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문화] 난개발에 신음하는 詩歌문화권
  • 나권일 기자 (nafree@sisapress.com)
  • 승인 2000.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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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소쇄원·식영정 일대 난개발 … 개관 앞둔 가사문학관도 문제
무등산은 광주의 진산(鎭山)이자 호남의 명산이다. 특히 광주호에서 무등산 원효사 계곡에 이르는 원림(園林) 등은 조선 시대 사림(士林) 문화의 소중한 유산이자 시가(詩歌)문화권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꼽힌다. 소쇄원·식영정·환벽당·풍암정·취가정·독수정·면앙정은 정 철과 송 순으로 대표되는 가사 문학의 산실일 뿐만 아니라 호남 사림의 기개와 학문의 자취를 더듬을 배움터로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전남 담양군 일대에 자리잡은 시가문화권은 최근 2년 동안에만 18개나 되는 음식점과 카페가 들어서면서 본래의 정취를 잃어버린 지 오래이다. 사람이 많이 찾는 식영정과 소쇄원은 바로 코앞에까지 식당과 카페가 들어섰을 정도이다. 시가문화권 일대에 자리잡은 음식점 40여 곳은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국적 불명 건축물이 대부분이다. 보다 못한 광주환경운동연합(사무국장 임낙평)이 최근 담양군 시가문화권 일대의 위락 시설 난립 실태를 조사한 뒤 시정을 요구했지만 담양군(군수 문경규)의 개발 정책 때문에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개발 제한 구역인 시가문화권 일대에 음식점 등 각종 건축물이 규제 없이 들어서는 것은 현지 주민들이 집을 사들인 뒤 음식점이나 찻집·모텔로 증·개축을 신청하면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는 이유로 행정 관청이 허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린벨트 내 거주민에 대해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이축권(移築權)이 ‘딱지’라는 이름으로 거래되는 것도 이 일대에 건축물이 난립하는 이유이다.

무분별한 음식점 난립을 막으려면 담양군이 건축물 허가를 제한해야 하지만, 담양군은 오히려 시가문화권 일대를 관광 코스로 개발해 재정 수입을 늘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풍암정과 환벽당이 있는 광주시 북구청(청장 김재균)이 조례를 제정해 건축 허가를 신청한 민원인과 갈등을 빚으면서까지 시가문화권 일대의 건축물 허가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담양군의 시가문화권 일대 관광 코스 개발에서 가장 눈에 거슬리는 부분은 소쇄원과 식영정·환벽당의 중심부인 지실마을 앞 뜨락에 조성한 ‘가사문학관’ 건립 사업이다. 5천여 평 부지에 83억원이 투입된 가사문학관은 오는 11월 초 개관을 앞두고 국문학 교수들을 위촉해 가사 문학 관련 유물 수집이 한창이다.

그러나 팔작지붕 형태의 2층 콘크리트 건물로 위풍당당하게 자리잡은 가사문학관 건물은 인근 지실마을을 가릴 정도로 주변 환경과 부조화를 이루고 있는 데다 식영정의 아랫자락 논을 복토해 건립한 탓에 건립 초기부터 수려한 경관의 정자 문화를 파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또 가사문학관 건립 공사가 시작된 1998년 이후 인근에 음식점 수십 개가 들어서는 바람에 가사문학관 건립이 오히려 주변 지역의 난개발을 부추겼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때문에 ‘무등산권 문화유산 보존회’(회장 서명원)가 관련 자치단체들과 함께 무등산 일대 시가문화권 개발과 보존에 대해 토론을 하자고 주장하지만 담양군의 소극적인 태도 때문에 쉽지 않은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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