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인류학]필름으로 쓴 논문 <카메라의…>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1999.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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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족지영화제 추천상 받은 이기중씨 <카메라의…>
민족지 영화는 명칭은 낯설지 않지만,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결혼 사진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결혼이 갖는 의미를 고찰한 <카메라의 시선으로 본 결혼:한국의 결혼 사진에 관한 3부작>은, 영상 인류학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는 자료가 될 만하다.

이 영화는 영상 인류학을 전공한 이기중씨(38)가 찍은 것으로 미국인류학회가 주관하는 민족지 영화제에서 우수상에 해당하는 추천상(Award of commentation)을 받았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결혼 사진들을 모아 분석한 이 47분짜리 영화는 한국인의 의식 구조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다.

이기중씨는, 영상 보고서의 첫 소재로 결혼 사진을 택한 것은 자연스러웠다고 말한다. 그 사회의 가치관을 보여 주자면, 통과 의례를 들여다보는 것만큼 효율적인 것이 없다. 또 결혼은 여러 통과 의례 가운데 사진의 비중이 가장 높다.

<카메라의 시선으로 본 결혼>에 따르면, 결혼 사진은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야외 촬영, 결혼식, 신혼 여행. 독특한 것은 각 단계마다 사진의 주안점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우선 야외 촬영은, 두 사람의 환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데 주력한다. 신혼 부부를 왕자와 공주로 그려내는 것이다. 야외 촬영이 기념 사진의 의미를 넘어선 지는 오래되었다. 이씨는 야외 찰영이 상업화할수록, 사회의 욕망에 영합하는 이미지가 극대화한다고 분석한다. 카메라 기법도 환상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표적인 예가 유럽식 성채를 배경으로(롯데월드가 단골 촬영장이다) ‘꿈의 궁전’ 이미지를 빚어내는 것이다.

이씨는 야외 촬영이 주로 여성이 원해서 이루어지는데도, 사진에 드러난 이미지가 지극히 남성 주체적이라는 점에 관심을 갖는다. 남자는 신부를 번쩍 들어올리거나 달려오고, 신부는 그 품에 안겨 다소곳이 눈을 내리깔고 있다. 촬영 현장을 들여다보면, 사진사가 그런 세팅을 적극 주문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통과 의례는 권력 관계를 반영한다”

야외 촬영이 꿈의 궁전을 창조한다면, 결혼식 사진은 사회적 관계를 드러내는 데 역점을 둔다. 따라서 둘만의 로맨틱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오히려 금기시된다. 렌즈나 조명 또한 모인 사람들을 낱낱이 정확하게 찍어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결혼식은 가족 간의 권력 관계를 읽는 데도 유용한 계기가 된다. 이씨가 보기에 한국 여성의 권력은 결혼할 때 최하점이었다가 자녀를 결혼시킬 때 최고조에 이른다. 특히 아들을 둔 여성의 권한은 더욱 막강해진다. 이는 결혼식 후 치러지는 폐백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폐백은, 결혼이란 여자가 시가(媤家)에 들어가는 것임을 못박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간혹 양가 부모에게 모두 폐백을 드리는 파격이 나타나고 있지만, 아직은 흔치 않다. 이씨는 작품을 찍던 중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던 관습을 발견했다. 신부가 시누이에게 엿을 주더라는 것이다. 막강한 실력자인 시누이에게 ‘쓴소리를 하지 말라’는 애교 섞인 입막음의 의미일 것이라고 이씨는 해석했다. 3부에서는 신혼 여행 사진을 분석했다. 신혼 여행과 관광산업과의 관계를 살필 뿐 아니라 한국의 집단주의 문화도 함께 짚어냈다. 현장은 제주도다. 길일이 끼어 있는 경우에는 8천 쌍 정도가 몰려든다는 곳. 여행사가 정해준 대로 정해진 코스, 정해진 장소를 돌다 보니 사진도 서로 닮은꼴이다. 갈대밭·하르방·귤밭. 사진사는 장독대에 신부를 앉혀 놓고 찍은 다음, 잡지 표지처럼 사진을 꾸며 주기도 한다.

이씨의 작품은 시사 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밋밋하다. 다른 문화에 관심을 가진 외국의 연구자가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기초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민족지 영화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멋진 화면을 좇거나, 특정 주제를 역설해서는 민족지 영화로서 함량 미달이라는 것이 이씨의 말이다. 관습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단서는 해설이 아니라, 사람들의 대화에서 드러나야 한다. 현장의 사진사로부터 ‘광각 렌즈는, 배경을 왜곡해 비일상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에 야외 촬영에서 많이 쓴다’는 대답을 얻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는, 훈련된 인류학자라면 주제 의식을 앞세우지 않고도 사회의 관습을 끄집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예로 자신이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결혼 의례에서 남성 중심의 가부장 문화를 읽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통과 의례는 정확하게 권력 관계를 반영한다. 의례에서는 양보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라고 그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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