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한글날 맞춰 나온 ‘한글 지킴이’
  • 李文宰 기자 ()
  • 승인 1997.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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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에서 사전·지침서까지 다양… <용비어천가> 완역 큰 성과
한글날에 때맞춰 한글의 뿌리와 한글을 바르고 아름답게 쓰는 방법을 일러주는 한편, 한글이 처한 현주소를 진단한 책들이 잇달아 서점 진열대에 오르고 있다(아래 도서 목록 참조). 한글을 중심으로 한 이 동심원들에서 그 중심에 가장 가까운 책이 최근 이윤석 교수(연세대·국문학)가 처음으로 완역한 <용비어천가>(전 2권·솔 출판사)이다.

<용비어천가>는 모두 1백25장의 한글 시와 그것을 번역한 한문 시, 한문 시에 대한 해설, 그리고 해설에 대한 한문 주석으로 되어 있다. 이번에 완역본이 나오기 이전의 번역서들은 한글 시 혹은 한글 시에 붙은 한문 해설을 한글로 옮긴 ‘불구’였다. 이번에 완역본이 간행됨에 따라 문학·어학·역사학뿐 아니라 민속학·지리학·음악 등 국학 연구가 한 차원 진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교수의 완역본과 달리 <역사로 읽는 용비어천가>는 역사학 관점에서 접근해 일반 독자층을 겨냥하고 있다. <용비어천가>가 형식은 문학이지만 거기에는 중국사와 한국사가 폭넓게 담긴 역사서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역사학자인 고 김성칠 교수와 김기협씨가 완성한 이 책은 <용비어천가>가 가지고 있는 편향성의 성격과 내용을 알기 쉽게 풀어쓰고 있다. 지은이들은 <용비어천가>가 결코 사대주의의 산물이 아님을 강조한다. 조선 개국의 주역들은 <용비어천가>에서 현실과 이상을 조화시키려는 주체적이고도 능동적인 세계관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올 한글날은 세종 대왕 탄신 600주년과 겹쳐 더욱 의미가 깊다. 이찬우씨의 <소설 훈민정음>은 훈민정음 창제 과정을 중심으로 세종 대왕 탄생에서부터 등극, 재위 시절 업적, 두 차례에 걸친 세자빈 폐출, 대왕 자신과 왕실이 겪어야 했던 고통, 대왕 승하 후 단종의 최후에 이르기까지 세종 대왕 시대의 전모를 소설에 담았다.

한글사전·지침서들도 다양하다. 리의도 교수(춘천교대)의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려면 꼭 알아야 할 것들>은 사전과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 또는 한글에 대한 감수성이 희박한 컴퓨터 세대를 위한 친절한 길잡이이다. <한겨레 말모이>는 시인이며 현직 방송 기자인 장승욱씨가 남북한에서 쓰이는 토박이말 2만4천 어휘를 한데 모은 사전(‘말모이’는 사전의 순우리말)이다. <이것만 알면 바른 글이 보인다>는 대중이 가장 많이 접하는 신문과 성경을 대상으로 글쓰는 요령을 정리했고, <글쓰기 백신>은 개정된 맞춤법, 사이시옷, 띄어쓰기, ‘-의’ ‘-것’ 등 바른 글을 쓰기 위해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초석을 상세하게 일러준다.

그러나 굳이 뉴 미디어나 영어의 전지구화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한글의 토대가 튼튼한 것만은 아니다. 소설가 박덕규씨의 장편 소설 <시인들이 살았던 집>은 한글과 문학, 그리고 매체의 현주소를 세태 추리 소설 형식을 빌려 탐사했다. 이 소설에서 한글은 광신적 극우 단체인 한 한글전용운동 단체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이때의 한글은 이른바 ‘문화 장사꾼’들의 상품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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