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현장] ‘왕따 없는 교실’ 서당이 부활한다
  • 朴晟濬·金恩男 기자 ()
  • 승인 1999.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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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 최근 들어 부쩍 증가…인성 교육과 1 대 1 교육 장점
전남 광주의 조선대는 최근 인문과학대 강의실을 개조해 온돌방으로 꾸몄다. 책걸상을 들어내고 구들을 깐 뒤 앉은뱅이식 서탁을 30여 개 들여놓은 것이다. 이 대학이 올 여름 처음 시도하는 ‘서당 특강’을 위해서이다. 방학 기간(6월28일~8월27일) 내내 계속될 특강은 이 대학이 훈장과 학생 사이에 1 대 1로 수업이 가능한 서당 교육의 장점을 강의식 수업에 접목하기 위해 기획했다. 조선대는 이를 위해 인문과학대 부설 고전연구원도 설립했다. 이 대학은 또 올해 초급 한문·통감절요(通監節要) 등 네 과목을 개설했는데, 7월 말부터는 초·중·고 학생을 위한 서당도 따로 열 예정이다.

경기도 양평군 벽계마을. 조선조의 명신 화서 이항로를 배출한 이 고장에는 최근 몇년새 초등학교 아이들의 ‘글 외는 소리’가 되살아나고 있다. 95년 이 마을 한 민가에 ‘벽계 서당’이라는 간판이 내걸리면서부터 4년째 되풀이되고 있는 광경이다.

서당을 세우고 스스로 훈장 노릇을 하는 사람은 이 고장 출신으로 어렸을 적부터 마을 어른들에게 한학을 수학했고, 다 자라서는 한문 연수 기관인 민족문화추진회에서 4년간 전문 과정을 밟은 장석현씨이다. 장씨는 “처음부터 서당을 하려는 뜻은 없었다. 부친에게서 글을 배우던 학생들이 있었는데, 학부형들이 ‘애들한테 좋은 것 같다’면서 정식으로 운영하자고 요청해 하던 일을 접고 서당 문을 열게 됐다”라고 설명한다.

벽계 서당은 평소에는 주말에 한 번씩 마을 아이들을 가르친다. 또 방학이면 외부인에게 서당을 개방한다. 올해로 8학기째 접어든 이번 방학 때에는 소문을 들은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각처에서 몰려올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서당을 운영하는 데 장씨가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아이들에 대한 인성 교육이다. 장씨 말에 따르면, 학부형들도 바로 이 점을 높이 사 서당에 자녀들을 보낸다. 장씨는 “말을 안 듣거나 잘못을 저지르면 반드시 야단을 치고, 때로는 회초리를 대기도 한다. 학부형 중에는 회초리를 댔다고 중도에 아이를 데려가는 사람도 있지만, ‘서당을 갔다온 뒤 아이 행동이 달라졌다’며 고마움을 전하는 사람도 있다”라고 소개한다.
윤리 교육·지식 교육 함께 이루어져

근대화의 물결에 떠밀려 명맥이 끊기다시피 했던 서당에 최근 들어 부쩍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대 교육 제도의 한계에 부닥친 교육학자들, ‘나 아니면 너’라는 식의 각박한 경쟁 부추기기에 신물이 난 학부모들, 좀더 효율적인 교수법을 찾고자 하는 대학 등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의 면면은 다양하다. 단 이들은 서당에 대해 공통된 생각을 갖고 있다. 한때 ‘용도 폐기’ 대상이었던 서당식 교육을 ‘되살려야 할 우리 전통’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위해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

서당식 교육이 주목되는 주된 이유는 이 제도가 우선 ‘1 대 1 교육’으로 진행되어 스승과 제자의 상호 인격 교류가 가능하고, 능력에 따른 지도를 할 수 있는 등 제도 교육에서 드러난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전통적으로 서당이 ‘교학상장(敎學相長:가르치고 배움이 서로 돕는다는 뜻)’ 원리를 기본으로 하여 운영되기 때문이다.

서당 특강을 기획한 최진규 교수(조선대·역사철학부)는 “획일적인 주입식 교육으로 흐르기 쉬운 강의식 교육과 달리 서당 교육에서는 학생 개개인의 수준과 관심사에 따라 차별 교육이 가능하다. 바로 이 점이 서당식 교육 도입을 구체적으로 모색하게 된 계기가 됐다”라고 말한다.

흔히 서당의 교육 과정은 선생이 학생을 일방적으로 지도하는 철저한 주입식 교육이라고 오해되어 왔다. 그러나 실제로 서당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전통 서당에서 선생은 가장 기본적인 것만 가르치고, 나머지는 학생이 스스로 깨닫게 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고 강조한다.

특히 재래 서당에서 중요한 대목은 지식 교육과 윤리 교육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한데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정후수 교수(한성대·국문학)는 “원칙을 지키는 데 선생과 학생이 따로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예컨대 선생이 매를 때리겠다고 약속하면, 그 약속은 예외 없이 지켜졌다. 이게 바로 ‘가르치는 사람의 철학’이다. 옛날의 서당은 단순히 지식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사는 법(윤리)을 가르치는 것을 가장 중시했다”라고 말한다.

서원과 함께 개항 전까지 대표적인 민간 교육기관이었던 서당의 기원은 멀리 고려 때까지로 거슬러올라간다. 고려에 사신으로 왔던 송나라 관리의 기록인 〈고려도경〉에 이미 서당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기록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서당이라는 이름이 정식으로 등장한 때는 조선조 성종 때부터다. 이후 서당은 일본의 식민 통치가 끝날 때까지 수백 년에 걸쳐 이어져 오면서 민간에서 당당하게 초등 교육 기능을 수행해 왔다.

서당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것은 의무 교육을 중심으로 한 근대 교육 체제가 본격화하기 시작한 이후다. 현재까지 원래의 형태를 잃지 않고 명맥을 잇고 있는 서당으로는 전남 남원의 남원서당(86쪽 딸린 기사 참조)·충남 부여의 곡부서당이 꼽힌다.

반면 최근 개설되고 있는 서당은 전통 서당의 장점을 본떠 현대에 맞게 운영 방식이나 강습 내용을 수정한 ‘현대식 서당’이다. 서당을 수용하는 데 가장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곳은 대학이다. 연세대 한문방·서울대 자하서당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들 대학이 세운 서당은 사회 교육 차원에서 운영되고 있다. 최근 서당을 운영하기 위해 고전연구원이라는 별도 기관까지 세운 조선대는 색다른 경우다. 이 대학은 고전연구원을 장차 특수 대학원으로 승격시켜 한학 부흥의 산실로 만들겠다는 의욕적인 계획을 세웠다.
또 하나의 과외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어

이에 비해 소집단이나 개인 차원에서도 서당 부활이 활발하게 모색되고 있다. 강화도의 ‘마리 서당’은 지난 3월 전통 문화의 미덕을 되살리고 ‘대안 교육’의 가능성도 실험할 겸 교육학 전공자들이 뜻을 모아 문을 열었다.

서당 훈장은 고려대 박사 과정에 다니며 ‘교육 사상’을 전공하고 있는 신창호씨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강화도로 향하는 신씨는 “교육학 전공자들이 모여 토론하는 ‘교육 사랑방’(성공회대 사회교육원 운영) 모임에 참여했다가 의견이 모아져 서당을 열게 됐다.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아 뭐라고 말하기에는 때 이르지만, 제도 교육의 부정적인 측면을 보완해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라고 말한다.

서울 갈현동의 ‘엄마사랑 공부방’은 학부모들이 서당의 가능성에 눈 떠 자녀 교육에 접목시킨 경우다. 엄마사랑 공부방은 약 4년 전 한동네에 사는 학부모들이 ‘자녀 교육을 남에게 맡길 수 없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엄마사랑 유치원’이 모태가 되었다.

학부모들이 힘을 모아 방을 내고, 돌아가며 교사 노릇을 하는 등 자체적으로 운영해온 엄마사랑 유치원은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함에 따라 공부방으로 이름을 고쳤다. 그러다가 지난해 여름 한 학부모의 제안으로 공부방 안에 1주일에 한 번씩 한자와 예절을 가르치는 서당 프로그램을 도입한 것이다. 이들은 때마침 한 학부모가 한학을 정식으로 공부한 한재훈씨(83쪽 상자 기사 참조)를 소개해 ‘훌륭한 훈장님’을 모시는 문제를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었다.

공부방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주부 김미영씨는 “주로 〈사자소학(四字小學)〉을 가르치고 있다.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아이들이 책상다리를 하고 한 시간 넘게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하는 고역을 참지 못해 몸을 꼬기도 했고, 일기장에다 ‘서당 공부를 그만두게 해달라’는 글귀를 적어놓는 일도 벌어졌다. 그러나 효과도 있었고 보람도 있었다. 예전에 아이들은 아빠가 출근할 때 텔레비전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벌떡 일어나 〈사자소학〉의 해당 구절을 외우며 꾸벅 인사를 한다”라고 소개한다.

현대식 서당의 가장 큰 특징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예외 없이 주마다 한 번씩, 또는 방학을 이용한 특강 형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이는 현대식 서당의 가능성인 동시에 한계로 지적되기도 한다. 재래의 서당 교육은 궁극적으로 학생이 서당에서 공부와 생활을 함께 하는 형식이어서 이른바 ‘종합 교육’이 가능하지만 현대의 서당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강화도 마리 서당 훈장 신창호씨는 “서당 교육이 효과를 보려면 학생이 최소한 1주일에 3일 이상 지속적으로 서당에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재 운영되는 서당의 대부분은 방학을 이용하거나 과외의 한 방편으로 운영된다. 서당 다니기가 자칫 또 하나의 ‘특별 활동’으로 전락할 소지도 없지 않다”라고 고민을 털어놓는다.

음악·목공 가르치는 ‘생활 학교’로 변화 모색

서당에서 가르쳐야 할(또는 강조해야 할) 구체적인 교육 내용도 논란거리다. 현대식 서당의 교재로는 〈사자소학〉 〈동몽선습〉 〈명심보감〉 〈천자문〉이 꼽히는데, 이 중에서 특히 〈사자소학〉이 널리 쓰인다. 문제는 이들 교재에 ‘현실’과 맞지 않는 그야말로 ‘고리타분한’ 규범들이 담겨 있어 다루는 데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벽계 서당 장석현 훈장은 “이들 교재는 대개 가려서 본받을 내용이 있지만 책 자체가 더러 전근대적인 질서 체계와, 현실에 맞지 않는 예절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아예 사실에 걸맞지 않는 내용이 기록된 경우도 있다”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서당의 창조적 변용을 위해서는 ‘좋은 것을 취하고, 나쁜 것은 버리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당에서 한문을 주로 가르치되, 미술·음악 또는 목공 따위 실용 과목을 함께 가르쳐 일종의 ‘생활 학교’로 운영하자는 제안도 바로 이같은 배경에서 나왔다.

서당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는 송순재 교수(감신대·교육학)가 대표적이다. “옛날 공부의 기본 목적은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 등 일상 생활에 기초한 분야를 두루 살피고 연마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현대식 학교 제도로 정비된 공교육은 이같은 일상 교육을 시험 공부의 방편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라고 그는 주장한다. 서당의 복권이 전통 문화 유산을 진정으로 계승하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과거 재현’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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