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사이버 문화, 희망인가 절망인가
  • 李文宰 기자 ()
  • 승인 1997.09.0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계화·정보화 경향 속 문명 전환의 징후 뚜렷
사이버는 매우 강력한 접착제이다. 접두사처럼 보이는 ‘사이버’라는 말은 사이버 스페이스·사이버 컬처·사이버 펑크·사이보그·사이버 체제·사이버 섹스·사이버학(學)·사이버전(戰) 등 정치·경제 분야에서 일상 생활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과 접속하면서 첨단 정보화 사회를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사이버를 접두사처럼 내세우는 개념들은 그것이 다양한 만큼 애매하기 그지없다.

이같은 혼란은 다름 아닌 사이버라는 용어에서 발생한다. 사이버는 얼핏 접두사처럼 보이지만 접두사가 아니며 독립된 단어도 아니다. 최근 <사이보그, 사이버 컬처>(문화과학사)를 엮은 소장 사회학자 홍성태씨에 따르면, 사이버는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의 줄임말로 ‘배의 키를 잡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키잡이를 의미하는 그리스어(kubernetes)에서 유래한 사이버네틱스는, 뒤에 로마로 건너가 가버너(governor)라는 말을 낳았다. 어원상 조종과 통제라는 의미를 갖는 사이버네틱스가 오늘날 인공두뇌학이라고 불리고 있는 것이다.

홍성태씨에 의하면, 사이버네틱스를 현대로 불러온 학자는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 대학(MIT) 수학 교수였으며 미국 미사일 프로젝트에 깊숙이 관여했던 노버트 워너(1984~1964)이다. 워너는 광범위한 분야를 포괄하는 메시지 이론을 지칭하기 위해 이 용어를 가져다 썼다. 2차 세계대전 직후에 태동한 신종 학문인 사이버네틱스는 ‘정보 소통을 통한 조종과 통제를 다루는 학문’이다. 사이버네틱스는 정보 기술 발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사이버 세대라고 불리는 신세대들은 적극적으로 사이버 공간에 진입했다(아래 상자 기사 참조).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갈림길에 선 21세기

사이버네틱스는 인간에 대한 관점을 뒤흔들어 놓았다. 정보 소통이라는 차원에서 보자면 인간과 기계는 다르지 않다. 정보를 수신하고 발신할 때 인간과 기계는 동일한 원리를 따르기 때문이다. 사이버네틱스의 궁극 목표는 인간과 같은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드는 것이다.

컴퓨터라는 새로운 정보 처리 기계와, 컴퓨터 통신이라는 새로운 정보 소통 수단이 결합하면서 사이버 문화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주역으로 떠올랐다. 컴퓨터와 연관된 새로운 문화 행태를 가리키는 사이버 문화를 바라보는 입장은 크게 둘로 갈린다. 기술 개발자와 이 기술을 상업화하는 진영은 현란한 낙관론을 제시한다. 사이버 문화는 곧 유토피아로 가는 고속도로라는 것이다. 그러나 기술결정론에 바탕을 두는 사이버 문화에서 디스토피아 징후를 발견하는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과학·기술의 사회적 성격에 대한 비판적 연구로 잘 알려진 사회학자 프랭크 웹스터 교수(옥스퍼드 부룩스 대학)는 최근 번역된 <정보사회이론>(조동기 옮김·사회비평사 펴냄)에서 정보화 진전과 정보화 사회 진입 문제를 냉정하게 구분한다. 정보화의 진전이 곧 정보 사회로 진입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주장이다.
웹스터 교수는 정보 사회를 과거(현재)와의 단절보다는 연속에서 바라본다. 그에 의하면, 정보 사회 진입을 강조하는 이론들은 ‘많은 비트, 많은 경제적 가치’등과 같이 쉽게 양화(量化)할 수 있는 것(비어의적 정보)들에 대한 상식적인 정의를 통해 정보 사회를 예견한다. 정보의 내용에 대한 판단을 배제한 채 정보의 양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면서 정보의 의미와 목적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에 창간된 <신인문>에서 정보 공간을 문명론적 관점으로 들여다본 윤영민 교수(한양대·정보사회학)는 정보 영역에서 문명이 전환되는 징후를 발견했다. 윤교수는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커뮤니케이션 공간과 기왕의 대중 매체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에 주목했는데, 대중 매체들은 정보 공간의 도전에 대해 저항하기보다는 적응하는 형태로 대처하고 있다. 윤교수는 정보 시장을 장악하려는 미디어 재벌들의 신속한 움직임을 비관적으로 본다. 새로운 문명의 중요한 고지를 미디어 제국들이 선점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보 영역의 변화 못지 않게 사회 영역에서의 변화도 뚜렷하다. 윤교수가 보기에, 산업 문명을 떠받쳐온 국민 국가의 기반을 정보 공간이 뒤흔들고 있다. 신문·방송 잡지 등 대중 매체와 공민 교육을 통해 유지되던 국민 국가가 인터넷과 가상 교육, 비정부 기구(NGO)들의 세계적 네트워크인 진보적인 커뮤니케이션협회(APC)와 같은 정보 공간 속 사회 집단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지구적 시민 사회가 도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보 지배 사회가 다가오고 있다>(홍석기 옮김·자작나무 펴냄)에서 사이버 체제의 미래를 사회정치적 측면에서 연구한 데이비드 론펠트 박사는, 새로운 기술만이 밝은 미래를 보장한다는 기술결정론에 반대한다. 론펠트 박사는 사이버 체제가 가까워질수록 정치 영역에서 일어날 변화를 다음과 같이 짚었다. 즉 사이버 스페이스를 자유 자재로 넘나드는 새로운 엘리트가 등장하고, 행정부의 조직 체계가 서열식에서 네트워크로 바뀌며,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구분하기가 모호해진다. 통치의 본질이 변화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개념도 변화할 것이라고 보는 론펠트 박사는, 사이버 체제에 두 개의 칼날이 있다고 경고했다. 민주주의 토양이 튼튼한 나라에서는 사이버 체제의 미래가 긍정적이지만, 선진 강대국을 따라잡기 위한 열망과 해외 진출 욕구가 크고 대중의 사고 방식을 단순화하려는 의도와 권력 유지 욕구가 강한 나라에서는 사이버 체제가 전체주의적 체제를 유지하려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이보그’로 변한 현대인

사이버 문화는 개인까지 변모시키고 있다. <사이보그, 사이버 컬처>에서 <사이보그 월드> 공동 편집자인 케빈 로빈스와, 레스 레비도우는 걸프전을 예로 들면서 인간-병사가 사이보그(인조인간)-병사로 구성되었고, 그 결과 사이보그-병사가 무기 체계의 일부로 편입되었다고 보았다. 가정의 시청자도 예외가 아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의 일부가 된 걸프전의 병사처럼, 텔레비전 시청자들도 사이보그로 변모한다.

로빈스와 레비도우는 걸프전을 군과 미디어 계획이 기획한 총체적인 텔레비전 오락이라고 규정했다. 가정의 시청자들은 집합적인 환상에 얽혀 들어갔고, 이라크라는 한 국가는 한 마리의 괴물로, 사담 후세인은 새로운 히틀러로 인격화했다. 그런데 후세인을 공격하는 것은 오직 문명화한 수단이었다. 미사일의 정확성과 합리성 덕분에 인간이 아닌 괴물을 섬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첨단 과학기술 대 괴물(비인격화)이라는 이분법은 구미의 텔레비전 시청자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문명에 내재한 야만주의를 부정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사이버라는 접두어를 앞세우는 새로운 변화를 바라보는 국내 학계의 시야와 시력은 좁고 나쁜 편이다. <정보사회이론>을 번역한 조동기씨(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선임연구원)는, 국내에서는 사회과학자들조차 정보 혁명의 새로움과 놀라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윤영민 교수도 같은 심경이다. “국내에서 정보 공간은 그 실체가 채 모습을 갖추지도 않았고, 현재 형성된 실체마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라고 윤교수는 밝혔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