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운동은 인권운동"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6.08.0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학가 중심으로 제자리 찾기 움직임 활발…일부는 떳떳이 공표하기도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동성애운동을 인권운동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이렇게 나서기로 결심했다.” 남성 동성애자 모임인 ‘친구사이’ 회장 김준석씨(연세대 기계공학과 3년)는 사진 촬영을 마치고 위와 같이 말했다. 김준석씨와 함께 자기가 동성애자임을 사회에 공표(동성애자 사회에서는 ‘커밍아웃’이라고 한다)한‘끼리끼리’ 회장 이해솔씨(방송작가)는 “동성애는 찬반론의 대상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는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동성애는, 특히 한국 사회에서 성 담론의 최전위이다. 성에 관한 공개적 합의가 거의 없고, 특히 엄연한 유교 전통 앞에서 동성애에 관한 논의는 금기이다. 금기가 아니라면 경멸과 혐오, 거부와 공포의 대상이다.

그러나 대학 사회를 중심으로 동성애운동이 꿈틀대고 있다. 서울대·연세대·충북대 등 전국 다섯 대학에 동성애자 모임이 있으며, 지난 봄 축제 때에는 대학마다 성을 주제로 한 행사를 마련했다. 대학을 벗어나 ‘친구사이’와 같은 성인 동성애자 모임도 있으며, PC 통신에도 동성애자들만의 ‘방’이 마련되어 있다.

최근 한 영화 전문 주간지에서 영화 <내일로 흐르는 강>을 놓고 동성애 논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한 시사 주간지가 ‘성비 파괴 가상 시나리오’를 다루면서 동성애를 에이즈의 직접적 원인인 것처럼 묘사했다가 한국동성애자인권운동협의회(협의회)가 보낸 반론을 싣기도 했다. 한편 최근 신문 사회면에는 여장 남자가 남성을 유혹한 것은 법적 제제를 받을 수 없다는 당국의 입장이 실려, 동성애에 대한 관심을 새삼 환기시켰다.

“심리적 기질의 문제일 뿐 죄악 아니다”

동성애자들은 지난 6월26일 조용한 행사를 치렀다. 69년 6월27일 미국에서 벌어진 최초의 동성애자 운동이었던 ‘스톤월 항쟁’을 기념하고, 협의회 결성 1주년을 맞아 동성애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함께 나눈 것이다. 동성애운동이 희망하는 바는 우선 동성애(자)를 현실적으로 인정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동성애에 대한 사회 일반의 시각은 좀체 ‘교정’되지 않고 있다.

 
국내 최초의 게이 운동가인 문화 비평가 서동진씨(지난해 가을 계간 <리뷰>를 통해 커밍아웃했다)는, 94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열린 국제사면위원회 전체 총회에서 게이·레스비언 문제가 안건으로 상정된 바 있다고 전하면서 “그 이후 국내 인권 단체와 동성애 단체가 교류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교류 이상의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학계에서도 동성애는 본격 연구 대상이 아니다. 동성애를 이해하는 일부의 입장은 ‘낭만적 박애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동성애 운동가들은 말한다.

서동진씨에 따르면, 구미에서 동성애자는 도덕적 파탄자였다. 19세기 말, 푸코가 지적했듯이, 성이 과학과 의학의 울타리 안으로 편입되면서 동성애자가 최초로 등재되었다. 근대 핵가족제를 1차 성혁명이라고 보는 서씨는 이때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 즉 이성애가 뿌리를 내렸다고 보았다. 그리고 69년 뉴욕 스톤월에서 동성애운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서씨는 “동성애는 죄악이 아니라 심리적 기질의 문제이다. 성 정체성의 차이 때문에 권리를 박탈 당하고 인격적 모욕을 받아선 안된다”라고 말한다. 동성애운동은 인권운동이라는 것이다.

구미에서는 ‘킨제이 보고서’가 드러냈듯이 성을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으로만 보지 않는다. 동성애자들이 에이즈와 동성애를 연관시키는 ‘신보수주의’로부터 박해를 받고는 있지만 성 다원주의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서동진씨에 따르면, 미국 금속산업노조는 동성애자 부부를 인정해, 가족 수당을 지급하고 의료보험 혜택도 준다.

동성애자임을 사회에 공표한 김준석씨는, 사춘기 시절 동성애에 대한 고민이 크지 않았다고 한다.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동성애자 단체에 들어가서야 죄의식을 벗어던질 수 있었다. 그는 동성애가 죄악이나 중독, 변태가 아니라 이성애나 본능처럼 자연스런 감정이라고 강조했다.

서동진씨는 성인 동성애자를 끌어안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갈수록 사춘기 연령이 낮아지는 청소년 문제도 심각하다고 말했다. 폭력성만 추구하는 남성성, 지나치게 수동성과 낭만성만을 추구하는 여성성으로는 청소년들의 고민을 풀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대학 사회와 사춘기 청소년들은 다르다. 성 정체성 앞에서 고민하는 청소년들에게 교사가 절실하다”라고 서씨는 말했다.

섹슈얼리티가 미리 정해진 자연적 조건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혹은 계발해 나가야 할 라이프 스타일 문제라는 앤서니 기든스의 논지에 동의한다면 동성애 문제는 더 이상 ‘비현실’이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 현대 사회에서 성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의 한 끝에서 동성애와 같은 성 정체성의 문제와 부딪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