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김열규 교수 <욕,그 카타르시스의 미학>
  • 李文宰 기자 ()
  • 승인 1997.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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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열규 교수 <욕, 그 카타르시스의 미학>에서 욕 ‘복권’…“욕은 때로 약이다”
욕에 대한 욕을 걷어내고 그 욕이 갖고 있는 다양한 심리적·사회적 기능을 조명한 연구서가 나왔다. 김열규 교수(인제대·국문학)는 최근에 펴낸 <욕, 그 카타르시스의 미학> (사계절)에서 그동안 말의 질병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숱한 욕을 먹어왔던 욕을 복권시킨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티베트에는 욕이 없다. 티베트에서는 ‘화를 잘내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가장 심한 욕이라고 한다. 이처럼 욕은 한 시대 한 문화의 가장 예민한 성감대를 형성하면서 다른 문화와 비교될 때 분명한 경계를 긋는다. 급격한 사회 변동을 겪어온 우리 사회는 그만큼 수많은 욕설이 난무해 왔다.

‘이럴 땐 이런 욕이 백발백중’권내 부록

김교수의 이번 저서는 지난해 늦가을, 광주민학회와 금호문화재단이 마련한 ‘전국 욕대회’가 아니었으면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 욕대회가 ‘실로 후련하게 욕의 복권에 이바지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김교수는 책머리에 밝혔다. 이 책은 욕의 성깔, 욕의 대상, 욕의 전략과 전술 등 3부로 엮였고, 부록으로 ‘이럴 땐 이런 욕이 백발백중’과 옛 작품에서 뽑은 욕들이 부록으로 달렸다.
김교수에 따르면, 욕은 발언되는 것이 아니라 폭발된다. 그래서 욕은 최소한 문란이고 최대한은 반란이다. 욕이 폭탄이라면 그 안에 담긴 장약은 좌절감 실망 실의 분노 원한 증오 등이다. 욕은 과장법 비유법 대조법 등을 구사하며 기상천외한 상상력으로 욕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예컨대 ‘귀신 씨나락 까먹는 것’을 본 사람이 있겠는가. 어떻게 ‘모기 하문에 양물’을 박겠는가. 욕은 또 약한 자의 무기였다. 그래서 욕은 약한 자에게 약이었다.

한국의 욕설은 바보·병신·패륜을 3대 악덕으로 삼고 공격을 거듭해 왔다고 이 책은 밝힌다. 하지만 이 ‘모자라는 것’‘병신 지랄’‘지에미랄’등으로 대표되는 이 욕설들은 그렇다고 저능과 육체적 결함만을 비난한 것은 아니다. 패륜의 또 다른 이름이 바보이고 병신이며, 곧은 마음을 벗어난 모든 것을 욕의 대상으로 삼았으니, 욕은 ‘또 다른 윤리 교과서’라고 김교수는 규정했다.

이 책은 욕을 바로 보는 것을 곧 우리 자신과의 맞대면이라고 말한다. 욕을 모른 척하는 일은 자신으로부터의 도피이고 현실로부터의 도피라는 것이다. ‘욕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라 먹지 말아야 할 그 무엇’이라는 저자는, 세상 제대로 돌아가게 하자고 다그치는 욕을 기다리면서 욕의 사회학을 정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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