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6백년 만에 햇빛 본 백제 문화의 '보고'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3.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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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 수촌리 고분군 발굴 현장/환두대도·금동제 부장품 등 4~5세기 유물 쏟아져
충남 공주시 의당면 수촌리에 있는 수촌초등학교 뒷산. 야트막한 야산을 5분 정도 오르니 파헤쳐진 옛 무덤 여섯 기가 눈에 들어왔다. 역사학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백제 고분 발굴 현장이다.

무덤들은 대개 가로 5m 세로 4m 크기에 1.5m 정도 깊이로 파헤쳐져 있었다. 그 중 한 무덤에서 목걸이 출토 작업이 한창이었다. 유리로 보이는 검은색 목걸이와 태아 모양을 한 비취색 곡옥(曲玉) 장식이 땅 속에 반쯤 묻힌 채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작업은 붓끝에 증류수를 묻혀 수직으로 톡톡 찍은 뒤 공기를 불어 조심스레 닦아내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유물이 상하지 않도록 벌써 며칠째 이렇게 작업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발굴을 주도하고 있는 충남발전연구원 부설 충남문화연구소 문화재 연구부 이 훈 연구부장(42)은 “이 무덤들은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전반에 걸쳐 조성된, 백제 시대에 이 지역에서 유력했던 토호 집안의 3~4대에 걸친 가족묘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무덤 주인공들이 ‘1천6백년 만의 외출’을 하게 된 계기는 실로 우연스럽게 찾아왔다. 충청남도는 이곳에 농공단지를 조성하려고 했다. 그 사전 작업으로 문화 유적 지표 조사가 벌어졌는데, 그 과정에서 무덤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 하지만 조사단은 애초 이 정도의 유물이 발굴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동안 주요 백제 유물은 대개가 도읍지였던 금강 남쪽 지역에서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곳은 30년 전부터 조경 회사가 조경수를 심어 가꾸던 부지였다. 그래서 유물이 있더라도 거의 파괴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런 지역 특성 때문에 오히려 이들 무덤은 도굴을 면한 채 지금까지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다.

본격적인 지표 조사를 진행하면서부터 조사단은 땅 속에 뭔가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기 시작했다. 조사단은 산신제를 지낸 후, 9월29일부터 표토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파 내려가자 묘광을 판 흔적이 드러났다. 곧이어 목곽과 목관으로 보이는 물질이 출토되었다. 관은 통판이 아닌, 두께 4cm 너비 10cm 나무판 여러 개를 꺾쇠 형태로 맞물려서 만든 것이었다. 당시 기술로는 지름 1m가 넘는 나무로 통판을 켜기에는 힘에 부쳤을 것으로 짐작되었다(이로부터 1세기 반쯤 후에 조성된 무령왕의 관은 지름 1.5m가 넘는 금송으로 통관을 짜서 만들었다). 그리고 조금 더 파 내려가자 익숙한 둥근 모양의 백제 토기가 얼굴을 내밀었다. 4세기 무렵의 백제 고분에서 흔히 발견되는 토광목곽묘(土壙木槨墓; 흙을 판 뒤 관을 넣어두는 묘실을 나무로 짜서 만든 무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수촌리 고분 1호분은 이렇게 발굴되었다. 이어 1호분을 기점으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연이어 무덤 다섯 기가 추가로 발굴되었다. 그 중에서 조사단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끈 것이 4호분이다. 이 무덤은 다른 것에 비해 규모도 컸고, 횡혈식석실묘(橫穴式石室墓;돌로 관을 넣어두는 방을 만들고 한쪽에 외부로 통하는 출입구를 낸 뒤 봉토를 씌운 무덤)의 초기 모습을 띠고 있었다. 1호분보다 조성 연대가 50년 이상 후대의 것으로 보였다. 여기서 환두대도(環頭大刀;손잡이 끝부분에 둥근 고리 모양의 장식이 있는 칼), 금동관, 금동 신발, 금동 허리띠, 말 재갈과 등자, 계수호(鷄首壺;닭대가리 장식이 달린 도자기)를 비롯한 중국 도자기 4점과 백제 토기 등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충남발전연구원 소속 연구위원으로서 발굴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강종원 박사(41)는 “왕릉이 아닌 민간인의 무덤에서 이 정도 유물이 나왔다는 것은 무덤의 주인공이 왕에 버금가는 실력자였음을 뜻한다. 고분의 주인공들이 유력한 지역 토호 세력이었을 뿐만 아니라 중앙의 한성 백제 왕실과도 긴밀하게 지배-피지배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는 것도 이 4호분에서 쏟아져 나온 유물들 덕분이었다”라고 말했다.

쏟아져 나온 유물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이 중국 도자기인 계수호다. 닭대가리 장식을 단 이 검붉은 도자기는 4~5세기에 중국 동진(東晋) 시대에만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이 도자기를 고분의 절대 연대를 추정하는 유력한 잣대로 삼는다. 수촌리 고분군이 4세기 후반∼5세기 초반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학계가 보는 것도 무덤 양식뿐 아니라 계수호를 비롯한 당대의 도자기들이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3~4대에 걸친 가족 묘역이 집단으로 발굴되었다는 점도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토광목곽묘·횡구식석실묘·횡혈식석실묘·수혈식석관묘가 한 지역에서 한꺼번에 발굴된 것은 거의 최초의 일이다. 학자들은 이를 토대로 4~5세기 백제 시대의 묘지 연구에도 획기적인 성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수촌리 고분 발굴은 현재 80% 가량 진척되었다. 조사단은 원래 11월 말까지 조사를 끝낼 계획이었지만, 아직 상당량의 유물이 땅속에 묻혀 있다고 판단하고 조사 기간을 무한정 연장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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