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강홍구 개인전<위치.속물.가짜>
  • 成宇濟 기자 ()
  • 승인 1999.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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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성 사진·드로잉으로 인간의 비극성 표현
강홍구씨(43)의 그림은 슬픔투성이다. 그는 그것을 ‘냉소’라고 주장하지만, 그의 작품은 냉소를 넘어 그 안에 깔린 슬픔을 드러내고야 만다. 보는 이들은 재미있고 쉬운 그의 작품에 편안하게 다가가지만, 거기서 느끼게 되는 것은 냉소와 절망을 넘어선 슬픔이다.

7년 만에 개인전(4월28일∼5월11일 금호미술관·02-720-5114)을 여는 강홍구씨의 전시장에는 볼거리와 읽을거리가 많다. 전시회 제목은 <위치·속물·가짜>. 컴퓨터를 이용한 디지털 합성 사진과 드로잉 작업으로 <나는 누구인가> <도망자> <행복한 우리집> <전쟁 공포> <해수욕장> <책> 따위 연작을 만들어냈다.

여러 갈래 이야기를 꿰는 첫 번째 주제어는 세상에 대한 ‘공포’. 사진을 합성해 제작한 <도망자> 연작의 등장 인물은 필사적으로 도망을 친다. 그를 도망가게 하는 것은, 화면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죽음과 전쟁, 터미네이터로 대표되는 미국산 대중 문화 들이다. 도망자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도망치지만 성공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래서 슬퍼 보인다.

두 번째로 읽히는 주제어는, 욕망과 그것에 대한 신랄한 야유이다. <나는 누구인가> 연작은 사진을 합성해 현실 속 인물인 작가 자신의 얼굴과 허구 속 인물인 대중 스타를 결합했다.

작가에 따르면 ‘스타가 되고 싶다’ ‘유명해지고 싶다’는 대중의 욕망을 가장 ‘천박한 방식’으로 드러내는 연작이다.

그의 작품에서는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폭력적인 지배욕과 소유욕으로 가득한 가족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이 그려지고, 무력한 일상성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모습도 보인다. 바캉스 같은 놀이 문화를 통해 삶의 끔찍한 일상성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지만, 노는 것마저도 강박관념을 지닌 채 강제적으로 해야 하는 현실이 <해수욕장> 시리즈에서 보인다.

“이번 전시회에 담은 핵심적인 메시지는 인간에 대한 야유이다. 그렇게 잘난 척들 하지 말고 자기 한계를 좀 알았으면 하는 것이다”라고 작가는 말했다.

그는 <도망자>와 <나는 누구인가> 연작에 자기 얼굴을 집어넣었다. 자기 얼굴을 직접 넣어 희화화해야 설득력이 생긴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보는 이로 하여금 좀더 쉽고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게끔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같은 욕망이 작가만의 것이 아니라 보는 이들의 욕망이라는 사실까지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유인 장치인 것이다.

강씨의 작품은, 내용이 선명하고 단순해서 겉으로는 쉽고 재미있게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냉소와 야유를 넘어 절망과 슬픔이 두텁게 깔려 있다. 그의 개인전은 수원(5월27∼6월5일 갤러리그림시·0331-251-7804) 전시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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