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산울림의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1999.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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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만에 재공연하는 극단 산울림의 <엄마는…>
모든 고전은 당대의 문제작이지만, 항상 그 역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화제작이 가는 길은 두 갈래다. 10여 편에 이르는 레퍼토리 작업을 통해 당대의 화제작을 고전 목록에 올려 온 산울림이 8년 만에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1월21일∼3월28일·산울림 소극장)를 다시 공연한다.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는 초연 당시 관객 5만 명을 끌어들인 화제작이다. 하지만 여성에 대한 시선이 다양해진 90년대 말, 이 작품은 어느새 온건해져 버렸다. 극장 풍경도 바뀌었다. 일상을 빼닮은 무대가 더 이상 파격일 수 없게 된 상황에서 낯익은 에피소드가 펼쳐지는 무대는 친숙한 만큼 위험하다.

하지만 연출자 임영웅씨는 재공연하는 미덕을 역설한다. 그는 우선 주체의 변화를 꼽았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하는 재공연은 기술적인 매끈함보다 내용이 얼마나 원숙해졌는가를 살펴야 한다. 배우도 연출자도 인생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으므로 그 느낌이 무대에 배어나올 것이다.” 예를 들어 초연 당시 쉰 살이던 박정자씨는 그 후 어머니를 여의었다. 더 이상 누구의 딸이 될 수 없는 박씨는, 오히려 더 애틋하게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는 엄마의 주검을 앞에 둔 딸 그라시(우현주)의 회고록이다. 그는 타자기를 두드리며 과거의 기억을 자신의 거실로 불러낸다. 자기 일을 가진 딸이 기특하지만 여전히 결혼해서 애 낳는 기쁨을 누리기를 바라는 엄마는, 짝사랑과 다를 바 없는 모녀 관계에 대한 원망도 빠뜨리지 않는다. “나 하나 죽으면 세상이 편해지겠지. 꼭 너 같은 딸을 낳아 봐야 내 마음을 안다.” 딸에게 엄마란 ‘함께 얘기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채소값 올랐다는 것밖에 없는’ 존재이다. 하지만 주검을 옆에 두어서일까, 딸의 회상에는 긴장보다는 따뜻함이 주조를 이룬다. 그는 애틋한 마음으로 엄마를 ‘세월에 마모된 늙은 소녀’라고 부른다.

그곳은 흡사 파리가 아니라 서울 같다. 번역극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은 작가 드니즈 살렘이 유태계이기 때문이다. 유난히 교육열이 높은 것부터 전통에 대한 태도까지 우리 현실과 닮은 점이 많음을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은 극단 산울림 창단 30주년 기념 공연의 첫 주자다. 손 숙의 모노 드라마로 각색된 <위기의 여자>, 윤석화가 주연을 맡았던 장 콕토의 <목소리> 등 산울림 여성 연극의 대표작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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