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산울림·심수봉, 화려한 귀환
  • 成宇濟 기자 ()
  • 승인 1997.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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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심수봉, 음반 제작·발표 ‘힘찬 행진’…록·트롯으로 ‘성인 가요의 봄’ 선도
70년대 말의 명곡 <아니 벌써>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등과 신곡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 <부탁>이 연주되자 20, 30대로 채워진 공연장은 10대들의 공간 못지 않게 열기를 뿜었다. 초대 가수 강산에가 촛불을 켠 케이크를 들고 무대로 걸어 나왔다. 공연장 조명이 모두 꺼지자 산울림 3형제(김창완·김창훈·김창익)가 촛불을 껐다. 97년 3월13일, 그룹 산울림은 14년 만에 다시 태어났다.

부활한 산울림이 13집 새 음반을 내고 공식 활동을 선언하는 콘서트(3월13~16일·연강홀)를 연 바로 그 시기에, 가수 심수봉씨도 음반 두 장을 동시에 발표했다. 20년 전이었다면, 록그룹 산울림과 트롯 가수 심수봉씨는 대중음악인이라는 점을 빼고는 공통점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90년대 중반을 넘어선 지금은 여러 부분에서 겹친다. 40대들이‘겁도 없이’새 음반을 제작·발표했는가 하면, 음악 인생을 새로 시작한다고 동시에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90년대 들어 대중 음악 시장이 10대 청소년 중심으로 급속하게 재편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큰 모험이 아닐 수 없다. 서태지와아이들이 등장한 이후 대중 가요 시장은 성인 취향의 옛 가수들이 진입할 꿈조차 꾸기 힘든‘신세대의 왕국’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룹 산울림과 심수봉씨말고도, 최근 들어 성인 취향의 가요계에 봄기운이 조금씩 돌고 있다. 올초 후배들로부터‘헌정 음반’을 받은 신중현씨가 오랜 잠복기를 끝내고 <김삿갓>이라는 새 음반을 곧 발표하고, 4월께 조용필씨가 3년 만에 신작을 내놓는다. 한 시대를 대표했던 ‘ 큰 가수’들이 새로운 음악을 같은 시기에 동시다발로 발표하는 것이다.

심수봉씨가 3년 만에 낸 새 음반은 두 종류이다. <오리지널 골든 베스트>는 <오리지널 골든 애창곡>과 더불어 심씨의 8집 앨범에 해당한다.“얼어붙은 성인 가요 시장을 녹이는 데 일조했으면 하는 심정으로 앨범을 제작했다”라고 심씨는 말했다. 심씨의 <오리지널 골든 베스트>는 대중음악계에서 희귀한 예에 속하는 앨범이다. 히트곡 모음집이지만, 기존 것들과는 판이하다. 심씨의 것은 그 자신이 소장해온‘원본 마스터’의 순수 오리지널 곡들로 구성되어 있다. <무궁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사랑밖에 난 몰라> 등 80년대 초·중반에 발표된 노래들은, 그때 그 소리들로 수록했으며, 녹음 원본을 구하지 못한 <그때 그 사람> 은 재즈풍과 오리지널 버전으로 다시 불렀다.

심씨는 <오리지널 골든 베스트>에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천만원 가까운 손해를 감수하며 녹음을 다시 하기도 했다. 78년 데뷔 이후 자기의 음악 이력을 처음으로 정리하는 음반이기 때문이다.“가수 활동을 제대로 한 기간은 채 2년도 못된다. 79년 6월 <그때 그 사람>이 히트한 다음부터 10·26까지 6개월, 그리고 <비나리>가 히트해 활동을 재개한 지난 한 해가 거의 전부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심씨에게 <오리지널 골든 베스트>는 음악 활동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두번째 데뷔 앨범’이나 다름없다.

심씨가 이번 음반에서 처음 발표한 곡은 러시아 노래이다. 80년대 러시아 대중을 사로잡았던 <백만 송이 장미>에 심씨가 가사를 붙였다. 심씨는 가사와 곡에 담긴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 러시아어를 배울 정도로 이 곡에 정성을 쏟았다.

‘유일한 트롯 아티스트’라는 평을 들으며, 여자 가수로는 보기 드물게 직접 곡을 쓰는 심씨는, 이번 음반에서도 트롯 장르에 으레 따라붙게 마련인 고정 이미지를 떨쳐버렸다. 그는 “93년부터 2년 동안 <트롯 가요 앨범>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한심한 모습을 많이 보았다. 50~60년대 스타일을 그대로 내놓거나, 트롯을 천하고 한심하게 만들어 놓으니‘트롯은 저질’이라는 등식이 생길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산울림·심수봉 “옛 명성에 기대지 않겠다”

산울림의 재등장은, 20년 전 그들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큼이나 뜻밖이다.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한 장을 차지한 산울림은, 해체한 지 14년 만에 공식 활동을 재개함으로써 끊어진 그 역사를 다시 이었다. 13집 음반 <무지개>는, 놀랍게도 산울림의 초기 음악, 곧 20대의 격렬한 에너지로 들끓었던 70년대 후반의 1~3집 음반과 유사한 면모를 보여준다. 드럼을 맡은 김창익씨는 “그때보다 기술적으로 조금 성숙·정돈되었다는 점만 다를 뿐 비트와 빠르기는 예전 못지 않다”라고 말했다.

공식 활동을 선언하는 콘서트의 티켓이 공연 1주일 전에 모두 매진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산울림의 재등장은 그룹 멤버들의 뜻보다는 음악 팬들이 이끌어냈다고 볼 수 있다. 93년 남이섬 공연 때 10년 만에 무대에서 다시 만난 3형제는, 지난해 6월에 열린 한 공연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흘러간 명밴드’로서 무대에 섰던 산울림에게 관객들이 상상도 못할 환호를 보내준 것이다.

컴백을 발표하면서 산울림은 새 음반이 10대를 겨냥했다고 여러 차례 밝혔지만, 그 내용은 자기들과 나이를 함께 먹어온 이들의 이야기임을 금세 알 수 있다. 음반 전체의 기조가‘산울림 세대’들이 공감할 만한 분위기이다.‘물 한잔 건네줘 나 목이 말라/이것 좀 들어줘 너무 힘겨워/음악 좀 줄여줘 너무 시끄러워’(<부탁>) 같은, 40대가 부르는 그 세대의 정서가 들어 있는 것이다.‘내가 왜 여기 있는지 몰라/사는 대로 사는 거지 죽는 대로 죽는 거지’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몰라>)처럼 힘든 세상에 대해 체념하거나,‘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기차 타고 시계로 들어가자/김치로 옷을 지어 입어보자’(<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 같이 답답한 세상을 뒤집어 보는 엉뚱한 상상도 한다.

“우리가 새로운 밴드로 등장하고, 또 록음악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닌 대중의 선택이었다”라고 김창완씨는 말했다. 댄스음악으로 획일화한 대중 음악의 깊고 오랜 병에 대한 반작용으로, 그 대안으로 나올 음악은 록밖에 없다는 것이다. 록은 음악의 한 장르이기도 하지만, 주류 질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는 행동 유형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산울림과 심수봉씨의 공통점은 하나 더 있다. 활동을 새로 시작하면서 예전의 명성에 절대 기대지 않겠다는 승부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김창완씨는, 중견 가수들이 대중의 무관심을 탓하기에 앞서 스스로를 방기해 왔다는 사실을 먼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10대들의 논리에 수동적으로 움직여온 90년대 대중 음악 문화는 지금 단순 획일화·표절 등 큰 상처를 안고 있다. 40대 중견들의 힘찬 행진은 이 때문에 더 중요해 보인다. 숙였던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행진곡’을 발표한 왕년의 스타들. 그동안 대중 음악으로부터 소외되었던 고개 숙인 성인 대중이 이제 그 행진곡에 발을 맞출 때이다.

15년째 월급쟁이 생활을 해오고 있는 드러머 김창익씨는 산울림이 컴백한 의미를 더 분명하게 말했다. “20대 때 민주화운동의 주체였던 30대 중·후반과 40대가 지금 명퇴다 조퇴다 해서 힘이 빠지고 너무 빨리 늙어버렸다.‘동기들아 힘 좀 내자, 우리도 이렇게 내지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산울림 13집의 성격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희망이다. <무지개>를 타이틀곡으로 내세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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