽 역사의 첫 장이 바빌로니아 등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시작한다는 점을 눈여겨 보라’고 권고한다.

최근에 불어닥친 신화 읽기 붐은 언뜻 이해하기 힘들다. ‘새것’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집단 무의식을 떠올린다면 더욱 납득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이같은 의문에 대한 답은 일단 신화가 갖는 속성에서 찾을 수 있다. 신화는 읽기에 재미있고 편하다. 신화는 대개 짤막한 이야기로 전개되기 마련이어서 이른바 ‘시간의 경제성’도 있다고 일컬어진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것이 신화 붐의 일부이거나 겉모습일 뿐이라고 진단한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이같은 현상을 과학과 이성이 삶의 터전을 무참하게 짓밟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에 대한 위기 의식을 반영했다고 파악한다. 인간의 내면에는 이성의 이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불확실한 힘이 있다. 그런데 20세기 과학과 이성은 인간의 행복을 보증한다는 명목으로 이성 바깥에 있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폐기 처분하도록 강요했다. 그 결과 인간은 내면의 일부가 훼손당함으로써 총체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신화는 바로 이같은 총체성 상실에서 벗어나는 유용한 출구일 수 있다는 것이다.
소설가 이윤기씨와 불문학자 김정란 교수(상지대)는 일찍이 1995년 문학동네가 펴낸 ‘신화 상징 총서’를 기획하며 이같은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그 때 이들은 신화와 상징을 ‘인간의 인식에 의해 심하게 훼손된 종교 이데올로기와 달리, 인류가 자연과 하나였을 당시의 총체적 자아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인류학의 보고’라고 정의한 바 있다.

흔히 문화의 세기라고 일컬어지는 21세기가 전개되기 위해서도 신화는 필요하다. 소설가 이윤기씨는 신화의 실용성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신화는 세계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통과해야 할 관문이다. 신화를 모르면 세계 문화 앞에 눈뜬장님이 된다는 것이다(100쪽 상자 기사 참조).

도정일 교수는 이와는 좀더 다른 각도에서 설명을 보탠다. 철학자 폴 리퀘르의 말을 인용한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인간은 대전환·전쟁 등 실존의 위기에 부딪칠 때 신화를 찾게 된다. 이 때 인간은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등 기원과 목적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는데, 이에 대한 해답의 핵심이 신화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997년부터 최근까지 계간지 〈문학동네〉에 신화 분석을 연재한 그는 “문학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신화가 주는 은유적 상상력의 의미를 읽어내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인간의 이야기’이자 ‘인류 문화의 원형’이라는 점에서 서양은 신화에 일찍부터 관심을 기울여 왔다. 종교학의 엘리아데, 인류학의 레비스트로스, 기호학의 바르트, 철학의 리퀘르, 심리학의 융이 대표적이다. 서양에서는 신화가 이미 신화학이라는 학문으로 독립한 지 오래다.

이에 비하면 한국의 신화학, 또는 신화 연구는 아직은 일천하다는 것이 관련 연구자들의 중론이다. 비록 민속학이나 종교학 분야에서 신화 읽기가 시도되어 왔지만 국지성·단편성의 한계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에는 한국에 전설·민담에 비해 이렇다 할 신화가 적은 탓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인문학계 전반이 신화의 학술적 가치를 낮게 보고, 일반 독자들에게도 퉁명스러웠다는 것이 더 큰 요인으로 지적된다.

결국 신화 읽기는 앞으로가 시작인 셈이다. “신화는 신성성과 상징성을 기본 속성으로 한다. 이들 속성은 신화를 기본적으로 불합리한 것으로 만든다. 하지만 이같은 신화의 불합리야 말로 오늘날 합리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절실한 삶의 요청이다”라고 도정일 교수는 말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