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일제의 도로 원표, 문화재감인가
  • 소성민 기자 ()
  • 승인 1996.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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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일제 설치 ‘도로 원표’ 놓고 유물 여부 고민중
 
일제 조선총독부의 망령이 사라질 날은 언제일까. 서울시는 조선총독부가 설치한 도로 원표를 역사 유물로 기념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 중이다. 서울시 도로 원표는 현재 광화문 네거리 교보빌딩 옆 고종 황제 즉위 40주년 칭경 기념비각 안에 있다.

도로 원표는 지역과 지역간 거리를 나타내기 위해 주요 지역 중심지에 세운 도로 표식물이다. 조선총독부가 1914년 ‘시가지의 원표 및 1·2등 도로표’를 고시하면서 처음 등장했다. 조선총독부는 당시 전국 도시의 기점인 서울시 도로 원표를 광화문 네거리 한복판에 설치했다. 30년대에 이르러 교통량이 증가하자 총독부는 통행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도로 원표를 현 위치로 이전했다.

서울시가 도로 원표를 기념해야겠다고 착상한 때는 지난해 봄. 그러나 서울시는 도로 원표에 대한 역사적 가치를 확인할 수 없어 지금까지 기념 사업을 망설여 왔다. 서울시는 지난해 5월 건설교통부에 도로 원표의 보존 가치 여부에 대해 자문했으나, 뾰족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건교부도 도로 원표에 대하여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또한 지난 8월2일 서울시 관계자들이 서울시 문화재위원들과 회의를 열었지만 속시원한 말을 듣지 못했다. 각 대학 교수들로 구성된 문화재위원들이 내린 방안은 ‘현 위치 고수’였다. 그 이유는 ‘이미 한 번 옮겼던 물건인 데다가, 역사적 유물을 자주 옮기면 그 의미가 반감된다’는 것이었다. 도로 원표의 역사적 가치와 위상을 자리매김하는 진단과는 거리가 멀었다. 서울시 담당자들은 우리 선조들도 도로 기준점을 사용했는지, 도로 원표는 일제만 특별히 사용한 것인지, 선진국에도 도로 원표가 있는지 등을 알고 싶어했다.

지도 연구자이자 제작자인 이우형씨(62·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가 위와 같은 궁금증을 명확하게 설명해 주었다. 조선 시대 지역간 거리를 측정할 때 그 기준점은 ‘대문’이었다.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지지〉 27권 정리고(程里考)에 따르면, 서울과 전국 주요 지역간 거리는 서울의 동·서·남 세 대문을 기점으로 했다.

 
제1 대로인 서울∼의주 거리는 서대문에서 의주 남문까지의 거리이다. 제4 대로인 서울∼부산(당시 동래) 거리는 남대문에서 동래 수영(水營) 성곽문까지다. 전국에 뻗어 있는 대로(大路) 10개가 모두 대문을 기점과 종점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다만 서울 북대문은 개방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점으로 사용되지 못했다. 한양 도성 내의 거리는 임금이 거처했던 창경궁의 대문인 돈화문이 기점이었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은 독특한 도로 기준점을 갖고 있었다. 일제가 한반도의 중심지인 서울 광화문 네거리 한복판에 도로 원표를 박아 놓을 때까지 우리 선조들은 누구든지 보고 알 수 있는 과학적인 기준점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로 원표가 일제의 불순한 저의로 탄생한 ‘음모적 표식’임을 입증하는 것은, 이것이 사실상 도로의 기준점만 ‘상징’할 뿐, 실제 사용되는 거리를 나타내는 데에는 거의 기여를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조선총독부가 도로 원표를 제작할 당시만 해도 국도는 비교적 단순했지만, 산업화의 진전에 따라 고속국도가 뚫리고, 국도만 해도 끊임없는 확충과 개설로 그 거리를 계산하기가 한층 복잡해졌다.

이와 같은 사정 때문에 서울과 주요 도시간 거리는 기준을 도로 원표로 하느냐, 고속국도로 하느냐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98쪽 도표 참조). 건설교통부도 89년까지는 지역간 거리표를 ‘고지식하게’ 작성했으나, 신빙성이 떨어지자 이제는 전국을 세분해 지역과 지역 간의 연장만 표시하는 도로 현황 조서만 작성한다.

사용 주체에 따라 각기 다른 기준점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도로 원표는 더욱 의미가 없다. 고속국도의 기점은 서울 한남대교 남단이다. 지역과 지역간 거리, 가령 청주에서 대전까지의 거리는 각각 그 지역 인터체인지를 기점으로 해서 계산된다. 거리를 도로에 한정하지 않을 때, 그 거리는 사용 주체에 따라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 서울과 부산간 거리만 해도 한국도로공사가 관장하는 고속국도는 428km, 철도청의 철도는 444.5km, 항공사의 거리는 417km로 각각 차이를 보인다. 철도는 철도로, 항공사는 공항으로 기준을 삼는 것이다.

‘너무 쓸모 없어’ 세계적으로 드문 표식물

도로 원표가 유일하게 쓰이는 예라면 국도 상의 지역간 거리를 계산할 때이지만 그 쓰임새가 낮다. 일제가 세운 도로 원표이지만 일제 치하의 관리들조차 도로 원표를 기준으로 거리를 산정하지 않았다. 출장비를 정산하는 데 편리하기 때문에 각 지역의 관청 건물을 기점으로 썼던 것이다. 현행 도로법 시행규칙 제15조에 규정되어 있듯이, 도로 원표는 도청·시청 등 행정 중심지말고도 교통 요충지, 역사·문화 중심지에 세우도록 되어 있으나 대개 행정 중심지에만 위치한다.

이처럼 도로 원표는 실용성이 없이 상징으로만 기능하기 때문에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표식물이다. 건설교통부는 86년 미국·캐나다·서독·영국·일본·벨기에에 도로 원표 체계에 대해 문의한 바 있다. 미국·영국·프랑스 3개국이 회신해 왔는데, 어느 나라도 도로 원표를 사용하고 있지 않다고 전해 왔다. 노선 별로 거리표를 설치하거나 각 도로 기점을 기준으로 쓸 뿐이다.

현재 광화문 네거리 기념비각에 있는 도로 원표 단위는 일본식 한자 조합어인 ‘米千(m +1000=km)’으로 되어 있다. 이우형씨는 “도로 원표는 조선총독부가 자기들이 삼킨 땅의 거리를 표시한 것일 뿐이다. 이런 것을 기념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나 다름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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