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분석]거대 서울의 ‘숨구멍’ 미아리
  • 이성욱 (문화 비평가) ()
  • 승인 1997.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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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진 표정’ 흔전만전하고 잡종 문화 웅성거리는 땅
미아리! 살아 보았느냐 여부를 떠나 많은 사람에게 익숙한 느낌이 드는 곳일 성싶다. 추측커니와 그 지역이 불러내는 여러 이미지가 뚜렷이 각인되어 있어서가 아닐까. 미아리의 그 여러 이미지는 달리 말해 몇 가지 표상 혹은 그림의 조각들이 이리저리 널려 있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를테면 그림 퍼즐의 표정을 하고 있다. 그러기에 퍼즐 한 조각 한 조각이 서로 요철을 맞추면 미아리 전체의 이미지로 종합된다. 철사줄·텍사스·돈암동 그리고 점(占) 등이 그 퍼즐의 윗면에 그려진 이미지들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런 저런 농담을 하다가 누구도 예측하기 힘든 질문을 받으면 “내가 점쟁이 빤스를 입었냐, 그걸 알면 미아리 가서 앉아 있지 이러고 있겠냐”고. 여기서 미아리는 미래를 예측하는 곳, 사람의 운명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생의 비의를 알고 있는 땅으로 금방 치환된다.

사람들은 또 말한다. 1차에 2차를 거듭하는 차수 변경을 거친 후에 술기운과 색탐이 서로 성공적인 합의에 이르면 “야 우리 미아리 텍사스에 가서 한 고뿌 더 하자”고. 여기서 미아리는 술 마시는 곳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술로 환유되는 욕망의 가판대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조금 세심해질 필요가 있다. 미아리를 단지 매매춘·욕정 등과 연결하는 방식이 그런대로 현실의 반영이기는 하지만 그 외의 것에 유념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것은 미아리를 찾는 사람이 미아리에 대해 가지는 기대치, 바꾸어 말해 미아리의 처지에서 보면 사람들이 모이는 집객 요인에 대해서이다.

매미집 방석집을 기억할 것이다. 이런 표현의 유래가 어찌 되었건 매미집 혹은 방석집은 남자들에게 술과 여자와 노래와 춤을 ‘패키지’로 제공하던 곳이다. 이제 매미집이니 방석집이니 하는 것들은 거의 없어졌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예의 ‘패키지’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룸살롱이나 단란주점은 이전보다 훨씬 화려하고 다양한 기술로 더 많고 세련된 것을 제공한다. 그러나 결코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매미집 혹은 방석집에 깃들어 있던 고유의 분위기, 혹은 아우라(Aura)가 그것이다. 방석·대포·젓가락이 그리운 남자들이 미아리 간다

사람들은 그것을 ‘질펀하게’라는 말로 표현한다. 방바닥에 퍼질러 앉아서 접대부의 엉덩이 아니면 술상을 두드리면서 붓고, 마시고, 부르고, 추고, 부비며, 또 마당 한구석에는 밥통 속에 부어넣은 탁주나 소주 등을 우엑거리며 토해 내는 풍경이 있었다. 신세대 축에 못끼는 남자들에게 이런 난장 같은 자리는 술자리 경험의 원형질 같은 것으로 새겨져 있다. 질펀함이라는 말은 그 원형질의 부분적 재현어인 것이다. 이 질펀함이라는 말에는 ‘인간적’이라는 소박하고 그러나 한편으로 대단히 자의적일 수 있는 기대 정서가 담겨 있다. 이 정서와 난장 같은 술자리가 모이면 특정한 문화가 된다.

세월이 변하고 술자리 풍속이 변하고 음주가무 ‘문화’가 변하면서 매미집·방석집도 하나하나 문을 닫았다. 마치 난전 문화가 사라져 갔듯이 방석집이 상징하던 그 어떤 ‘문화’도 사라져 간 것이다. 하지만 특정 문화의 공간이나 장치가 사라진다고 해서 그 문화의 세례를 받으면서 성장한 자들의 가슴이나 정서 속에 가라앉아 있는 기억의 문화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단란주점이나 룸살롱은 그런 질펀함의 문화를 제공하지 못한다. 그러나 미아리는 그렇지 않다. 아직 남아 있다. 물론 이제 미아리에 피는 야화(夜花) 역시 여느 술집에 있는 아이들처럼 10대가 대다수이지만 형식은 아직 방석집이다. 신세대가 아닌 남자들, 그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술자리의 원형질이 미아리의 집객 요인이 된다고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 문화는 거칠게 요약하면 좌식 문화에서 입식 문화로 변화해 간 과정이다. 입식 술자리 문화가 지배적인 이즈막 방석과 대포와 젓가락이 세모꼴을 이루던 좌식 술자리 문화가 그리운 남자들은 그래서 미아리를 간다.

우리에게 미아리의 역사성은 ‘철사줄로 꽁꽁 묶여­님이 넘던 눈물 고개’로 먼저 다가온다. 다시 말해 미아리 고개의 눈물은 한국전쟁이라는,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큰 상처의 역사로 집약된다. 하지만 미아리는 이후에도 눈물의 얼룩이 만들어낸 지역이다. 미아리에서 우리는 선뜻 깔끔하거나 유쾌한 느낌을 얻지 못한다. 점집과 유곽에 대한 통념이 작용해서만이 아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반복되었던 폭력적 도시 계획이 그런 통념의 거푸집이다. 미아리는 철거민들의 피난지였다. 50년대 말에서 70년대 말까지 도시 미화라는 강력한 ‘멸균 소독’ 정책으로 빈민층은 대책 없이 쫓겨가게 되었는데, 이들이 다시 자리를 잡은 곳이 당시로는 시 외곽에 해당하던 미아리를 비롯해 목동·사당동·봉천동 등이었다. 이처럼 미아리는 철거민의 한많은 눈물이 모여드는 작은 저수지였다.

꼭 그래서만은 아닐 수도 있지만, 이전에는 종로 3가에서 영업하던 점집과 유곽 들도 미아리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런 면은 미아리의 역사성과 강한 유대성을 가진다. 무엇보다 점집과 유곽의 풍경으로 먼저 다가오고 또 철거민들의 재집결지의 역사를 깔고 있다는 점이나, 주택 혹은 상가 등의 형태와는 거리가 먼 지역으로 느껴진다는 점에서 미아리는 일종의 게토(ghetto)의 성격을 지닌다. 게토는 본래 로마 제국 이래 유태인을 격리·수용·관리하던 구역을 이른다. 그 이후 서양 각국에 계속 수많은 게토가 생겨났는데, 이후 서양인들에게 게토는 지저분함·주변부 등등을 표상하는 정신적·물질적 상징어가 되었다. 합리 숭배자들이 미아리를 찾는 까닭은

서울에 대한 21세기 프로그램으로 메가 프로젝트가 구상되고 과학기술과 정보화를 기초로 한 인텔리전스 빌딩군, 현대적인 도시 공학으로 포스트모던한 계획을 꿈꾼다는 거대 도시 서울 한켠에 미아리는 여전히 게토의 자리에 놓여 있는 바, 그것은 오늘도 역설적인 의미에서의 ‘메트로폴리탄 스펙터클’임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

미아리가 흥미로운 지역인 까닭은, 이곳이 우리 사회의 주름진 표정, 이를테면 이중성이 만나면서 만들어 내는 그 주름의 골을 여실히 피력해 주는 지대이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해 미아리를 보면 이 이중성이 보인다는 말이다(여기서 미아리 텍사스가 성에 대한 이중적 태도의 증거물이라는 점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하자).

모든 제도 교육은 근대화의 유사어인 합리성을 생활 신조이자 세계관으로 배우고, 모든 사회 행위 역시 그 합리화의 덕목 앞에 납작 엎드려야 했다. 사유 방식에서도 마찬가지. 하지만 그것은 공식적 영역에서만이다. 내밀한 개인의 시간이 되면 많은 이들이 합리화 바깥으로 무상히 출입한다. 합리성의 부흥사들인 정치인·기업인 들은 더욱 그랬다.

신안(神眼)이 있어 땅 속 수십 길을 훤히 본다는, 또 장개석·일왕(日王)·등소평 등의 묘자리도 자기가 잡아 주었다고 호통치는, 이른바 육관도사라는 어처구니없는 사기꾼에게 일가의 묘자리를 빌러 다녔다는 전직 대통령 혹은 대통령 후보 그리고 재벌 총수의 우습다 못해 처연하기까지 한 행실은 예의 이중성의 압권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자면 이 이중성은 일종의 숨구멍일 수도 있다. 주술과 신학의 왕국을 근대의 합리성 깃발로 정복했던 베버의 강령도 알고 보니 좁디 좁은 것이었다. 그것은 생활 세계의 진실을 충분히 포착하지도 못하거니와 합리성 인식 체계 밖에서 왕성히 운기하고 조화하는 만물과 인간사의 리얼리티 앞에서는 그저 여러 등산로 중 하나였을 뿐이다.

분석하고 종합하는 합리적 과정으로는 계량되지 않는 삶의 비의 앞에서 인간은, 특히 그 합리성에 모든 것을 조회하는 인간일수록 합리성에 소환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 난감할 수밖에 없다. 그 때 예의 이중성은 자연과 인생의 앞면에 대한 해석만을 옥죄는 합리성을 넘어, 그것의 뒷면, 그러나 엄연한 현실임에 분명한 그것에의 지혜를 구해 보는 처소일 수도 있기에 숨구멍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측면이라면 이중성이라기보다는 다면성이라고 해야 옳을 법하기도 하다.

인터뷰하러 만난 점술가 이도병씨의 말은 그래서 여러 모로 생각을 궁글리게 한다. 다른 미아리 점술가처럼 역시 앞을 못보는 이도병씨 앞에 하나의 기업을 일군 ‘사장님’이 찾아 온다. 과학적 사전 기획과 통계 및 치밀한 계산에 입각한 자본 축적이 제대로 돌아가는 듯이 보일 때 그는 생산 합리화·유통 합리화 등의 ‘약발’을 당연하게 믿고 기업의 앞날은 합리화의 뒷배가 받쳐주는 한 훤히 보인다고 확신한다. 어느날 사고가 터지고 부도 징후가 현저해진다. 심리적 추락도는 가속을 탄다. 그래서 앞 못보는 이도병씨 앞에, 그리고 확대하면 평소에는 미신처럼 여기던 우연성의 세계, 즉 주역 점 면전에 조아린다.

인터뷰 자리라 말을 골라서 했을 수도 있지만 이도병씨는 그때 자신은 변호사 혹은 상담가 역할을 한다고 했다. 논리적인 문법으로 그 사장의 미래를 예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주역에 따르면 이럴 수도 있다는 우연적이고 단지 가능성에 국한된 이야기를 해 줌으로써 그에게 희망의, 그러나 불투명한 희망의 한 자락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가 사장의 심리를 추락에서 상승으로 반전시키는지는 몰라도, 그 사장이 합리성 밖의 세계에 대해 한번은 겸손해질 수 있다는 사실에서 그 사람의 안목은 이전보다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 터이다.

물론 자본주의적 합리성의 소대장 격인 그 사장은 주술의 세계에서나마 개인의 발복 혹은 이기를 구하기 위해 점집을 찾았을 것이지만 주역 점의 주술성이나 미신성 여부를 떠나 점술가가 의지하는 주역의 세계가 자신의 평소 세계관과 많이 다르다는 사실, 그리고 점술가에 대한 의지는 곧 주역에 대한 의지라는 사실이 스스로에게 이해된다면, 그것은 동시에 세상 전체에 혹여 깃들어 있을지 모를 비합리적 신령함에 대한 겸허로 이어질 수 있는 여지로 통할 법하다.

주역의 얼개인 음양과 오행은 동양적 시간 철학이자 공간 철학이다. 또한 풍수는 동양적 생태 과학이자 환경론이다. 구미 합리주의에 대한 맹목은 만물에 대한 동양적 철리(哲理)를 폄하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그 폄하의 연장선이 미아리 지역에 대한 불편한 이물감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합리 숭배자들은 오늘도 미아리를 찾는다. 퍼지 이론이든 프랙탈 곡선 이론이든 아니면 카프라이든 나비 효과이든, 그것은 모두 서양 정신사가 봉착한 합리주의 한계에 대한 숨구멍 찾기이다. 그것이 진짜 숨구멍이 될 수 있을는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역사의 거대한 순환이 새로 시작되는 시점에 이루어지는 하나의 중대한 모색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비약일지는 몰라도, 그 거대한 모색의 텍스트를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소박한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이 오늘도 게토에 모여 살아 가고 있는 곳이 미아리이다.

미아리 텍사스에서 하나의 반원을 시작하면 중간쯤에 점술가촌이 중간 마디를 짓는다. 그리고 반원이 끝나는 지점, 달리 말해 점술가촌에서 길을 하나 건너면 이른바 10대들의 해방구라는 돈암동 성신여대 앞이 이어진다. 주술과 전근대의 딱지를 이마에 붙이고 있는 점술가촌, 욕망과 탈근대의 브랜드를 광나게 닦고 있는 돈암동, 그리고 그 위에 음습하게 비켜 숨어 있는 텍사스촌. 미아리는 이처럼 서로 다른 집객 요인과 테마와 시간대가 서로 웅웅거리며 뒤섞여 있는, 서울 특유의 잡종(hybridity) 문화가 대표적으로 번성하는 지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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