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스텐리 큐브릭의 작품 세계
  • 魯順同 기자 ()
  • 승인 1999.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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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한 스탠리 큐브릭의 작품 세계/전복적인 주제·표현으로 통념 뒤흔들어
지난 3월8일 날아든 스탠리 큐브릭 감독(1928∼1999)의 부고에는, 세계 영화계가 보내는 추도사가 잔뜩 붙어 있었다. ‘천재는 단 한편의 영화로도 의미가 있다’(장 뤽 고다르) ‘그는 영화의 경계를 넓혔다. 모두가 그를 흉내낼 때 그는 아무도 모방하지 않았다’(스티븐 스필버그).

큐브릭 감독 작품 가운데 정식으로 국내에 소개된 것은 고작 네 편(비디오 출시는 세 편)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국내 영화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 시네마테크의 단골 레퍼토리였다. 그래서일까? 한국 관객들의 추도사는 판에 박힌 부고 기사보다 훨씬 정확하고 진솔하다. ‘항상 전복적이었던 영화 군주, 오만하게 느껴지는 도도함까지 좋아했다’‘항상 찬성하지는 않았지만 늘 감탄했다’.

SF·시대물·전쟁 등 모든 영화 장르 섭렵

스탠리 큐브릭 감독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힘들다. 어떤 작품을 보았는가에 따라 그에 대한 인상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공포물(<샤이닝>), 블랙 코미디(<닥터 스트레인지 러브>), 스펙터클 영화(<스파르타쿠스>), 공상 과학(<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대물(<배리 린든>), 전쟁 영화(<영광의 길> <풀 메탈 자켓>) 등 모든 영화 장르를 섭렵하겠다는 듯 종횡 무진했기 때문이다.28년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62년 영국으로 이주한 뒤 사망할 때까지 줄곧 런던을 터전으로 삼았다. 그가 할리우드를 버리고 런던으로 떠난 이유는 단 하나, 파괴적인 경쟁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스파르타쿠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등으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그는, ‘부패보다 불안 때문에 더욱 문제’인 할리우드를 등졌다.

그의 ‘공장’은 영국이었다. 하지만 돈줄은 미국의 메이저 영화사였다. 메이저에 속하지 않고 활동하는 감독을 인디(독립) 감독이라고 하는데, 그는 메이저로부터 돈을 받되 무제한적인 재량을 부여받았다는 뜻에서 인디 감독이었다.

일부에서는 그가 골 빈 졸부들로부터 돈을 긁어내는 재주를 가졌다, 혹은 값비싼 예술 영화를 만든다고 비아냥대지만, 사정을 들여다보면 돈을 댄 영화사는 결코 바보가 아니었다. 작품의 도발성만큼 흥행 실적도 좋았기 때문이다. 그의 장편 영화 가운데 <배리 린든>을 빼고는 모두 흥행에 성공했고, 대중이나 평자들의 만족도도 높았다(그는 아카데미 영화제에 여러 차레 노미네이트되었지만, 상을 준 것은 주로 뉴욕비평가협회 등 평단이었다. 그의 오스카 트로피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특수 효과로 받은 것이 유일하다).

그의 초상은 복잡하다. 위트가 넘치는 지식인, 스타일리스트, 수완이 뛰어난 사업가, 고집 불통의 은둔자…. 설혹 문명 고발자로서의 큐브릭의 면모를 들여다보려 해도 고뇌하는 지식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시대가 ‘웃기는 짜장면’이라면 대응하는 방식도 ‘웃기는 짬뽕’쯤은 되어야 한다는 전략을 택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내가 어떻게 근심을 멈추고 폭탄을 사랑하게 되었나>이다. 우발적인 핵전쟁이라는 상황을 놓고 긴박한 스릴러 영화로 기획된 이 작품은, 큐브릭의 손에 넘어가는 순간 희대의 블랙 코미디가 되었다. 매카시 선풍에 진절머리가 난 그는, 스릴러 소재를 가지고 60년대를 비웃기로 작정했다. 국가의 운명을 정치꾼들에게 맡겨 둘 수 없다며 사명감을 불태우는 장군, 허둥대기만 할 뿐 상황을 해결할 능력이 없는 대통령, 핵폭발을 막을 수 없게 되자 선민을 뽑아 인류를 구원하자고 제안하는 과학자(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이들은 각각 골통 군부와 무력한 진보주의자, 파시스트를 상징한다.

스탠리 큐브릭의 날랜 몸놀림은 <클락 워크 오렌지>에서도 이어진다(이 영화는 영국에서 1년 동안 별탈 없이 상영되다가, 모방 범죄 때문에 간판이 내려져 오늘날까지 상영이 금지되고 있다). 패거리를 끌고 다니면서 강간과 폭행을 일삼던 폭력 소년 알렉스는 교도소에 수감된 뒤 일종의 뇌세척인 루드비코 요법의 실험 대상이 된다. 폭력과 강간 장면을 반복해 틀어 줌으로써 죄의식과 거부 반응을 유도하는 이 프로그램에 의해 교화된 알렉스는 어떤 것에도 저항하지 못하는 무력한 인간이 되고 만다.

이 영화는 ‘폭력적인 권력보다 방종한 자유 의지가 낫다’는 주제를 담았다고 회자되지만, 그가 옹호하려는 어떤 가치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요설이 가득하다.

죽기 직전 <와이드 아이즈 샷> 남겨

이런 점 때문에 큐브릭에게 거부감을 표하는 이들도 있다. “그는 자신이 우월자라고 생각한다. 그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인간성에 대한 믿음을 경멸한다.” 영화 평론가 로빈 우드의 혹평은 큐브릭의 세계관에 관한 한 어느 정도 진실을 담고 있다. 로빈 우드는 “증오와 경멸로 만들어진 영화는 가증스럽다. <클락 워크 오렌지>는 내가 본 영화 가운데 가장 추악하다”라고 말한다. 로빈 우드는 큐브릭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성실하게 밀고 나간 올곧은 작가라기보다는 충격적인 설정과 색다른 스타일로 대중을 홀리는 선동가’라는 혐의를 둔다.

하지만 이는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소수 의견이다. 영화 평론가 김익상은 그를 ‘사람들의 잠재 의식을 흔드는 감독’이라고 평했다. 이게 뭔가 싶을 정도로 당혹감을 안겨 주지만, 대중의 통념을 뒤흔든다는 점에서 위대한 감독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큐브릭의 우화는 현실보다 더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80년대 말, 절대 권력의 폐해에 치를 떨던 한 지식인은 칼럼에서 <클락 워크 오렌지>를 인용하며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워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와 <풀 메탈 자켓>은 냉전의 최전방에 서 있는 한국인들에게 더욱 각별한 메시지를 던져 주었다.

그는 비판적인 메시지뿐 아니라 영화 언어를 다루는 데도 탁월한 재주를 보였다. 그 가운데서도 음악을 끌어들이는 방식은 가히 독보적이었다.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과 <경기병 서곡>,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등은 그의 영화 속에 들어와 충돌을 일으키곤 한다.

가장 흥미로운 사례가 흔히 SF 3부작으로 불리는 <클락 워크 오렌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이다. 두 여자와 혼교하는 장면에 속도감을 더해주는 <경기병 서곡>, 사랑의 환희를 노래하는 곡인 <싱잉 인 더 레인>을 부르며 태연하게 강간을 일삼는 알렉스의 모습은 의외의 소격 효과를 불러일으킨다(<클락 워크 오렌지>).

핵폭탄이 터진 뒤 흘러나오는 올드 팝 <우리 다시 만나리>도 명물이다. 미국의 평자들은 2차 세계대전 때 유행했던 팝송을, 결코 내일을 기약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그 노래를 흘려보낸 재치에 무릎을 쳤다(<닥터 스트레인지러브>). 도구를 발견한 원숭이의 환희를 그린 장면에서 울려 퍼지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위의 사례에 비하면 전통적이다(<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그는 자신에 대한 신화를 비웃음으로써 오히려 신화를 굳혔다. 사람들은 그를 괴팍한 은둔자이고, 한 장면을 백번씩 촬영하는 미치광이이며, 자동차를 시속 50㎞ 이상 몰지 못하게 하는 신경과민증 환자로 묘사해 왔다.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는 그는 87년 대중문화 잡지 <롤링 스톤스>와의 인터뷰에서 속마음을 비쳤다. 그의 대답은 이렇다. “대사를 외우지 못하는 배우가 있다면 30번쯤 촬영하게 된다. 그는 집에 가서 내가 미치광이라고 투덜댈 거고, 어느새 30번이 백번으로 둔갑한다. 나는 자동차를 직접, 그것도 130㎞ 이상으로 몬다.”

죽기 닷새 전에 11년 만의 신작 <와이드 아이즈 샷>을 시사한 그는, 이번에도 예고편을 직접 편집해 보냈다(그의 부고를 들은 직후 예고편을 받아본 제작사 워너 브러더스는 그 테이프를 지난 9일 처음 공개했다). 너무 긴 촬영 기간 탓에‘네버 엔딩 스토리’로 불리던 이 작품은, 이로써 극적이면서도 완벽한 유작이 되었다. 톰 크루즈 부부가 출연한 이 심리 스릴러는 미국에서 7월16일 개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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