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교수를 위한 이색 문화제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4.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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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종교인 등 71명, 송두율 교수 위한 문화제 열어
주인 잃은 베를린 근교 송두율 교수 자택에는 오늘도 한국의 꽃들이 자라고 있다. 접시꽃·나팔꽃, 그리고 수많은 한국의 들꽃. 한국에서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꽃들이, 송두율 교수가 이름을 불러주면서 의미 있는 꽃이 되었다. 남과 북, 동양과 서양을 잇는 ‘경계인’을 자처하는 그에게, 이 꽃들은 독일과 한국을 잇는 ‘경계에 피는 꽃’이다.

2월12일 오후 6시30분 이화여대 언어교육원에서 <경계에 피는 꽃>이라는 이름으로 그를 위한 문화제가 열린다. ‘경계를 넘는 사람들’ 71명이 준비했다. 방송인이라는 경계를 넘어 시민 활동에 나선 개그우먼 김미화씨, 분단 인식을 뛰어넘은 리영희 교수, 종교의 벽을 넘어 한목소리를 내는 진관 스님·함세웅 신부, 1989년 방북해 ‘북한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증언한 소설가 황석영씨 등 ‘경계를 넘는 사람들’이 모여 팔을 걷어붙였다.
공연에서는 순수 예술인과 재야 문예꾼이 한 무대에 올라 문화계의 보이지 않는 경계를 허문다. 소리꾼 임진택의 <오월 광주> 이후 사회성 짙은 창작 판소리가 처음으로 소개된다. 이름처럼 나라를(국) 울릴(명) 소리꾼으로 통하는 명창 이명국씨가 <경계인>이라는 창작 판소리를 선보인다. 이씨는 재야 소리꾼과 거리가 먼 전통 판소리꾼이다. 명창 이명희 선생에게 사사한 그녀는 공연 취지를 듣고 흔쾌히 승낙했다고 한다. “내용이 무거워 판소리 특성인 풍자성을 담기에 어려웠다”라는 이씨는 지난 2개월 동안 이 공연을 밤낮 없이 준비해 왔다.

창작 무용 <경계를 넘는 몸짓>을 선보이는 박호빈씨도 순수 무용가이다. 하지만 그 자신이 경계를 넘어선 삶을 살았다. 현대 무용가이면서도 봉산탈춤을 이수한, 무용계의 경계를 넘어선 춤꾼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부른 노래패 꽃다지와 대학생 노래패 우리나라, 네티즌 사이에 유행한 의 주인공 박성환씨 등도 공연에 나선다.

<경계에 피는 꽃>의 부제는 ‘송두율과 그의 벗들을 주제로 한 변주’다.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처럼, 역사에서 회색분자로 취급된 수많은 경계인을 부활시키기 위한 공연인 것이다. 관람석에 이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된다. 삼팔선을 베고 죽겠다던 백범 김 구, 통일과 민주를 위해 대장정에 나섰던 돌베개 장준하, 음악으로 남북을 이은 윤이상, 평양에 가겠다는 잠꼬대 아닌 잠꼬대를 하다 삼팔선을 넘은 늦봄 문익환 목사 등 ‘텅빈’ 지정석이 정해진다.

공연 말미에 송교수 가족도 무대에 오른다. 부인 정정희씨가 아들 린 반주에 맞추어 <고향의 봄>을 부른다. 이 노래는 송교수의 애창곡이다. 집에서 기르던 나팔꽃·코스모스·분꽃 등에 물을 주면서 송교수가 흥얼거리던 노래라고 한다. 송교수의 독일 자택에서 자라고 있는 한국산 꽃들이, 주인을 잃은 채 다시 ‘이름 없는 몸짓’이 되어가고 있다(공연 문의:02- 777-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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