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꼬부랑길' 걷는 한글 국제화
  • 최영재 기자 ()
  • 승인 1996.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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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1백50여 개 대학서 학습 열풍…정부 외면으로 강사·보충 자료 태부족
 
우리는 한국말을 배우는 외국인이 기껏해야 미국인 선교사나 일본인 정도로만 알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알고 나면 꼭 그런 것만 도 아니다.

루파 바가양(23)은 지난 3월 인도 뉴델리에서 온 국비 유학생이다. 그는 인도의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다 한국 문화를 배우려고 한국에 왔다. 그는 지금 서울의 한 대학 한국어 교육기관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루파 바가양과 같이 이 대학 한국어 교육기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폴란드인을 비롯한 동유럽·중국·러시아 학생 등 각양각색이다.

해외에서 불고 있는 한국어 학습 열풍은 우리 국력이 커지면서 일어난 일이다. 현재 한국어와 한국학을 강의하는 나라는 30여 나라에 이르며, 이러한 대학과 연구기관도 2백여 개에 달한다. 미국에서는 최근 SATⅡ(수학 능력 평가 시험) 과목에 한국어가 채택되었다(아래 인터뷰 참조). 또 하버드 대학 등 30여 대학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일본에는 덴리 대학, 오사카 외국어 대학, 도쿄 외국어 대학 등 60여 대학에 한국어 강좌가 개설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조선족 1백90만명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조선족 외에도 북경 대학, 중앙민족학원, 대외경제 무역대학, 연변 대학 등 스물다섯 대학이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러시아는 모스크바 대학, 사할린 사범대학, 레닌그라드 대학 등이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호주와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도 앞다투어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문제는 늘어나는 한국어 수강생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교육 보충 자료와 강사진이 턱없이 부족하고, 교수 방법과 심지어 맞춤법과 문법조차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같은 동양어권인 중국과 일본은 외국에서 자국 언어를 교육하는 데 필요한 요소들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일본은 외국에 일본어 학과가 개설되면 모든 지원을 정부가 앞장선다고 한다.

한국어 능력 검정 시험 제도 마련해야

현재 국내에서 외국인이나 교포 자녀를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곳은 고려대·서강대·서울대·연세대·이화여대·한국외국어대 등의 한국어 교육기관이다. 모두 민간 차원에서 벌이는 교육이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하는 교육 시설은 없다.

연세어학원 한국어학당은 59년 문을 연, 한국어 교육기관 중 가장 오래된 곳이다. 규모 면에서도 국내 최대이다. 한 학기 수강생이 6백명을 넘는다. 이곳은 학생들을 1급부터 6급까지 하루 4시간씩 10주 교육한다. 10주가 한 학기이고, 1년에 4학기가 있다. 교재도 자체 제작한 것을 이용한다. 교사는 국어학 관련 석사 이상 학위자들이 맡고 있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한국어연수부도 연세어학원과 비슷하게 수업을 진행한다. 정규 과정은 1급에서 6급까지 나뉘며, 수업은 한 학기에 10주(2백 시간), 1주에 5일(월∼금), 하루에 4시간(오전 9시∼오후 1시)씩 이루어진다. 자체 제작한 한국어 교재는 문법 위주 독본과 회화 교재로 되어 있다. 수업은 하루에 독본 2시간, 회화 2시간씩 나누어 실시된다.

서강대 한국어교육연구원은 다른 대학에 비해 짧은 연륜을 가지고 있지만, 독특한 수업 방식으로 진행한다. 우선 정해진 교재가 없다. 그때그때 필요한 교재를 인쇄해 공부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수업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교사는 단순히 학습을 도와주고 조정하는 역할만 한다. 이 연구원의 최정순 교학부장은 ‘말하기 교육’에는 이런 수업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서울대 어학연구소는 다른 대학과 달리 서울대에 재학하고 있는 외국인이나 교포 자녀만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친다. 때문에 교육생 숫자가 다른 대학보다 훨씬 적다.

각 대학에서 한국어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실무자들은 한결같이 외국어로서 한국어를 교육하는 데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정부 배려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장정수 연구원은 “한국어 교육 역사가 짧아 축적된 교육 방법이 없다. 교재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한다. 연세대 한국어학당 한국어 담당 이규희 교학부장은 “정부가 외국인 상대 한국어 교육을 사설 기관에만 맡겨 놓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또 대학의 한국어 교육기관을 졸업한 외국인 학생들을 활용할 대책도 없다”라며, 정부가 대책을 세우라고 요구한다. 서강대 한국어교육연구원 최정순 교학부장은 “좋은 교재와 교사,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재정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중장기 계획이 나와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는 또 영어와 일본어 같은 언어는 공인된 언어 능력 시험이 있는데 한국어는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이 상황에서 한국어 국제화를 위해 해야할 과제는 무엇일까. 박갑수 교수(서울대·국어교육학)는 △자질을 갖춘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사 양성 △적절한 학습 재료 개발 △한국어 능력 검정 시험 제도 마련 △정책적 지원 △교육 기관에 대한 지원과 대우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 연구 강화 △많은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유인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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