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인한 ‘괜찮은 남자’
  • 노순동 (soon@sisapress.com)
  • 승인 2003.11.1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성 평등’ 수기 공모 수상자들/“타고난 여성성이란 없다”
여성들의 아우성만 가득한 것이 아닐까. ‘양성 평등’ 수기를 공모하면서 주최측(여성부 산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은 이렇게 우려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지난 11월8일 열린 시상식에 참석한 수상자 7명 가운데 여성 수상자는 단 2명이었다.

최우수상을 받은 의사 최기홍씨는 슈퍼맨 되기의 고달픔을 토로했다. 아내 안윤정씨가 결혼을 앞두고 평생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질문을 해댔기 때문이다. ‘왜 집안일은 여자가 다 해야 하는데? 왜 폐백은 여자만 해야 하는 데?’ 결혼에 관심이 없는 아내를 설득해 결혼에는 성공했지만, 고달픈 생활이 계속되었다. 레지던트 생활을 하면서 새벽 출근길에 와이셔츠를 다려 입어야 했고, 해마다 양대 명절 중 한번은 처가에서 머물렀다.
다들 결혼하면 총각 시절보다 훨씬 편안하고 안락해진다는데 자신만 손해를 보는 듯한 느낌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달라졌다. 남의 일을 한다고 생각할 때는 억울한 느낌이 들었지만 내 일이라고 생각하니 불만이 누그러졌다. 최씨는 이제 아내가 뜯어진 바지를 갖고 오면 유세를 떨며 바느질을 해준다. 그는 “몇 년 뒤에는 아내가 날 공부시켜 준다니 그 때를 기대해본다”라고 했다.

아내 안윤정씨의 소감은? “너무 악독하게 구는 게 아닌가 갈등했지만, 여러분의 격려를 받으니 마음이 놓인다”라며 웃었다. 안씨에게 남편 최씨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안씨는 “제주도 출신으로 육지 남자들 특유의 마초성이 없고, 가정이 어려워서 그런지 마이너들의 감성을 잘 이해했다”라고 말했다.

‘양성 평등 출석부’를 시도한 50대 중반 초등학교 교사 김용진씨도 눈길을 끌었다. 함께 시상식에 참석한 아내 서영자씨는 “늘그막에 변한 남편이 너무 신기하다”라며 싱글벙글이었다. 김씨는 남학생이 먼저 나오고 여학생이 뒤를 차지하는 출석부를 혁신해 화제가 되었다. 성별을 무시하고 한글 순서대로 출석부를 표기한 것. 30년 동안 교사 생활을 해온 김씨는 “요즘 초등학생들을 보면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양성 평등한 사회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아이 울면 먼저 깨는 ‘원래 평등남’

장려상 수상자인 전업 주부(主夫) 오성근씨는 아내를 바깥 양반이라고 부른다. 오씨의 아내 이정희씨는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자라 도통 의사 표현을 하지 못했다. 반면 오씨는 학교에서 똑같이 돌아온 여동생이 자신에게 라면을 끓여주어야 하는 상황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원래 평등남.’ 공무원인 아내가 생계를 책임지고 자신은 딸 다향이를 맡아 기르고 있다.

원장 장성자씨는 “양성 평등이라고 하면, 기 센 여자에게 주눅든 일부 남성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수기를 받아보니 세상이 이미 변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