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출판]일레인 김·유의영 편저 <미국을 향해 동쪽으로>
  • 샌프란시스코· 남유철 편집위원 ()
  • 승인 1996.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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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레인 김·유의영 펀저<미국을 향해 동쪽으로>/40명의 이민사 채록
 
미국에 이민온 교포들의 수가 무려 백만명에 육박한다. 그들은 조선 시대 말 하와이에 팔려온 농장 노동자들의 후손에서부터 지난 70∼80년대 이민온 대다수 교포들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다. 다민족 국가인 미국에서 ‘코리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이름으로 묶을 수 있는 공통된 체험이나 삶을 찾기가 쉽지 않다. 미국의 백인들에게 ‘코리안’이란 말은 단어 자체만으로도 부정적인 이미지일 때가 많다. 억세고, 거칠고, 불친절하고, 웃지 않으며, 영어를 못한다는 이미지.

최근 뉴욕에 있는 ‘뉴 프레스’ 출판사가 출간한 <미국을 향해 동쪽으로(East to America)>라는 이름의 책은 한국 이민사를 오래 연구해온 두 교포 교수가 우리 교포들이 걸어온 길을 하나하나 추적한 체험적 삶의 기록이다.

각기 다른 배경과 신분을 가진 교포들의 때로는 희극적이리만큼 비극적인 삶을 구술로 하나하나 받아 적은 ‘한국인의 미국 이민사’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미국 사회를 향해 외치는 한국인들의 첫 자기 외침이다.

책에 담긴 40명의 삶 중에서 관심을 끄는 이야기는 편집자인 일레인 김 교수 (캘리포니아 주립대 버클리 캠퍼스) 자신의 이야기이다. 김교수의 부친은 일제 때 반일운동을 하다 26년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건너왔다. 그는 당시 아시아인의 이민을 금지한 미국 이민법 때문에 40세가 되도록 학생 신분을 유지하면서 미국에 체류했다. 당시 미국의 극심한 동양인 차별로 김교수 부친은 컬럼비아 대학을 다니고도 거의 평생을 중국 식당의 웨이터나 일본 상품 행상으로 생활을 꾸렸다.

 
재미 교포 사회 ‘화냥년’들이 개척


김교수의 외할머니는 1903년 단신으로 하와이로 건너왔는데 처녀의 몸으로 임신중이었다. 김교수는 자신의 어머니가 왠지 혼혈처럼 보였다는 사실에서 자신의 외할머니가 노일전쟁 당시 러시아 병사에 강간 당해 자신의 어머니를 임신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김교수는 재미 교포 사회의 뿌리가 자신의 외할머니와 같은 이른바 ‘화냥년’이라고 불리는 여자들에 의해 개척되었다고 주장한다. 우물에 몸을 던지는 대신 미국으로 건너왔던 버려진 한국 여인들의 전통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그는 말한다. 재미 교포 대다수가 미국에 올 수 있었던 연결 고리 역시 한국에 주둔했던 미군들과 결혼한 이른바 ‘양공주’들이었음에도, 교포 사회가 오히려 이들을 더욱 심하게 차별하는 자기 모순을 보인다고 김교수는 통렬히 비판한다.
미국으로 오는 이민자 수는 90년대 들어 급격히 줄어드는 추세이다. 동시에 재미 교포 사회도 청과상과 세탁소가 주류를 이루는 이민 1세 시대에서 미국에서 교육 받은 2세 시대로 이동해 가고 있다. <미국을 향해 동쪽으로>에 담긴 1.5세와 2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미국의 명문 대학에 진학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는 교포 2세들의 이야기는 극소수의 과장된 자랑거리에 불과하다. 현실은 명문 대학을 나와도 연고가 지배하는 미국 사회에서 이민 2세들은 여전히 취업과 사회 생활에서 큰 벽에 부닥치고 있다.

이민 1세인 부모 밑에서 ‘비정상적’인 성장기를 가진 2세들이 공통으로 안고 있는 가족 갈등 역시 숨기기 어려운 우리 교포 사회의 문제이다.

<미국을 향해 동쪽으로>에 담긴 한국계 미국인 40명의 이야기를 듣고 미국을 향해 동쪽으로 온 한국인들의 삶을 한국에서 사는 한국인이 판단하려는 것은 섣부르다. 그러나 그 40명의 이야기를 통해 다가오는 부정하기 힘든 하나의 감정은 동족만이 느낄수 있는 가슴 저린 아픔이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특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비켜가려는 편집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교포들의 삶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비극적임을 숨기지 못한다. 그리고 그 하나하나의 비극과 역경이 어떤 형태로든 한국의 불행한 현대사와 긴밀히 맞물려 있음 또한 외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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