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도 분별도 태워 없앤 ‘불꽃 장엄’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3.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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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탈입망’한 백양사 방장 서옹 스님 다비식
"님, 불 들어갑니다.” 12월19일 오후 1시40분, 제자인 수산 스님이 외치는 소리와 함께 불 붙은 솜뭉치를 매단 대나무 20여 개가 일제히 연화대로 내려앉았다. 이윽고 높이 3m 지름 3m인 연화대 사방에서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불자 수 천 명의 입에서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깔려나왔다.

다비는 인도 말로 ‘태워서 없앤다’는 뜻이다. 불로 목욕한다고 해서 ‘화욕(火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태어남도, 죽음도, 생각도, 분별도 모두 없애버린다는 불교의 사생관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의식이 다비다. 조계종 제5대 종정을 지내고, 백양사 고불총림 방장으로 있던 서옹(西翁) 스님의 몸은 그렇게 사라졌다. 이번 겨울 들어 가장 추웠던 날, 다비식 내내 눈발이 그치지 않았다.

2003년에는 고승들의 열반이 유독 많았다. 서암·월하·덕암 등 종정을 지낸 원로 스님들이 입적했고, 고송·청화·덕명·정대 등 대표적인 선승과 원로 스님들도 뒤를 따랐다. 서옹 스님의 원적은 그 행렬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이었다. 스님은 지난 12월13일 저녁 10시10분 전남 장성군 백암산의 백양사 설선당에서 참선하는 자세 그대로 가부좌를 틀고 앉은 채 열반에 들었다. 세수 92세, 법랍 72세.

12월19일 오후 1시40분, 서옹 스님의 법구를 모신 연화대에 불이 붙었다. 24시간 후 연화대 밑 항아리 속에서 사리 4점이 발견되었다.


서옹 스님은 열반에 들기 사흘 전 “이제 가야겠다”라고 예고한 후, 이런 열반송을 남겼다. ‘운문에 해는 긴데 이르는 사람 없고(雲門日永無人至), 아직 남은 봄에 꽃은 반쯤 떨어졌네(猶有殘春半落花). 한번 백학이 나니 천년 동안 고요하고(一飛白鶴千年寂), 솔솔 부는 솔바람 붉은 노을을 보내네(細細松風送紫霞).’

수행하던 자세 그대로 입적

누워서 죽음을 맞지 않고, 평소 수행하던 모습 그대로 열반에 드는 것을 좌탈입망(坐脫立亡)이라고 한다. 앉아서 입적하는 좌탈과 서서 열반에 드는 입망을 합친 말이다. 집착하지 않고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을 보여주는 행위로, 불교의 전통이라기보다는 선불교에서 유래한 것이다. 석가모니는 편안히 누워서 입적했다.

선불교에서 전래한 고승들의 특이한 입적 모습을 모아 보았다.
중국 당나라 때의 선승 도신 스님은 60년 동안 한 번도 눕지 않고 수행하는 장좌불와(長坐不臥)를 계속하다가 그대로 입적했다. 고려 시대 보조국사 지눌은 제자들과 백문백답을 마친 후 법상에서 내려와 앉은 자세로 열반에 들었다. 근대 이후에도 한암·만암·효봉·우화·경산·경봉·성철·기산 스님이 좌탈입망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그런가 하면 선불교의 3대 조사로 유명한 중국의 승찬 선사는 임종이 임박하자 창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뜰을 거닐다가 나뭇가지를 잡고 선 채 대적정에 들었다. 수년 전 범어사 덕상 스님은 자신이 없어지면 찾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자취를 감추었다. 노스님의 시신은 3개월 후 근처 산속 바위 위에서 발견되었다.

당나라 때 고승 등은봉 화상은 물구나무선 자세로 입적했다. 제자들과 나눈 대화다.
“앉아서 가는 것이야 신통할 것이 없고, 서서 간다면 신기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습니다만 없던 일은 아닙니다. 승찬 대사께서 선 채 대적정에 드셨지 않습니까.”
“그럼 거꾸로 서서 갔다는 사람은 있는가?”
“그런 말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나는 거꾸로 서서 가야겠다.”
등은봉 화상은 말을 끝맺자마자 두 팔을 땅에 짚고 물구나무서서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죽음에 어떤 의미나 신비감을 부여하려는 온갖 시도를 한 방에 날려버리는 통쾌함과 천진함이 담겨 있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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