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진고응 지음<노장신론>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 승인 1997.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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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상무인서관(臺灣常務印書館)에서는 ‘고적금주금역(古籍今註今譯)을 끊임없이 내고 있는데, 이는 옛 고전을 오늘에 맞게 주석을 달고 번역한 책이다. 그 가운데 <노자>와 <장자>를 번역한 사람이 바로 북경 대학 철학과 진고응(陳鼓應) 교수이다.

오늘날같이 이데올로기의 해체 시절도 아닌데 북경 대학 교수의 번역이 타이베이에서 나왔다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질 터이나, 상황을 알고 보면 꽤나 복잡하다. 사실상 진교수는 현재 대만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복건성 장정(長汀) 출신으로 대만 대학 철학과를 졸업해, 북경과는 별 상관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70년대 대만 독립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반독재 민주 투쟁의 일환으로 ‘장경국 선생에게 드리는 글’을 쓰는 바람에 대만에서 추방당했다. 그 후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에 머무르다 북경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노자·도가중심설·장자 등 새롭게 해설

진고응. 작은 체구에 두터운 안경, 약간 벗겨진 반백의 머리, 전형적 수재의 인상, 아직도 강하게 남은, 현재의 대만어이기도 한 민남어 억양 등이 그를 묘사할 수 있는 것들이다. 96년 여름 도가문화 국제학회 때 북경에서 만났을 때 이 학회의 실질적인 책임자였던 그는 바쁜 듯한 동작에 재치 있는 대화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금주금역이 출판되기 전에 나의 지도 교수이자 노장학의 세계적 대가인 엄영봉(嚴靈峯)의 교정을 받았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으며, 인용하는 전대 주석가 가운데 유일하게 그에게 ‘선생’ 칭호를 쓰고 있다는 점에서 나에게는 사형(師兄)이 되기도 한다.

<노장신론> 번역자인 최진석 박사는 북경 대학 철학과에서 <성현영의 장자소 연구(成玄英的 ‘莊子疏’ 硏究)>로 탕일개(湯一介) 교수 밑에서 학위를 마쳤고 지금은 미국 하버드 대학 연구소에 있는데, 현재 싱가포르 대학에 교환 교수로 가 있는 북경 대학 철학과 유소감(劉笑敢) 교수의 박사 학위 논문인 <장자철학>을 번역하여 실력을 검증 받기도 했다. <노장신론>에는 진고응과 유소감의 대담이 실려 있기도 하다.

내가 갖고 있는 원서는 중화서국(홍콩)이 91년에 출판한 것으로 홍콩 삼련서점에서 산 것이나, 역자의 대본은 상해고적출판사가 92년에 펴낸 것이다. 이렇듯 그의 책은 전세계적인 관심거리인 셈이다. 그런데 이 책은 한 주제를 놓고 쓴 것이 아니라 이미 발표된 논문을 모아 놓은 것이다.

이 책은 모두 4부이다. 제1부는 노자, 제2부는 장자, 제3부는 <역전>과 노장, 제4부는 도가중심설로 이루어져 있다. 제1,2부가 비교적 평이한 논의라면 제3,4부에서 저자의 관점이 독특하게 드러난다. 특히 제4부는 중국 철학사의 중심이 도가라는 주장으로 학계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내용을 그 반론인 이존산(李存山)의 논문과 더불어 실어 상당한 쟁점이 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20세기 웅십력(熊十力), 당군의(唐君毅), 모종삼(牟宗三) 등의 ‘신유가’와 견주어 진교수는 ‘신도가’라고 자칭하기도 한다. 특히 최근 <황제사경>이 출토되어 그의 주장은 여러 관점에서 의의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최근 나는 논평 때문에 전공과 관련된 책을 세 권 받았다. 하나는 조민환 박사의 <유학자들이 보는 노장 철학>(서울:예문서원, 1996)이고, 다른 하나는 원정근 박사의 ‘<노자>에서 <노자지귀>까지’라는 부제가 붙은 <도가 철학의 사유방식>(서울:법인문화사, 1997), 그리고 지금 소개하는 이 책이다.

첫번째 책에 관해서는 한국도교문화학회가 또 하나의 논문과 더불어 논평했고, 두번째 책에 대한 논평은 한국철학회의 <철학> 가을호에 실릴 예정이다.

이처럼 도가 철학 관련 서적이 봇물같이 터져 나오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유가의 이데올로기에 식상한 한국의 젊은 지식인들이 자유분방한 노장 사상과 그 배경으로서의 형이상학에 매료되어 단순한 주자학적 도통(道統) 정신에서 벗어나 진정한 철학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노장학의 발전과 연구 성과 등 자세한 내용은 97년 여름호 <대우재단소식>에 쓴 나의 <한국의 노장학>을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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