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경제]영국 언론, 현지 진출 한국기업 맹폭
  • 런던 한준엽 편집위원 ()
  • 승인 1996.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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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언론들은 한국 기업들의 영국 진출 붐을 과도한 로비와 뇌물성 특혜 우대 정책의 산물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의 영국 투자 러시를 바라보는 영국 언론들의 눈초리가 예상대로 곱지 않다. 지난 5월 말 이후 영국 언론들은 LG그룹과 대우그룹이 생산라인 건설을 위해 영국에 대규모로 투자한다는 소식을 경제면 주요 기사와 텔레비전 특집 뉴스로 다루면서, 한국 기업들의 영국 진출 붐을 ‘각 지방 정부간 한국 기업 유치를 위한 과도한 로비와 불합리한 경쟁, 나아가서는 뇌물성 특혜 우대 정책의 산물’이라고까지 보도했다.

한국 기업들이 국내 노동 시장의 비싼 임금과 골치 아픈 노동 쟁의 대신 한국보다 평균 임금이 낮은 영국의 우수한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고, 특히 각종 투자 우대 조처를 최대한 이용할 수 있다는 데 기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것은 영국 언론들이 앞으로 노동 임금 수준의 적정성과 투자 유치 우대 조건의 타당성 시비를 계속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6월8일자 <이코노미스트>는 ‘해외 기업의 국내 투자 유치 경쟁-영국을 위한 뇌물 공세 작전’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먼저 ‘영국의 각 지방 정부가 벌이고 있는 해외 기업 투자 유치가 무엇보다 큰 대가를 지불하고 얻어지는 것’이라며, 그 예로 ‘지방 정부의 과다한 투자 유치 보조금이 이른바 뇌물처럼 이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 정부 재무부 역시 지방 정부 소속 해외투자 유치 기관에 대한 감독을 강화해서 과다한 상호 경쟁을 지양하도록 유도하고 있으나, 이들 지역별 투자 유치 기관들은 보조금 지출 법정 한도액인 전체 투자 규모의 20%선을 초과해서까지 한국을 비롯한 해외 기업들에 로비 활동을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투자 우대 정책 만끽하며 공세적으로 진출한다”


그 예는 LG그룹의 14억파운드(약1조8천억원) 투자 진출건이다. 4천여 명의 고용을 창출하는 LG그룹의 전자복합단지 건설 사업은 웨일스와 스코틀랜드 주정부 간에 밀고당기는 유치 경쟁을 불러 일으켰다. 웨일스 지방 정부는 해외 투자 유치 기관인 WDA 보조금을 1억5천만파운드 제공하겠다고 제의하고 있어, LG그룹은 스코틀랜드 대신 웨일스에 있는 뉴포트 항구를 공장 부지로 내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 메일> 역시 6월17일자 기사에서 ‘한국 기업들의 공세적인 영국 진출은 이미 진출해 있는 미국·일본·유럽 기업들에 선전포고를 한 것이나 다름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 예로 대우자동차가 가격 파괴 전략을 써가면서 영국의 전통적인 판매 방식인 딜러 판매망을 무시한 채 자체 판매망을 운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특히 ‘한국 기업들이 영국 등 유럽 지역에서 현지 국가가 제공하는 세금 혜택과 보조금 등 각종 투자 유치 우대 정책을 게걸스럽게 만끽하면서 공세적인 진출을 꾀하고 있는 반면 정작 한국 내에서는 외국 기업의 투자 조건과 각종 수입 통관 정책에 지난날의 자국 산업 보호 정책을 아직도 고수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같은 비난과 견제는 앞으로도 당분간 이어질 현대·삼성전자 등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의 영국 진출 붐을 타고 더욱 거세지고, 그 내용도 영국내 한국 기업의 경영 방식과 나아가서는 기업 내부의 노사 관계에서 빚어질 임금·승진·인사 문제에까지 미칠 전망이다. 이를 사전에 극복하고 마찰을 최대한으로 줄이기 위해서 투자 기업은 물론 우리 정부내 해외 투자를 지원하는 관련 기관들이 유기적인 협조 아래 영국의 기업 전통과 영국인들의 사고 방식 및 노사 관계를 정확히 인식하려는 정보 수집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한국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통상산업부와 협조하여 최근 해외투자 애로신고센터를 현지에 설치하기로 한 것은 뒤늦게나마 이의 필요성을 인식한 덕분이기도 하다. 나아가 우리 정부 관계자들이나 기업 경영자들이 국내의 고임금 상황이나 노사 쟁의 실태를 영국과 비교해서 무분별하게 영국 언론에 자랑처럼 공개하는 것은, 현지 노동 시장과 지역 주민들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나아가 보수 우익 언론의 비판을 자초하는 현명치 못한 홍보 전략임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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