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현상] 젊은 만화광이 늘고 있다
  • 蘇成玟 기자 ()
  • 승인 1999.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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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중심 동호회 수천 개… 만화가 지망생 급증
만화 마니아 김지현양(23·경희대학교 영어교육과 4년). 지긋지긋한 대학 입시를 치른 뒤부터 그의 인생은 ‘만화 세상’이었다. 한창 멋 부릴 나이에도 그는 용돈의 대부분을 만화책 사는 데 쓴다. 만화 사는 돈은 한 달 평균 20만∼30만 원. 한 번은 30만원짜리 핸드백을 자랑하던 친구가 그에게 충고했다. ‘뭣 때문에 만화책을 비싸게 돈 주고 사냐. 만화는 빌려서 보고 너도 멋 좀 내라.’

그 친구가, 끼니를 걸러 가며 국내외 만화를 탐독하고 밤을 지새우며 만화를 그리는 김양의 열정을 이해하기는 힘들 것이다. ‘만화는 제8의 예술이 아니라, 8기(技)를 갖추어야 할 예술’이라고 주장하는 김양. 그는 고등학생 시절에 물리 과목을 끔찍히 싫어했지만, 지금은 오로지 SF 만화를 그리기 위해 앨버트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븐 호킹의 물리학 저서까지 독파한다. 또 사학과 학생보다 더 많이 역사 책을 읽는다고 자부한다. 그가 그처럼 열심인 이유는, 만화가 작가의 역량을 ‘알몸’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중·고교생도 만화 클럽 조직

김양의 ‘만화 동지’ 박미현양(22·연세대 건축공학과 4년)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직업 만화가를 꿈꾼다. 2년 전 자신의 포부를 맨 처음 밝혔을 때보다는 많이 누그러졌지만, 여전히 그의 부모는 걱정이 태산이다. 박양은 대학 공부를 마친 뒤 건축사 자격증을 따는 것을 조건으로 겨우 만화가가 되는 것을 승낙 받았다. 부모들이 생각하기에는 만화가의 미래란 불투명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김양과 박양 두 사람은 97년 PC통신을 통해 처음 만났다. 만화에 대한 열정으로 의기 투합한 두 사람은 나머지 동지들을 규합해 만화 동호회 나비(NABI)를 결성했다. 현재 회원은 모두 9명. 아마추어 만화가인 이들은 평소 만화에 대한 정보와 관심사를 주고받다가, 아카(ACA)가 주최하는 ‘만화 축제’가 다가오면 그에 대비한 활동을 벌인다(77쪽 상자 기사 참조).

90년대 들어 PC통신이 붐을 이루면서 아마추어 만화가들이 클럽을 결성하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대학생뿐만 아니라 중·고교생들까지 만화 클럽을 조직하는데, 수천 개에 달할 것으로 추정될 뿐 정확한 수는 집계되지 않고 있다. 다만 ‘아카’의 예로 보았을 때, 전체 클럽의 70% 이상은 대학생이 주축이 된 일반인 모임이다.

연세대 사회과학 계열 1학년 이진영양은 전남외국어고 시절부터 자신이 직접 만화 동아리를 만들었다. 만화 관련 산업이 유망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진 덕에 학교 선생님들도 만화 동아리 활동을 별로 제약하지 않았다. 이양은 “부모님도 내 꿈에 반대하지 않았다. 만화가가 되지 못하더라도 반드시 만화와 관련된 직업에 종사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만화 동아리부터 가입했다.

대학생과 만화. 시나 소설과 달리 만화는 저급한 대중 예술로 취급되었지만 90년대 들어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영화와 더불어 만화가 대학가의 새로운 중심 문화로 자리매김되고 있는 것이다. 90년대 대학생들은 어린 시절부터 컬러 텔레비전과 전자 오락을 접하며 자라온 ‘영상 세대’이다.

특히 90년대 중반 이후 대학에 들어간 젊은이들은 중·고교 시절에 비록 해적판이지만 〈드래곤 볼〉 〈슬램 덩크〉 같은 일본 출판 만화의 세례를 받으며 자랐다. 그만큼 개인의 상상력을 중시하는 상업 만화에 익숙하다.

대학 동아리, 공동 작업 개인 창작 변화

대학가에 만화 동아리가 생기기 시작한 때는 80년대 후반. 당시 만화 동아리들의 활동은 주로 학생운동에 필요한 ‘걸개 그림’ 같은 시각 선전물 제작에 국한되었다. 군사 독재 치하에서 순수한 개인 창작을 갈망하는 목소리는 나오기 힘들었다. 만화 동아리가 생겼지만 만화에 대한 대학생들의 인식까지 크게 바꾸지는 못했다.

하지만 30여 년간 지속된 군사 정권이 종막을 고하자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다. 87년에 발족한 연세대 만화 동아리 ‘만화 사랑’의 원수현군(94학번·재료공학부 3년)에 따르면, 그가 입학하던 무렵부터 동아리에는 활동 방향을 놓고 내부 갈등이 싹트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만화 창작을 중시하는 신입생들이, 여전히 걸개 그림 같은 공동 작업을 중시하는 선배들에게 반기를 든 것이다. 후배들은 ‘이제 만화 자체에 충실하자’는 주장을 폈다.

다음은 원군의 회고. “동아리가 생긴 지 7년이 지난 94년에 입학했지만 그 해에 겨우 두 번째 작품집이 나왔다. 당시 작품집에 신입생이 그린 〈라이온 킹〉이라는 단편 만화가 있었다. 형식은 미국 애니메이션을 패러디한 것이지만 내용은 선배들과 신입생들의 갈등을 극화한 것이었다.”

모든 대학 만화 동아리들이 개인 위주의 창작 활동으로 ‘체질’을 바꾸지는 않았다. 그림터(서울대)·시만화(명지대) 등 일부 동아리들은 예전보다 강도가 약해졌지만 사회 비판적인 ‘집단 성향’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학 만화 동아리들이 서서히 개인 중심의 창작 활동으로 옮겨가는 추세다.만화학과 25개… 우후죽순처럼 늘어나

만화 마니아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본 작가의 신간이 나오는 날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날아가기도 한다. 만화 축제에 참가하려고, 심지어 자기가 존경하는 작가의 사인회에 참석하려고 바다를 건너는 경우도 있다. 이들이 생각하는 일본과 일본 문화는 과거 세대의 그것과 크게 다르다. 지난해 일본 문화 개방을 앞두고 여러 언론 기관들이 여론조사를 했을 때, 20대가 그 윗세대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이 찬성을 표시한 것도 그같은 세태에 크게 기인한다.

하지만 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며 폭발적으로 분출되는 만화 열기에 ‘거품’이 끼었다고 우려하는 시각도 많다. 대표적인 예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는 대학의 만화 관련 학과들. 올해에도 두 곳이 추가되어 전국에 모두 25개의 만화학과가 생겼다. 그러나 아직은 학문 체계가 엉성하고 교수진도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졸업한 뒤 취업할 시장이 한정된 상황에서, 당장 인기가 있다고 무조건 학과부터 설치하는 대학 행정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게다가 내년에는 만화 고등학교까지 생길 예정이다. 경기도 하남시의 한국애니메이션 고등학교는 이미 설립 인가를 받았고 교명까지 확정했다. 만화 산업에 관심을 보여 온 경기도 부천시나 강원도 춘천시 등에서도 만화 고등학교를 세울 움직임을 보인다.

만화가 곧 교과서인 시대

‘우리 만화 발전을 위한 연대 모임’의 황경택 간사는 그같은 현상을 ‘과열’로 해석하며 “우리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시장이 큰 일본도 만화학과를 설치한 대학이 두 곳밖에 없고, 전문인 양성은 대개 학원에서 이루어진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박세형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영상만화과)는 그같은 비판에 어느 정도 동의하면서도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즉 만화 관련 산업을 기존 출판 만화나 애니메이션에만 한정하면 실업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겠지만, 게임이나 멀티 미디어 산업 등 진출 분야를 넓혀서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이야기다.

만화가 지망생을 향해 박교수는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만화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는 나라 같으면 그림 하나만 잘 그려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미래 지향적인 만화가는, 그림과 이야기 구성에 능할 뿐 아니라 컴퓨터까지 잘 다루는 ‘멀티 미디어 프로듀서’ 개념의 작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서랍 안에 감추어 놓고 몰래 만화를 보던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 만화를 교과서 삼아 학문을 연마하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하지만 최고의 명망을 지닌 만화가들이 음란물 제작자로 낙인 찍히는 현실이 그렇듯, 젊은 열정들이 꽃피울 수 있는 만화 마당은 비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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